Nirvana beyond dark II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눈만 뜨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눈망울은 한 곳에 머물지 않기에
저 어둠 속으로 날아 가 버린 나비의 흔적이 느껴질 뿐입니다.
검은 것은 우주 만물을 잉태하고 있는 어머니이고,
회색과 가물가물함은 정신적 자유를 얻고자 함입니다.
글 / 이완교
바 다
바다는 가장 낮은 곳으로 비에 젖지 않고 작은 물방울들이 모인 곳으로 이 세상 모든 계곡의 왕 이 기도하다.바다는 노장 철학의 근간인 포일(抱一) 사상과 만물의 생명을 낳게 하는 현빈(玄牝)의 원초적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은 노자가 말하는 동 중 정 (動中靜) 의 바다로서 위의 고요함과 융이 말하는 정 중 동 (靜中動) 의 공간이 함께 함 으로서 온갖 생명체를 길러내고 있는 곳이다. 즉 고요함이 품고 있는 생명체의 움직임이다.
이러한 조화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징들인 렐리기오(RELIGIO)인 곳이다. 또한 바다는 해불양수(海不讓水) 로서 큰물, 작은 물, 온갖 오염된 물을 가리지 않고 받아드리고 물질문명에 의해 오염된 해와 달마저도 깨끗하게 씻어서 매일 새로운 해와 달을 보내주는 신성한 곳으로 모든 생명의 본원인 곳이다.
대 붕 (大 鵬)
장자 철학은 돌려 말하는 우화(愚話)로서 예술 미학이 되기도 한다.
대붕은 큰 새라는 뜻으로 장자 내편에 나오는 말이다.북명 이라는 바다에서 물고기의 정자인 곤 이 수정되어 작은 물고기가 되었으나 늘 상 헤엄쳐봐야 한정된 곳에 머물 수밖에 없음을 답답하게 여겨 보다 큰 대양으로 날아 보려는 의지의 새 이름이다. 보다 넓은 우주를 날아 보려는 곤 의 의지를 보고 작은 뱁새들은 비웃음으로 영원한 뱁새로서 생명을 마쳤지만 작은 곤 의 꿈은 드디어 큰 새인 대붕으로 변신하여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속에서 구만리 장천을 날아올라 무한한 자유를 누리고 바다를 내려다봄으로 대양은 한 낫 연못으로 보였든 것이다. 대붕이 날 때 날개는 수 백리가 되어 그 큰 날갯짓에 온 우주의 바다가 해일로 출렁대고 그의 날갯짓의 그림자는 하늘의 구름처럼 덮였다고 한다. 이러한 장자의 대붕은 끝없는 자기 변신 (SELF TRANSFORMATION)으로 무한한 자유를 얻고자 함이다. 여기 보이는 바다위의 검은 것은 바로 뱁새가 대붕이 되어 우주를 섭렵하는 대붕의 날갯짓 인것이다.
그 꽃의 비밀
서영은과 세월을 함께한 사람들
글 / 이완교
따뜻한 봄은 만물에 생기를 불어넣는가 봅니다. 그래서 보고 싶은 얼굴들도 떠올라 선생님께 이 글을 드립니다. 가까운 날에 어디 양지바른 찻집에서 그동안 남겨두었던 정담이라도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그동안 한해 한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짐을 느꼈었는데 금년에 들어오면서 과격한 세대교체의 목소리가 왠지 서글퍼짐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젊음을 빼앗겼다는 피해의식은 더더욱 아닐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선생님과 마주한 차 맛의 유난함은 일찍이 쌀밥보다 무공해의 감자를 더 많이 먹고 자란 체질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항상 무엇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더 큰 공통의 뇌관이 관통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어떻게 살아오다 보니 벌써 저도 키워놓은 제자들에게 내 자리를 내어주고 나의 작업에만 깊이 빠져들 수 있음이 내 자신에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선생님께서 어느 책에다 쓰신 글이 오랫동안 나의 가슴에 실루엣으로 남아서 여기에다 다시 옮겨봅니다.
공지를 치켜든 까마귀 한 마리가
나뭇가지 위에 앉았다 푸르르 날아가 버리자
나뭇가지는 저 혼자 흔들린다.
이제 까마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지만,
그곳에 까마귀가 앉아 있던 흔적이
나뭇가지의 흔들림으로 잠시 보이다 말고 사라진다.
나뭇가지의 흔들림,
날아가 버린 까마귀의 실루엣이 찍혀 있다.
그것은 울림으로만 있을 뿐이다.
보이는 세계의 어떤 것이 보이지 않는
세계 쪽으로 흘깃 남겨놓는 흔적,
그 울림을 세계의 안쪽으로 느끼고 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보이는 세계의 어떤 것이 보이지 않는 세계 쪽으로 흘깃 남겨놓은 흔적’을 감히 저의 작업의 근간인 ‘무념무상’에다 옮겨 놓을 수도 있을까 해서 여기에 저의 작품 몇 점을 붙여보고자 합니다. 한참 혈기가 왕성했던 젊은 시절에는 꽁지를 치켜들고 나뭇가지에 앉은 까마귀가 아름다워 보였으나 나이가 듦에 따라서 날아가버린 나뭇가지 흔들림의 실루엣이 더욱 깊이 가슴속에, 찍혀진 사진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To Seeing
글 / 이완교
어줍게 사진을 시작한지도 어언 20여년이 가까워 오는데도 이렇다하고 내놓을 만한 사진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부끄럽기만 하다. 예술가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다는데. 괜한 오기로 뒤늦게 신발을 돌려 신고 겁 없이 뛰었으나 앞길은 점점 보이지 않고, 힘에 겨울 땐 처음에 걸었던 길로 다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해보았다. 그러나 이제와서 돌아가기엔 또 다시 먼 길이 되고 말았다. 난감한 길목에 서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대로 돌아가기보다는 앞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는 우직한 생각으로 이젠 이 길로만 걸어가려고 한다.
나는 1970년대 말에 '사진의 진실성(Real-ity)을 뒤집어 보면 무엇이 보일까?'하는 생각에서 모든 사물의 이미지를 초점밖(Out Focus)에서 촬영하여 개인전이란 이름으로 내 자신을 평가도 해보았지만 역시 사진은 사진이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얻게 되었다. 조각이 아무리 변형되어도 그림이 될 수 없고 그림을 아무리 그려도 조각이 될 수 없듯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하신 어느 스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 후 1983년 개인전(회향공간)에서는 대상을 지극히 사실적인 표현으로(Pan Focus) 다시 돌려 잡게 되었다. 1980년과 1983년에 가진 개인전의 차이는 초점 밖과 초점 안의 기계적 차이는 있었으나 필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근원적인 메시지는 그대로 붙들고 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보는 사진보다는 느끼는 사진 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1980년 '판타지아전'이 느낌의 모색전 이였다면, 1983년 '멀리 보는 시각전'은 차안의 현실공간을 저 멀리 지평선 너머 피안의 이상공간으로 떠밀어 놓고 느낌의 메시지를 보다 심화시키려는 과정이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런지. 1983년 이후 줄곧 해오고 있는 내 작업은 끝없는 그리움과 외로움에 지쳐 어느 풀밭에 돌아와 망연히 머리를 떨구고 앉아서 멍하니 바라다본 풀들의 이미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 사진들을 굳이 말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동양적 심성에 의한 관조(觀照)의 풀밭, 즉 To Seeing의 이미지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어차피 나는 동양적 정서로 가득찬 한국사람이므로 저 멀리 피안으로부터 차안의 풀밭으로 돌아와 노자와 장자 선생께 '인생은 무엇입니까?'라는 끝없는 질문을 드리고 있다고나 할까?
둥근 원
글 / 이완교
여기 보이는 둥근 것은 원(圓)으로서 달이기도 하고 후광의 아우라(AURA) 또는 여성, 순환, 해탈(NIRVANA), 등으로 지적 능력과 감성에 따라 더 많은 기호로서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서양은 변증론적 사고에 따라서 직선적 사고로서 시작은 곧 끝이라는 종말론적 사고이지만 동양은 순환적 사고로서 시작과 끝이 없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적 사고이다.
이 둥근 것 은 시작과 끝이 없는 무시(無始) 무종(無終) 의 도(道) 의 미학이기도 하여 완전함의 상징과 또한 불교의 깨달음이기도 하다. 여기서 둥근 것은 생성과 소멸의 순환 과정으로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은 변화가 아닌 반복으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원은 노자의 순환으로 본래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정신이다. 즉 없음에서 오묘를 보고자 함이고 있음에서 돌아감을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테레스는 서구는 직선으로 시작은 끝으로 가버려 없어 지지만 동양의 시작은 반드시 돌아오는 출발점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원의 형상은 모든 기(氣)가 뭉쳐 있기도 하여 때로는 예술 정신의 정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원은 만물의 진리를 관조할 수 있고 기운의 덩어리이기도 하다. 또 한 둥근 것은 공간을 초월한 사유와 명상으로서 마음의 에너지가 응축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둥근 것을 달로 보았을 때는 무한한 감성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해를 노래한 시는 없어도 달을 노래한 시는 수없이 많음은 바로 감성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즉 달은 여성의 상징으로 그리움, 추억, 자궁, 신비, 신화, 여성의 배란 주기, 생리현상, 장수, 지구의 인력, 여성의 성적 욕망, 평안, 소원성취 등의 수많은 감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달을 노래한 중국의 이태백은 장강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강에 뛰어들어 생을 마치기도 하였다.
조선 말의 화가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은 달빛에 물든 남녀간의 밀회는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그림으로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시인 나림 이병주는 달을 일컬어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와 예술이 된다고 하였다. 서양 사람 중에도 동양의 도가적 삶을 즐기기 위해 어둠을 찾아 들어간 푸루스트 도 달은 옜 달이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새로운 달을 발견한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달을 여성으로 어머니라고 하였고 동양에서 달은 여성으로서 노자와 장자 철학으로 더 많은 감성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달은 많은 우화를 담고 있어서 많은 시인 묵객들의 감성의 원천으로 끝없는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의 우화로서 옛날에 항아라는 여종이 임금님의 불로장생의 명약을 훔쳐먹고 달나라로 도망한 곳으로 더 많은 전설과 신비를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남성들이 예쁜 여자를 일컬어 달 등이 같은 여자라고 하고 달에는 항아라는 여신이 살고 있어서 끝 없는 감성으로 예술의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 진도의 강강수월래 도 달을 노래한 잔치로서 뜻이 부족하면 말 이 되고 말이 부족하면 노래가 되고 노래가 부족하면 춤 이 되고 춤이 부족하면 그림이 된다.
이 둥근 것은 때로는 많은 예술작품의 후광으로서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 후광인 아우라(AURA) 는 완전성과 신비성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징은 도가 사상의 미가 되기도 하고 작품의 마지막 기호가 된다. 모든 예술작품의 기호인 아우라는 과학이 손을 대면 저 멀리 사라지고 마는 영혼의 에코인 것이다. 그래서 이 아우라는 항상 작품의 뒤편에서 수줍고 은은한 모습으로 동양에서 말 하는 덕(德)을 품고 있다. 이렇게 뒤편에서 나타나는 아우라는 때로는 영적 이미지로도 나타나곤 한다. 그래서 좋은 작품은 초월적 존재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의 아우라가 은은히 울려오는 에코가 살고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어두움 2
글 / 이완교
밝으면 유욕(有慾) 으로 형체를 보고자 함이고, 검고 어둑어둑함은 무욕(無慾)의 오묘함을 보고자 함이다. 이는 노자 도덕경 4장과 56장에서 이야기하는 깊은 정신세계이다. 이렇게 어둡고 흐릿함은 곧 만물이 나오고 들어가는 관문으로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곳으로 그곳에도 도(道)와 기(氣) 가 있어서 만상들을 품고 있는 곳이다. 이렇게 분별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는 있음과 없음이 엉켜있는 혼돈인 것이다.
어둠의 저 뒤편은 한없이 멀어서 마치 음악의 감성 기호로서 가장 작은 소리인 피아니 씨씨모 (ppp) 또는 점점 작아지는 소리인 디크레센도( DECRESENDO ) 또는 그 작은 소리를 아주 길게 늘려주는 페르마타( FERMATA) 로서 그 울림은 마음속 깊이 새겨져 긴 여운으로 남는다. 그래서 음악에서 음표보다 쉼표가 더 감성적이고 아주 큰 소리의 포르테시모(fff) 보다 아주 작은 소리인 피아니씨씨모(ppp) 가 더욱 감성적 소리이다. 동양은 아주 작은 소리가 점점 사라져가는 여음으로 감동을 주지만 서양은 아주 큰 소리로 감동을 느낀다. 즉 서양음악의 마지막은 대개 가장 큰소리의 감동으로 그 자리에서 끝나지만 동양적 감동은 점점 작아지는 여운의 소리로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게 된다. 즉 밝음의 감동이 서양적이라면 어둑어둑함의 감동은 아득한 동양적 감동이다.
이러한 어둑어둑함은 상상 미학자 오귀스트 꽁뜨와 제임스 엥겔이 말하는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진입로이다. 이렇게 어스름함은 고요로서 한없이 순박하여 바보가 되기도 한다. 조선 시대 명필인 추사 김정희도 세상을 떠나기 삼일 전 에 쓴 마지막 명필은 봉원사에 걸려있는 판전(板展)이란 글씨로 마치 어린아이가 쓴 듯한 아주 서툰 바보 같은 글씨가 그의 생애 최고의 명필로 남아있다. 서양이 똑똑함이라면 동양은 어수룩한 바보 서러움으로 노자와 장자가 가르치는 좌망(坐忘과 심제 (心齊) 이다. 좌망은 가만 이 앉아서 몸뚱이와 사지를 모두 버리고 무중력, 무의식 상태에서 다시 심제인 텅 빈 마음으로 좌망의 외적 바보가 심제의 내적 바보와 하나 됨으로 서 자연과 하나 되고 참 자아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서양 철학자 헤겔(HEGEL) 의 미네르바의 부엉이도 어둑어둑해야 날고 장자의 대붕도 어둑어둑함에서 기적의 나래를 폈던 것이다. 이러한 어두움은 고요하고 편안하고 안정된 심성으로 돌아옴으로 서양의 고흐가 남긴 ” 별이 빛나는 나는 밤, 쌩떽쥐베리의 어린 왕자, 카프카의 변신 등의 걸작들은 모두 어두움에서의 발명인 것이다.
서양은 바로 보아 지지만 동양은 한참 보아야 심원으로 빠저 들어가 작가를 만날 수 있다.
노자는 도를 일컬어 “쓸쓸하구나, 고요하구나” 라고 하였다. 이러한 어둑어둑함의 고요는 만물의 근원인 기의 씨를 품고 있어서 기가 변하여 형체가 되고 형체가 변하여 삶이 되고 삶이 변하여 죽음이 되어 다시 돌아오는 공간이다. 여기 어둑어둑함은 서양에서 말하는 블렉홀(BLACK HALL)과 빛을 토해놓은 화이트홀(WHITE HALL) 의 중간 몫인 웜홀 (WARM HALL) 로서의 시작인 것이다. 이러한 웜홀 즉 어두컴컴한 회색은 선(禪)적 세계이기도 하다. 또 한 회색의 어둑어둑함은 주관적 시각인 상(像)으로서 모든 창작의 주체가 되는 발견에서 발명으로 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서양의 현대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예술은 창작하거나 감상하는 동안 현실적 고뇌로부터 해방됨으로 서 심리적 해탈(NIRVANA)의 경지로 듦으로 무의식의 수면 상태와 같다라고 하였다. 이는 노자가 말한 황홀로서 볼 수도 만질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마음의 경지라고 하였다. 쇼팬하우어의 이러한 피안의 형이상학을 바그너는 음악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또 한 모잘트 역시 그의 혼 콘첼트(HORN CONCERT)를 통해 이 어둑어둑함에서 발현되는 깊은 심연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고요하면 물도 맑아지듯이 깊숙한 영혼도 맑아져서 노자와 장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어두움은 밝음에서 얻어진 수많은 정보에 의한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어두움을 찾아 떠난 미국의 폴 보가드(PAUL BOGARD) 와 28명의 작가가 모여 펴낸 “어두움을 위한 증언”이라는 에세이집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렇게 어두움을 찾아 떠난 월든과 카프라가 있고 독일의 동양학자인 게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는 어두운 것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여기 이 작업들은 바보가 되어서 밝음에서 얻은 현대인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안정제가 되고자 함이다.
여기 아물아물함은 동양에서 말하는 현명(玄冥)으로 동양예술의 정신적 경지를 표현하는 바탕 이 되고 있다. 나무의 낙엽은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해탈(NIRVANA) 의 흔적이듯 여기 아물아물한 것들은 곧 우리의 몸과 마음을 내려놓은 흔적 들로서 우리들의 삶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벼워 진 것이다. 이렇게 모두를 내려놓은 흔적들은 곧 도(道)이고 심제(心齊), 좌망(坐忘) 의 소요(逍遙)로서 몽환 감으로 곧 도의 세계이고 현묘(玄妙)의 세계이다. 서양의 있음과 밝음은 인식체계로서의 세계이지만 동양의 아른거림은 모호성으로서 깊은 정신세계의 사유로 느껴지는 본성이 된다. 동양의 도가 사상의 뿌리는 있음의 실체(SUBSTANCE)가 아니라 없음에 의한 있음의 상생으로서 도는 동양예술의 뿌리인 것이다. 여기 아물아물함의 모호함은 도가 작동하는 시작이며 흔적으로 피안(彼岸)으로 들게 함으로 눈은 마음을 부러워하고 있다
아름다운 어두움
- 검은 덩어리 -
글 / 이완교
나의 작업의 큰 틀은 서양문화인 눈으로 보는 사진에서 동양철학의 근간인 마음으로 느끼는 사진으로 노자와 장자 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즉 서양의 그릇에다 동양의 정신을 담은 동도 서기(東道西器)의 작업들이다. 동양은 노자와 장자 에 의 한 없음(無) 인 0의 발견이고 서양은 있음(有)의 발견이다. 여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둥글고 검은 덩어리의 구멍은 장자가 말하는 현빈(玄牝)으로 과학이 넘지 못하는 어머니로서 만물을 잉태하고 기르고 낳아 주는 여성의 생식기인 자궁 인 것 이다. 이 컴컴한 자궁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있음과 없음이 만나 생긴 기(氣)의 공간이기도 하다.
기(氣)는 만물을 낳는 유현(幽玄), 즉 모든 생명의 씨앗이다. 또 한 검은 덩어리는 있음이 돌아간 즉 밝은 낮과 자연의 온갖 색들과 삼라만상이 돌아간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검은 공간은 블랙홀(black hall)로 서 무한한 가능성과 사유의 공간인 것이다. 검은 공간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으로 애매모호함(entropi)이 커서 또 다른 무한한 자유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서구의 철학자 프라톤은 일찍이 “정신세계는 코라 로 서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고 또 더 많은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자궁이다”라고 하였다. 검은 덩어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으로 서 장자의 위대한 발견이며 동양사상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 즉 동양의 있음은 없음의 발견으로부터 시작임을 장자는 설파하고 있다. 그래서 동양의 있음은 없음과 맞물려 있는 상태 인 것이다. 이러한 사유의 세계는 미적 필터링으로서 형식과 관계없이 오직 씨네쎄시아(SYNETHESIA) 로 서 검은 덩어리는 감각만을 품고 있는 것 이다.
현시적인 혼탁한 시대에서 벗어나려면 세상의 소리를 멀리하고 눈을 감으면 마음의 저 깊은 곳에서 살포시 떠오르는 소리를 들음으로 서 본연의 진정한 마음의 소리가 들릴 것이다.
일본의 시인 마스오 바쇼는 진정한 소리는 영혼의 귀로 듣고 진정한 시각은 영혼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예술은 일상적 발견에서 마음의 발명으로 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여기 검은 덩어리들은 노자 도덕경에서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夷) 라 하고 들어려 해도 들리지 않는 것을 희(希), 만지려 해도 만져지지 않는 것을 미(微) 로 서 이를 통 털어 황홀 (恍惚) 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황홀은 도의 원천이고 기와 도의 덩어리들로서 형이상학적인 깊은 정신세계로서 노장(老莊) 사상의 뿌리이고, 제임스 엥겔(james angel)의 상상 미학이 곁들여 있는 곳이다.
검은 덩어리들은 이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미묘함의 유현(幽玄)으로 만물이 들어가고 나오는 문이고 묘(妙)와 기(氣)가 살고있는 본향이다. 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만물의 씨앗으로 요사이 말하는 DNA 이다. 우리나라 진도 민요에 ”어두운 곳에서 태어나서 밝음으로 다 늙었네“라고 노래했고 어떤 시인은 ” 님 주신 밤에 씨를 뿌리고 사랑의 물로 꽃을 피운다.“ 라고 하였다. 이렇게 검은 곳에서 생기는 묘를 현묘(玄妙)라고 한다. 노자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머리로도 알 수 없는 것을 검을 현(玄) 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서양의 빌헤름이나 웨일리도 검은 것을 일컬어 ”검은 것은 어떤 비밀 서러운 그릇( holy verssel) 이라고 하였다.
러시아의 마레비치 (Malevich)의 절대주의(Suprimatism) 의 검은 사각형은 관념적 대상을 정신적 대상으로 암울한 러시아 사회의 시대적 상황을 검은 사각형 속에 묻어버렸다. 이는 자신을 극복하고자 함으로서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모든 차이를 없애버림으로 갈등을 해소하고 혼란마저 지워 버린 검은 색의 추상으로 자기 내면의 추상이다. 서양의 로스코는 색의 현시적 추상이라면 필자의 둥근 곡선의 검은 것들은 노장의 현빈(玄牝)으로 우주적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기호인 것 이다. 이 검은 덩어리 속에는 창세기적 아담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져 있어서 마레비치나 로스코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메시지이다. 즉 마레비치나 로스코는 눈을 뜨고 보는 있음의 공간이고 필자의 검은 덩어리들은 눈을 감고 몸과 마음을 모두 내려놓아야 보이는 원초적 공간인 것 이다. 그래서 서양은 눈을 뜨고 보는 있음의 공간이지만 동양은 눈을 감고 보는 없음의 공간으로 보다 원초 적이고 무한 자유와 가능성의 공간이다.
동양에서도 공자는 눈을 뜨고 보라하고 노자와 장자는 눈을 감고 보라고 한다. 이렇게 눈을 감는 것과 어두움은 바로 카오스(chaos) 로 서 이 목 구비가 없는 노자의 도덕경 14장의 황홀인 것이다. 즉 베이컨에서 눈, 코, 귀를 지워 버린 상태이다. 그래서 도가 사상의 근본은 없음으로부터 있음이기 때문에 검은 것을 근본으로 삼고 이 검은 것은 바로 도(道)가 되는 것이다. 쌩떽쥐 베리는 어린 왕자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 눈에 보이지 않는다.” 라고 하였고 “사막의 아름다움은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듯이 가장 소중한 것은 검은 덩어리가 품고 있는 기(氣)와 묘(妙)이기 때문이다.
메를뽕띠는 말하길 “예술은 우리의 신체 속에 일어나는 비밀스럽고 열광적인 사물의 발생을 탐구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고 뿐만 아니라 현대 철학자 하이데커도 “어떤 물건의 진실이 무 었 인지를 보여주는 것 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하이데커는 예술작품은 존재의 망각을 깨어나게 하고 진리를 열어줌으로 서 “예술은 철학보다 위대함으로 철학은 끝났다” 라고 말 하고 있다. 좋은 예술작품들은 처음에는 낯설게 보이지만 몸과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작품 속으로 덜어 가면 작가가 감추어 놓은 비밀번호가 열릴 것이다. 그래야 작품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고 그 속에서 작가의 진정함을 만날 것이며 잊혀졌든 자기를 발견하게 되면 나르키 소스처럼 자기 모습에 취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누가 말하길 “좋은 작품은 좋은 관객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을 통해서 마음으로 듣는 소리
글 /이완교
어떤 쓰임새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물(object)이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어졌을 때는 이미 애초의 기능은 상실되고 제2의 목적에 부합되어 버리는 합목적적인 정신적 대상(Subject)으로 바뀌어 버리는 현상을 우리는 일상 생활을 통해서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칫솔이 구두솔로, 접시가 화분 받침으로, 밥상이 책상으로, 성냥개비가 귀를 파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어떤 물질이 예술가의 손에 들어가면 미술가의 손처럼 그 물질의 고유한 속성은 없어지고 곧 작가의 이미지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물질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장르의 예술도 A라는 예술이 B화할 수도 있다. 즉 문학이 음악으로, 음악이 연극으로 바뀌어 버리는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김동진의 ‘가고파’란 가곡은 이은상의 시가 김동진의 음악으로 변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물질이나 예술뿐 아니라 자연에서도 자주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다. 가령 번개·구름·달·별을 자연공간으로부터 연극·오페라·무대에 옮겨 놓으면 늘상 보던 이미지보다 훨씬 강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를 곧 이중(二重)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제1의 이미지는 직접적이고, 제2의 이미지는 내적인 느낌인 것이다. 이러한 사물의 제2 이미지를 통해 예술이라는 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제2의 이미지를 강하게 느끼게 하는 음악가로서 바그너와 드뷔시를 들 수 있다. 특히 드뷔시는 강한 정신적 인상을 주는 음악가이다. 그는 이러한 인상을 가끔 자연으로부터 얻는다. 즉 그는 순수한 음악 형식으로부터 정신적 형상의 느낌으로 바꿔 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비교되기도 한다. 그의 음악은 인상주의 음악이지만 좀 더 음악의 특징인 사물의 묘사음을 사용하길 거부하고 내적인 이미지의 가치를 더욱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의 사진을 놓아 보고자 한다. 그러나 독자에 따라서는 내적인 미(美)보다 외적인 미에 길들여져 왔기 때문에 자칫하면 음악에 대한 모독감으로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마치 외적인 미에 길들여진 대중음악만을 듣던 사람이 내적인 미의 음악인 베토벤이나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각을 하다보면 문득 쇤베르크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는 자기의 자유를 무한히 이용하려고 노력하였고 이미 내적인 필연성에 이르는 길목에서 새로운 미의 노다지를 발견했다. 음악적인 체험이 청각적인데에 있지 않고 순수 심성적인데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는데서 부터 현대음악 내지는 미래음악이 싹트고 자라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이러한 사진을 찍은 동기를 굳이 밝힌다면 기실은 나 자신이 어줍잖게 대학에서 음악(바이올린)을 전공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음악을 그만둔 동기는 솔직히 말해 재주가 없음을 일찍 알아차리고 미술계통의 공부를 다시 시작하여 지금은 사진을 가르치는 교단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대로 떠나온 고향집(음악)이 못내 그리워 어느날 밤에 꾸었던 꿈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이라고 해두자.
진정한 소리는 귀로 듣는 것뿐 아니라 눈을 통해서 마음으로 들을 수도 있다. 이러한 소리는 직접적인 소리보다 훨씬 더 지적이며 감각적인 소리이기 때문에 음악이 사진으로, 사진이 문학으로, 문학이 연극으로 무용으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때 곧 우리의 눈이 뜨이고 귀가 뚫릴 것이고 다시 마음이 열리게 되면 우리의 삶은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어둠 속의 빛 이완교 & 윤재근
글 / 석현혜 (기자)
접경지대(接境地帶)
서로 다르기 때문에 더 잘 볼 수 있는 지점이 있다. 매체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에, 서로 다른 영역이 마주치는 접경지대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싹 틀 수 있다. 사진예술은 2018년 연간기획으로 사진작가와 다른 장르의 문화·예술인들이 서로의 구체적인 작업을 마주하고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문화예술의 접경지대를 탐색하는 대담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지음(知音)이란 고사성어는 중국춘추시대 거문구의 명수 백아(伯牙)와 그의 벗 종자기(鍾子期)에 얽힌 일화에서 나왔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가 그것을 들었는데, 백아가 거문고를 타는 뜻이 큰 산에 있으면 종자기는 ‘산이 우뚝하구나’하고, 뜻이 흐르는 물에 있으면 ‘출렁출렁하도다’고 말했다. 백아는 자신의 선율을 온전히 알아주던 벗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었다. 그는 세상에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슬퍼하며, 두 번 다시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서 굳이 서로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주고 통하는 지음(知音)이란 말이 나왔다. 이완교 사진작가와 윤재근 한양대 명예교수는 마치 지음(知音)처럼 서로의 작품과 철학을 온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이다. 이완교 작가의 ‘어둠 저 넘어’를 보는 어릿어릿한 사진작품을 앞에 두고, 윤재근 교수는 계간 <문화비평>, 월간 <현대문학>의 편집인 겸 주간을 지냈으며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임했고, 한국미래문화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그는 동양 고전사상에 해박해 장자를 풀어쓴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먼 길을 가려는 사람은 신발을 고쳐 신는다> 등 100만권 이상 팔린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다. 그의 저서들은 당시 출판계에 철학우화 선풍을 일으켰다. 이완교 사진작가와 윤재근 교수의 대담은 지난 9월 이완교 교수의 개인전 <Nirvana, Beyond Dark/피안(彼岸), 어둠 저 너머로>가 열린 서이 갤러리에서 이뤄졌다. 이완교 작가의 작품 기반이 되는 동양철학에 대해, 윤재근 교수는 사진을 보고, 말로 풀이하며 그 뜻을 짚었다. 두 사람은 한 장의 사진을 앞에 두고, 장자 사상을 바탕으로 ‘어둠, 저 너머’에 대해 물 흐르듯 논했다.
진행 두 분 모두 대담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하다. 그간 이 대담에 예술가분들을 많이 모셨는데, 예술가와 학자의 대담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재근 교수님은 이완교 작가님의 사진집 <피안(彼岸)-Beyond dark>에 서문을 써주시기도 했다. 윤 교수님께서는 이 작가님의 <피안(彼岸)-Beyond dark> 작품 중 어떤 부분에 마음이 움직였는가?
윤재근 이완교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보고 경악을 했다. 먼저 이완교 작가가 카메라를 붓으로 만들었다는 것에서 놀랐고, 작품 주조가 검정인데, 이 검정 때문에 다시 놀랐다. 검은색이란 묵(墨)으로 일맥한다. 처음 이 작품을 보고 내가 무언가 할 말이 있다 느꼈는데, 아마 그 검정이 아니었다면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는 안했을 것이다. 검정은 밝음의 어머니이다. 하룻밤이 지나야 비로소 새 해가 뜨는 이치로, 어둠은 밝음의 어머니이다. 무(無)를 색으로 나타낼 때 검정색으로 나타낸다. 다시 말하자면 이 작가의 작품 앞에 선다는 것은 무(無)앞에 서는 것이요. 무(無) 앞에 선다는 것은 생(生), 태어남 앞에 서는 것이다. 이를 유생어무(有生於無)라고 한다. 노자에서 나온 말로, ‘있는 것은 없는 것에서 생긴다.’는 말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치고, 유생(有生)이 아닌 것이 없는데, 무(無)앞에서 이 유생(有生)을 보게 한다. 이 작품이 검정인데, 이 검정이 바로 이를 보게 해주는 창문과도 같은 것이다.
이 작가의 이번 주제가 ‘어둠, 저 너머로’인데 그 어둠이 검정이다. 저 너머는 밝음, 유생(有生)을 말한다. 그러니까 이 작가의 작품에는 검정 너머에 밝음이 있고, 이것은 어울림을 뜻한다. 유생(有生)은 있는 것을 사람들이 ‘이것이냐 저것이냐’로 분별하려고 하는데, 이 무(無)는 그러하지 않는다. 우리가 말하는 ‘자연(自然)’이 바로 무(無)로, 노자가 말하는 자연(自然) 역시 무(無)를 말하는 것이다. 자연이란 것은 ‘그냥, 그대로’이다. 그러니까 무(無), 자연(自然), 밝을 유(有), 이것이 이완교 작가의 사진 속에서 원 둘레길처럼 존재한다. 원의 둘레에는 선후가 없다. 그러니 검정이 먼저냐, 밝음이 먼저냐를 따지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완교 교수의 사진작업 앞에 서면 ‘무(無)를 만나서, 밝음(明)을 만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무(無)라는 것은 현실생활에서 만날 수가 없다. 우리 셋이 만나면 무(無)를 공유할 수 없다. 이 무(無)라는 세계는 불교에서 말하는 유아(唯我)와 통한다. 오로지 ‘나(唯我)’ 말이다. 그렇기에 왜 이완교 작가의 작품이 반가운가 하면 잊고 있었던 ‘나’를 만나는 것이다. 이를 아는 이들은 이완교 작품 앞에서 발을 못 떼겠지만, 이를 모르면 그냥 스쳐가는 것이다.
무(無)를 통해 유(有)를 만나다
진행 이완교 작가의 작업에 드러나는 ‘어둠’이 오히려 그 너머의 ‘밝음’을 강조한다고 보는 것인가?
윤재근 우리말에 ‘가물가물하다’는 ‘보일 듯 말 듯’, ‘들릴 듯 말 듯’인데, 사진작가이기에 ‘보일 듯 말 듯’이겠지. (웃음) ‘나’를 만나려면 이 ‘보일 듯 말 듯’이 가장 좋은 것이다. 이 작가의 사진이 가진 강점이 무언가 하면, 일체 잊고 있던 나를 만난다. 나를 만나려면, 눈을 뜨면 안 된다. 눈을 감아야 한다. 눈을 감는다는 것이 무엇이냐면, 마음의 눈을 뜬다는 소리이다. 요새 사람들은 육안(肉眼)만 생각하지만, 본래 우리 쪽에선 마음의 눈, 심안(心眼)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이 육안(肉眼)은 너도 나도 보지만, 심안(心眼)은 나만 보는 것이다. 나만 보고, 나만 듣고, 나만 만지고, 나만 생각하고, 이것을 뭐라 하냐면, 우리 선대는 낙(樂)이라고 하는 거야. 낙(樂)이란 춤추면서 기함 고성을 지르는 즐거움과는 다르다. 그것은 쾌(快)라고 하지. 그러나 이완교 교수의 작업에는 쾌(快)는 없다. 왜 쾌가, 없냐면 눈을 감아야 보이니까. 그게 검정이다. 여기서 검정이란 말을 잘 이해해야 한다. 검정을 이해했으면, 그 다음으로 넘어가는 게 밝음이다. 이 작품이 주는 선물은 ‘밝음’이야. 무(無)를 열고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것이 밝음이야. 무(無)를 통해서 명(明)을 만나는 것이지. 우리가 흔히 광명(光明)이라고 하는데, 현대인은 광(光)만 볼 뿐, 명(明)은 외면한다. 광(光)은 겉, 바깥이 빛나는 것이라면, 명(明)은 속이 밝혀지는 것이다. 외광내명(外光內明)의 줄임말이 본래 광명이다. 무(無)란 문(問), 밖의 검정을 열고 들어가면, 반드시 그 속에 밝음이 있다. 무명(無明)을 아는 것, 스스로 터득하는 게 수(遂)이다. 그러기에 이 작가의 명(明) 앞에서 1000냥짜리는 1000냥짜리만큼 수(遂)하는 것이다. 여기서 열 냥짜리 체험하는 사람들은 저급하고, 100냥짜리 체험하는 사람은 높고, 이렇게 분별하진 않았다. 참새는 참새대로 살고 황새는 황새대로 사는 것이 우리 본래의 수(遂)란 말이다. 그래서 이 작품 앞에 서면 아무도 모르게 내가 자유로울 수 있다. 명(明)은 유(遊)로 통하여, 내가 스스로 논단 말이다. 그 앞에 스스로 자(自)를 붙여서 자유(自遊)가 되는 것이지. 아름다운 것을 보고 즐기는 일이야. 그러니까 나는 이완교 작가의 작품 앞에 서면 요새 사진작가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아예 딴판으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만나는 게 옳아.
진행 겉에서 빛이 나기보단, 그 안에서 빛이 나고, 그럼으로써 자유와 통한다는 뜻인가?
윤재근 자유란 겉에 있는 것은 다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작품 앞에 서면 밝음을 만날 줄 아는 사람은 눈을 감는다. 눈을 뜨고 샅샅이 보려는 사람은 안보여. 이것을 한 마디로 말할 때 낙(樂)이란 거지. 확실한 즐거움 말이다.
진행 이완교 작가님이 작업을 할 때도, 지금 윤 교수님이 언급한 개념들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는가?
이완교 내 작업의 가장 중요한 지침서가 윤 교수의 책이다. 직접 만나 뵙기 전에 책으로 먼저 만났다. 인문학적 지식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중요하고, 삶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토양이다. 인문학적 소양에서 창의력이 나온다. 내가 대학 강의를 할 때는 윤 교수의 저서를 항상 필독서로 냈고, 시험과목도 이것으로 냈다. ‘노자와 장자에 대해 아는 데로 논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시대에 안 맞는 고리타분한 강의라고 불만이던 학생들도, 막상 책을 읽고 보면 ‘이것이 바로 대학 교육이구나. 교육이 티칭(teaching)이 아니라 코칭(coaching)이다’는 반응을 했다. 그만큼 윤 교수의 수많은 저서는 내 사진의 단단한 토양이다. 내가 프랑스 낭시 국제이미지 비엔날레에 특별초대 받아 전시했을 때, 프랑스 전문가들이 ‘내 사진이 어떻게 이리 아리아리하게 나오느냐, 컴퓨터로 한 것도 아닌데?’라며 깜짝 놀랐다. 이 ‘아리아리함’이 바로 장자의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내 사진의 주종이 바로 ‘회색, 검정, 가물가물함’이다. 이것은 결국 장자를 압축해 놓은 것이다. 1978년에 처음 장자를 만나게 됐는데, 장자를 읽어보니 이것은 예술미학이다. 공자는 직접 말하고, 장자는 돌려 말한다. 장자는 바로 말하는 법이 하나 없다. 결국 장자의 ‘나비의 꿈’이라던가, 대붕(大鵬)이라던가. 이것이 바로 자기 변신이다. 나는 예술로서 사진을 시작했기에 장자를 읽으면서 예술론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노장자 사상 등 동양고전에 대한 윤재근 교수의 책은, 갈증에 시달리던 사람이 찾은 한 모금의 물과도 같이 절실했고, 엄청난 힘을 주었다.
진행 창작 과정에서 이를 어떻게 드러내려 했는가?
이완교 ‘검다’는 것은 현묘(玄妙)이다. 현(玄)은 검다이고 묘(妙)는 없는 것을 토해서 새로운 것이다.
윤재근 묘(妙)는 여기서 ‘밝음’을 말한다. 현묘(玄妙)란 말은 명암(明暗)이 왕래한다는 말이다. 어둡고 밝음이 왕래하는 것이기에, 이것은 무엇이고, 저것은 무엇이라 분별하지 않고 막힘이 없다. 밝음은 오만 것을 다 드러내고, 어둠은 다 이불로 덮어버린다. 이를 현묘(玄妙)하다고 한다.
이완교 이 현묘(玄妙)를 표현하기 위해서, 검정이 있다. 내 사진을 보면 앞에 검은 덩어리들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이 ‘바위냐, 뭐냐’라고 자꾸 물어본다. 그게 사실은 공원의 나무이다. 나무를 나무로 찍으면 기록이 되지만, 나무를 나무 아니게, 이것은 저것이 되도록, 무엇이냐가 아니라 무엇이 될까를 생각하며 촬영했다. 오브젝트(Object)를 서브젝트(Subject)로 바꿔 놓은 것이다. 이리 만들어놓은 까만 덩어리가 만물의 근원이다. 집어삼키고 다시 뱉어나가는 것이다. 사진 속 가물가물한 회색의 점을 보고 많은 이들이 컴퓨터로 노이즈를 줬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 나는 후작업을 하는 식으로, 사진에 손을 대지 않는다. 트릭을 쓰는 것 같아 내게 맞지 않는다. 프랑스 낭시 비엔날레에서 전시를 할 때, ‘어떻게 사진이 이리 나오냐’고 묻더라. 나만의 표현방법을 연구한 결과이다. ‘아물아물함’은 필름 입자, 즉 은입자 이다. 이것을 살리려고 하는데, 그냥하면 살아나지 않는다. 이렇게 가물가물하게 접이 찍히지 않는다. 현상약의 특성, 현상 시간, 현상 약물의 온도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방법이 포함된 표현방법이다. 나의 경우 기술을 실험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 작품 컨셉을 위해서 기술이 필요로 하고, 거기 맞는 것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윤재근 테크닉은 비밀로 해야 한다. 칼국수 집 육수도 고유 비밀이 있지 않나? (웃음) 피카소가 왜 유명하냐고 하냐면 피카소의 색이 있고, 마티스는 마티스 색이 있고 고흐, 고갱도 다 자기의 색이 있다.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색이 있다. 물감 튜브를 사다가 어느 색과 어느 색을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나오는 색이 달라지니, 그 작가가 아니면 낼 수 없는 색인 것이다. 그래서 사진작가에게 현상액을 어떻게 쓰는지는 다 비밀이어야지. 이완교 작가는 바이올린을 전공했는데, 이는 아주 섬세하다는 뜻이다. 몹시 섬세한 사람이다. 가야금으로 말하자면 농(弄)을 잘 떤다는 것과 같다. 농(弄)이란 오직 그 사람만 가진 것이다. 오선지로도 낼 수 없고, 선생이 제자에게 가르쳐 줄 수도 없다.
일필일묵(一筆一墨)
윤재근 동양문화의 표현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먹(墨)이거든. 중국 화론을 읽어보면, 일필일묵(一筆一墨)이라 한다. 동양화에 감식안이 있다는 말은 먹을 볼 줄 안다는 뜻이다. 접시에 먹물을 흘려 붓에 묻혀 쓰는 게 다르다. 같은 먹인데, 각 사람의 손을 통해 쓰는 묵이 다르니까, 일필일묵(一筆一墨)이다. 예술가는 무리가 아니다. 사진작가 이완교는 이완교만의 것이 따로 있지, 누구나 할 것 같아 보이지만 아무도 못한다. 이완교의 검정은 그만의 검정이다. 일(一)이란 천하에 하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완교 사진으로 치자면, 같은 흑백필름을 쓰는데 내 사진에서 뽑아내는 색은 다르다는 것이지.
윤재근 예전 가까이 지내던 작가에게 “당신 작품은 먹을 가지고 꼭 해코지 하는 것 같아”하니 그가 “맞다. 나는 먹을 가지고 논다. 나는 어린애의 심정으로 그린다”고 실토하더라. 어린애의 마음으로 그리는 게 최고의 경지라니, 엄청난 경지이다.
이완교 내 작업도 잘나오는 필름을 망쳐놓은 거죠. (웃음) 알게 모르게, 표현하고 싶은 게 표현되는 기쁨이란 (느껴보지 않으면) 모른다.
윤재근 인기에 휘둘리다 보면 그게 안 되지.
이완교 누군가 내 사진을 보고 왜 이리 크냐고, 옥수수를 뻥튀기 해놓은 것 같다고 하는데, 본래 옥수수를 뻥튀기 해놓으면 또 다른 맛이 나오는 법이 아닌가? 옥수수는 그냥 삶아 먹을 수도 있고, 밥에 넣어 먹을 수도 있고, 뻥튀기를 해 먹을 수도 있다. 예술의 특성이 꼭 하나로 이래야 한다는 법이 없으니, 그게 곧 창작의 본질이다. 이것은 결국 좋고 나쁨과는 별개의 문제이고, 이리 하고 싶은 것 역시 내 몫이다.
진행 동양적, 한국적 사진이라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완교 결국 예술은 ‘나는 누구냐’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나는 누구냐, 인간은 누구냐, 어떻게 사느냐’가 이런 문제이다. 윤 교수의 저서에는 ‘21세기는 문화전쟁이다. 경제 전쟁이 아니라 문화전쟁이다’는 구절이 나온다. 그 책을 보면서 내가 용기를 얻었고,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반자를 얻은 기분이었다. 사진이 서양에서 시작했지만, 우리에게 들어온 지 150년이 넘는다. 어떤 식물도 150년이 넘어 다른 땅에 옮겨오면 다른 꽃을 피워야 하는데, 우리는 사진이 들어온 지 150년이 넘었는데도 미국, 영국, 독일에 얽매여서 우리 고유의 꽃이 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한국 사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뿌리를 동양사상에서 찾았다. 내가 한국 사람이니, 동양 철학, 장자의 이야기를 서양 사람보다 알아듣기는 낫지 않은가?
윤재근 바로 그거다. 서양의 카메라를 끌어와서 조선 토양에 자라는 나무에다 접을 붙이는 것이다. 문화란 그런 것이다. 내가 <문화전쟁>을 썼을 때가 1980년대이다. 문화는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하는 것이다. 선진문화를 받아들인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문화는 철저하게 서로 마주서서 주고받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내가 아는 이가 카페를 하나 차렸는데 카페 이름을 아리랑이라고 하니 손님이 안 오더라. 그래서 카페 이름을 ‘파두’라고 하니 손님이 오는데, 파두(Fado)란 결국 포르투칼의 ‘아리랑’이란 셈 아닌가? 이게 우리가 겉멋만 든 거다. 광고 하나도 다 외국어로 하니 부끄러운 일이다.
이완교 한국적인 사진이라며 갓을 찍거나, 물레방아를 찍는데, 그게 한국적인 것이 아니다. 윤재근 교수가 “육체를 베끼는 것은 일부를 베끼는 것이고, 정신을 베끼는 것은 다 베끼는 것이다”라고 했다. 내가 이 땅에 사는 사람이니 내가 하는 사진이 이 땅의 사진이다. 윤재근 교수의 많은 저서를 읽으면서, 우리 자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이어가야 한다고 느낀다. 나는 처음부터 사진이 예술이 아니라면 시작하지 않았다. 외국에 나가보니 그들은 또 자신들과 다른 문화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흔히 서양은 낚싯줄이고 동양은 투망이라고 한다. 피카소가 왜 사람들이 전체를 보지 않고 부분만을 보려 하느냐고 했다는데, 동양이 총체적 시각으로 본다면 서양은 부분만을 보려 한다. 외국을 선진국이라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따라하는 꼴은 자존심 상한다. 나는 그저 나다운 사진을 할 뿐이다.
윤재근 남을 흉내 내는 것만큼 부끄러운 게 어디 있어? 20세기는 흉내 짓하던 세기야. 그래서 흉내짓 하는 사람들이 칼자루를 쥐고, 흉내 짓 안하는 사람들을 바보처럼 취급하던 시기가 20세기였다. 20세기의 버르장머리를 21세기에도 이어가서는 안 된다.
이완교 우리 사진도 이제 우리 토양에 맞는 꽃이 필 때도 됐다. 그것이 바로 내가 사진을 하는 이유이다. / Fin
텅 빈 공간에 그려진 그리움, 이완교
음악과 사진은 시각예술이라는 구분이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한 사진작가의 작품에서 우리는 이 두 가지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사진작가 이완교, 음악학도가 사진작가로 변신한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다분히 음악적 감각과 배경이 물씬 풍겨 나옴을 느낀다. 사진이 지니는 리얼리즘이라는 특성을 추구하면서도 그 너머의 상상의 세계, 추상의 이념을 사진에 담고자 하는 그의 집념과 고집은 오늘도 그로 하여금 텅 빈 공간과 한 조각의 구름을 카메라 앵글에 담게 한다.
291: 안녕하십니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완교: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291: 우선 선생님의 작품세계를 초기부터 거슬러 올라가면서 설명해주시죠.
이: 저는 지금까지 두 단계의 과정을 거쳐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80년에 첫 개인전에서 발표했던 칼라를 이용한 추상적인 작업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시도로써, 83년에 가졌던 두 번째 개인전에서 나타낸 스트레이트한 대상접근의 작업이었습니다.
291: 그렇다면 첫 번째로 시도한 칼라를 이용한 추상적인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현재 진행 중인 작품에 대한 이해가 더욱 빠르고 선명해질 것 같습니다.
이: 첫 개인전에서는 칼라에 대한 예술이 알고 있는 추상적 혹은 환상적인 면에 대한 추구였습니다. 예술의 본질은 구체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암시적, 추리적이거나 은유적이라고 느낀 제 생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대상을 인 포커스(in focus)보다는 아웃 포커스(out focus)로 봄으로써 대상의 리얼리티가 아니라, 대상이 주는 어떤 이미지를 보고자 했던 거죠.
291: 그럼 두 번째 개인전에서 스트레이트한 접근방식으로 전환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이: 첫 개인전을 마치고 나니까, 자기모순이랄까 뭐 일종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더군요. 왜냐하면 사진이 갖고 있는 대상에 대한 접근의 기본적 요소는 ‘리얼리티(reality)’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즉, 소위 진실, 사실, 있는 그대로를 직시하는 그런 것이 사진의 본질이라고 본다면, 이와 같은 대상 속에서 어떤 추상적인 이미지를 표현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그것이야말로 한 단계 올라선 예술의 특성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느껴지더군요. 그러므로 두 번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 보는 가운데서 환상적인 것을 볼 수 있도록 시도하였습니다. 이 전시에 대해서 추상적인 사진에서 사실적으로 바뀌었구나 하는 평을 많이 하더군요. 그러나 표현 방법은 바뀌었지만, 그것이 주는 궁극적인 나의 목적은 결국 암시적이라는 거죠.
291: 결국 전기와 후기의 대상 접근 방식이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상징성을 띤다고 하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처음에 시도했던 작업에는 선생님의 예술적인 편력, 다시 말하면 학창시절 바이올린을 전공한 음악학도로서 사진가로 변신하면서 갖게 되는 과정과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예. 그렇습니다. 음악은 그 특성이 보이지 않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죠. 형태도 특성도 말도 없이...다만 소리로써 인간의 감정을 유발시키는 거죠. 그래서 ‘모든 예술은 음악을 지향한다. 모든 예술 중에 음악이 가장 추상에 근간한다’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것으로 우리의 감정을 유발시키기 때문이죠. 그래서 제가 쭉 음악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서 느끼게 되는 그런 습관이 몸에 배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진은 진실이라고 하는 리얼리티인데, 그것이 있는 그대로 사물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기록일 뿐이라고 봅니다. 이런 생각은 저로 하여금 있는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그 너머의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하고 늘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사람의 마음을 찍을 수 있느냐, 소리를 찍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게 되더군요. 예를 들면 전에 제가 제주도에 갔을 때 일입니다. 콩밭을 지나가는데 바람에 콩 이파리들이 하얗게 물결을 이루며 흔들리는 것을 보고 “아! 저게 바람이구나.”하고 슬로우 셔터로 찍었습니다. 그것은 콩밭을 찍은 것이 아닙니다. 바람을 찍은 거죠. 다시 말하면 얼마든지 추상적인 것도 찍을 수 있다는 겁니다. 사진가들이 너무 실제적인 대상에만 집착하는 경우는 리얼리티에 대해 편협 되고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291: 지금 선생님 말씀을 정리해 보면 초기에는 음악이 갖고 있는 추상적인 세계를 사진이라는 시각매체를 통해서 추구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 그러면 요즘에 진행 중이신 작업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이: 요즘의 작업 활동을 말하자면 우선 고향에 대한 얘기를 좀 해야 할 것 같네요. 저는 고향이 강원도이고 바닷가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뛰놀던 무한히 펼쳐진 바다, 하늘, 백사장, 갈매기, 언덕...그런 것들이 서울에서 청년기를 보내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도 늘 가슴에 남아 있었던 거죠. 그리고 어느 시점에선가 고향을 그리워하게 되고 향수를 느끼게 된 거죠.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서울이란 대도시에서 멀리 바라다보고 그리워하고 염원하는 그런 심정을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상을 멀리 아련히 보는, 지평선 너머에다가 어떤 그리움 애달픔... 이런 사연들을 아픈 가슴으로 되뇌여 보는 것이 하나의 아름다움이 아니겠느냐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91: 그렇다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있어서 가장 절실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이: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그 후로 정서불안에 걸리게 된 것 같더군요. 늘 노래도 메이저(major : 장조)보다는 마이너(minor : 단조)가 좋았던거죠. 다시 말하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모든 것이 그리움에 연이어져 있었고... 그로 인해 그리움이라는 것이 어떤 낭만적인 감정이 아니라 뼈 속 깊이 파고드는 그런 절실한 감정이였죠. 그런 감정이 제 사진에도 다소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291: 두 번째 단계의 작품세계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이 그리움의 승화인 듯 싶습니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짚어보자면 그 표현대상이 구름인 것 같은데요.
이: 그렇습니다. 제가 그 후에 구름에 대한 사진에 꽤나 미쳐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학교에서 강의를 하다가도 창밖에 구름이 뜨면 상당히 흥분하게 되죠. 구름에 대한 이상한 동경이 어느 날인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계속 구름을 찍어왔죠. 구름은 다만 단순한 구름이 아니라 저 너머로 넘어가는... 미지에 대한 동경이고, 또 조금 현대적으로 생각해보면 하나의 시간, 시간적인 이미지이죠. 그리고 또한 구름은 어딘지 ‘나 자신’인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에서 구름을 쭉 찍어왔습니다. 그 구름이 정말 나의 이미지를 충분히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생성되고 소멸되는 구름의 생태가 제게는 정신적 충족을 줄 수 있는 오브제라고 지금도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291: 그러한 작품세계에 접근하는 데 있어서의 표현수법에 대해서 얘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시간적인 요소보다도 공간적인 요소가 주를 이룬다고 생각되는데, 공간적인 작품세계의 특색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이: 공간... 그렇죠. 저는 공간이라는 것에 대해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공부하려고 합니다. 제가 근래에 오면서 만들어온 공간이라고 하는 것은 텅 비어있는 공간이죠. 제 사진속 에서의 텅 빈 공간은 파랗게 물들어 있는 여백인데요. 이런 파란 공간이라는 것은 어린 시절 내 공향에서 보았던 하늘이죠. 이 텅빈 공간에는 무엇이 있는가? 바로 제가 어려서 다하지 못한 나의 그리움, 한을 이 공간에 담았던 것이죠.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한없이 가득 차있는, 해도 해도 다하지 못하는 나의 어린 시절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감정의 고조를 풀어넣은 공간이죠.
291: 저는 요새...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라는 것인데, 요 근간에 제 사진을 보니까 ‘아하!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구름이 많은 것보다는 한 점이 부끄러울 정도로 가만히 떠오른 파란 하늘이, 깨끗하고 단순한 느낌을 줍니다. 그 구름은 하나의 이야기인 거 같아요. 그 구름이 저의 성격이고 곧 나 자신인 것 같은 것을 느낍니다.
291: 그렇다면 선생님 작품에 등장하는 구름은 무한대로 멀어지는 그리움으로써의 거리가 있고, 또 하나는 구름을 자기화함으로써 무한한 하늘 속에서 한 점 구름으로서의 왜소한 자기를 표현하는, 자기인식의 이중으로 사진에 나타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 그렇습니다. 아주 적절한 해석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두가지 느낌으로 저 먼 무한한 그리움으로서의 구름과 자기화된 구름, 이것을 느끼면서 작업을 해가고 있습니다.
291: 그리고 작품을 보면 한 장이 아니라 여러 장의 연작 형식의 사진인데요. 여기에 있어서 선생님의 작업은 하늘과 구름이 다음 장으로 가면서 계속 변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 얘기해주시지요.
이: 예. 사진에서는 연작을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죠. 엮음 사진, 시리즈 사진이 그 하나이고, 또 하나는 시퀀스(sequence)라는 어떤 백그라운드는 나타나지 않고 거기에 시간만의 변화-공간은 변하지 않고-를 나타내는 사진이 있죠. 제 사진은 시퀀스 포토그래피에 속하는데 이런 것은 같은 상화 속에서 시간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거죠. 다시 말하면 같은 공간 속에서 변화되어지는 시간과 공간을 이 속에다 표현할 수 있느냐 하는 생각에서 이러한 작업을 쭉 해나가고 있습니다. 결국 제 사진의 특성이 공간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그 바탕 위에다 시간성을 도입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는 거죠.
291: 그런데 이 시간성의 도입이라고 하는 것이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이 오는 시간의 추이라고 느껴집니다. 대개 구름시리즈를 보면 점점 커지다가 작아지고 있거든요.
이: 이 인터뷰란에 실린 사진 중에서 (사진4), (사진5), (사진6)은 점점 떠오르다가 (사진7)에서 구름이 가라앉고 있는, 소멸되어지는 것에 대한 그리움, 안타까움과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그런 점이 있죠. 전에는 시간의 변화에다 중점을 뒀는데, 이제는 단순한 시간의 변화가 아니라 시간의 생성이 다시 소멸되어져 가는 거죠. 소멸되어진 다음에 묘한 감정의 느낌... 이런 것을 느껴보고자 해서 시도한 거죠.
291: 그렇다면 공간에 대한 의식이 그만큼 넓어졌고 자유로와지고 트였다는 말씀인 것 같군요. 그럼 끝으로 여쭈고 싶은 것은, 이러한 모든 시도들이 우리가 현대 미술에서 얘기하는 개념예술이라고 하는 분야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 우선... 이 책이 ‘포토디자인’이라는 제호를 가지고 있어서 저도 참 관심이 많은데, 사실 지금은 ‘사진디자인 시대’ 또는 ‘영상 시대’라고 말할 수 있죠. 그리고 요새는 디자인도 그렇고 사진도 그렇고 종전의 개념과 달라서... 작가의 컨셉트가 대단히 중시되는 시대라고 봅니다. 요새 컨셉션 아트(Conception Art)라는 것이, 작가에게는 모름지기 어떤 컨셉트가 확실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산만해지고 또는 남의 다리 긁는 짓이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개의 사진가들은 일단 밖으로 나간 후 소재를 찾아 찍습니다. 그러나 저는 머릿속에 이미지를 떠올리고 그것을 정리한 후에, 그 이미지에 적합한 대상을 선택해서 찍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사진작업을 하기 전에 한 달을 생각하고 한 시간을 찍자, 즉 일년을 고민하고 하루만 찍자고 생각합니다. 미리 생각한 것을 찍어오는 거죠. 저는 이것이 사진가에게도 필요한 컨셉트라고 생각합니다.
291: 말씀을 듣고 나니까 결국 선생님의 사진은 개념적인 사진이라고 생각되는군요. 그럼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無 念 無 想
글 / 이완교
서양의 미(美)와 우주관은 고대 그리스시대의 신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동양은 선진시대로부터 기(氣)를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다시 말하면, 서양의 예술관은 대개 인간의 활동을 중심으로 하였으나 동양은 하늘, 땅, 인간을 하나로 하는 천지인(天地人)의 우주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신플라톤주의자인 영국의 사프츠베리나 쉐링의 내적감각설에 의해서 초월적 현실과 정신적 자연관인 동양의 미를 얻어가고 있다. 그러한 미의 본질은 초경험적인 비현실의 세계관으로 환상을 통한 초월이지만 동양은 철두철미한 현실을 통한 초월로서 기운생동(氣韻生動)의 내적인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감각의 개념도 서양은 피타고라스적인 시각과 청각만을 지적감각이라 하여 이 두 감각만을 예술에 응용하였으나 동양의 감각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 감각인 오감(五感)을 총체적으로 동원함은 물론 오감보다 더 중요한 마음이라는 감각을 더하여 육감(六感)을 모두 묶은 감각을 중요시하고 있다. 오감은 마지막 마음의 감각을 얻기 위한 전제이기 때문에 마지막 감각인 마음은 곧 형체마저 초월한 도(道)에 다다르게 된다. 이러한 도는 소요(逍遙)적인 무아지경에 도달함으로서 대 우주적 차원의 경지로 떠 올라 그 속에서의 하늘과 땅과 내가 하나되는 우주적 자기발견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동서양의 우주관은 서로 다른 질문의 결과일 것이다.
또 다른 동양미의 특성은 텅 비어 있는 공간이 변화무쌍한 이치를 담고 있기 때문에 항상 비어 있기를 좋아한다. 이 비어 있음을 통하여 기가 생성되고 그 기를 통하여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세계로 빠져들면 곧 자아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한 자아상실은 곧 신(정신)의 소요유(逍遙遊)에 노닐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어 있음의 기운(氣韻)론은 도가 사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덕목이라서 동양예술 정신은 도가(道家)적 동심을 동경한다. 도가적 정신은 어떤 언어나 논리로 표현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결국은 예술의 창작정신과 잘 어울린다. 노자는 이러한 도(道)는 항상 도일 수 없다고 하여 도가도 비상도(道家道 非常道) 라고 함으로써 더욱더 창작적 매력이 감추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일찍이 '혜능'도 "진정한 불도란 말이나 이론으로 표현하는 것이 부처님의 진정한 뜻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말은 깨달음의 경지가 인간의 모든 표현 영역을 초월하고 무념무상으로 비워놓은 공간에서만 떠오르기 때문이다.
서양의 감각은 어느 한순간에 전광 석과 같이 생기지만 동양의 깨달음은 오랜 동안의 수련과 수양을 거 쳐 높은 경지에 다다랐을 때 천천히 마음에 와 닿는다. 장자는 진정한 깨달음은 오감과 육감마저 떠난 상태를 선(禪) 또는 무념, 무상의 상태를 도(道)라고 하였다. 도는 사물 속에 있는 것이지 형질(形質)은 아니다. 그래서 노자는 배움은 부족한 곳을 채우는 것인데 이 더함은 빼어버리기 위한 전제로서 배워야하고 배운 다음에는 빼버리라고 하였다. 즉 더하기는 빼기 위한 전제이어야 한다. 많은 동양 예술의 근원은 바로 도(道)에서 찾는다. 도는 끝이 없으며 심원(深遠)하고 아득함이 최고의 경지이다. 그래서 동양의 예술가들은 도를 품고 사물을 마음에다 비추고 만상을 음미함으로서 자연히 깨달음에 도달하기를 강조한다. 배움은 날마다 더하는 것이지만 도는 날마다 덜어내는 일로서 배우고 나면 깨버리고, 깨고 나면 다시 떠나라(修波離)고 했다.
서양의 문화는 실체와 비례에 의한 아름다움이다. 이러한 시각의 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원근투시법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천장의 선이 모두 예수님의 머리위로 모이게 함으로써 예수님을 더욱 위대하고 심오한 존재로 표현하였다. 이는 물적인 시각의 개념으로 하나의 사물을 인식하려면 고정된 초점으로써 사물을 독립적으로 보아야 분석이 되기 때문이다. 사진에서는 미국서부의 즉물주의 사진인 F-64 그룹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모젠 컨닝햄의 나뭇잎, 칼라, 꽃, 또는 에드워드 웨스턴의 피망, 조개, 모래무늬사진 등과 조지아 오케프의 꽃 그림 등도 이러한 고정 초점식 시각인 것이다. 그래서 서양 예술의 시점은 사물에서 가장 좋은 시점을 찾아내야 하고 그 초점에 의해서 분석적이고 본질적인 감각을 11집어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적 시점은 오브제가 금방 눈 에 보임으로서 마치 창문 구멍으로 내다보는 듯한 공간적 시각인 것이다. 이러한 서양적 시각은 다분히 인식론적이며 오브제를 중시하는 규범적 시각인 반면, 동양적 시각은 산점 투시로써 실체도 아니고 형식도 아닌 다만 넋을 잃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가슴속에 느껴지는 선(禪)적인 깨달음의 시각인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중국의 석도는 그의 화론(畵論)에서 "풍경은 마음으로 그리는 것으로서 만물의 느낌을 마음에다 차곡차곡 새겨두었다가 그것이 익어서 마음의 울림이 올 때 비로소 그려야한다"고 하였다. 그러한 총체적 시각은 초점 투시가 아닌 산점 투시인 것이다. 이러한 산점 투시는 관조(觀照)하는 시각으로서 사물의 이미지가 아스라이 가슴에 떠오르는 느낌의 시각이며 위, 아래, 멀리, 다시 가까이 돌아와서 눈을 사방으로 돌려보는 이동적인 산점 투시방법이다. 이러한 시각은 표층을 뚫고 심층의 맛보기인 관상(觀賞)으로써 온 몸에 배어드는 도(道)적이며 기(氣)적이며 선(禪)적인 시각인 것이다. 산점투시인 관조(觀照)적 미의 발원은 사방이 탁 트인 정자(亭子)의 구조에서 볼 수 있다. 정자에서 바라다봄은 멀리보고(平遠) 다시 올려다보고(高遠) 산의 뒤쪽까지 꿰뚫어보는 심원(深遠)으로서 보는 이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오는 시점으로 서양과 같이 한군데 머물지 않고 온 우주를 모두 마음 한곳으로 모으는 우주적 시각인 것이다.
중국의 장선(張宣)은 그의 시에서 "강산의 무한한 경치가 모두 이 정자에 모였구나"라고 하였다. 동양의 산점 투시는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고요함 속에서 눈만을 움직이는 시각인 것이다. 그래서 서양은 눈으로 즐기지만 동양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즐기는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의 즐거움이다. 동양의 공간은 시간을 공간화 하는 화해적 특성이다. 진정한 화해는 동질이 아닌 이질의 개념인 것이다. 이러한 동양적 화해는 우주적으로서 해와 달을 중심으로 하는 양과 음을 깔고 다시 오행(목, 화, 토, 금, 수)의 상극들이 서로 상생하는 조화야말로 진정한 화해 의 본질적 공간인 것이다. 상극 상생 공간의 특징은 대개 빈 듯한 공간으로 비어있음은 무(無)로서 유(有)의 공간인 것이다. 빈 듯 하면서도 비어있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공간에는 바로 도(道)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도적인 공간 밑에는 음과 양의 반복에 의해 기가 생기게 된다. 이렇게 기를 잉태하고 있는 도(道)는 곧 자연의 도(道)인 것이다.
서구의 빈 공간은 실체적인 허(虛)로서 허전할 뿐이지만 동양의 아물아물한 빈 공간은 좌망으로서의 선적인 경지와 소요유(逍遙遊) 심적 상태에서의 자유, 해방, 몽환감)를 맛볼 수 있다. 이러한 허의 공간은 곧 실(失)의 공간을 전제함이며 뜻을 얻으려면 말을 잊어야 하듯이 실을 얻으려면 먼저 허(虛)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허의 공간은 심오하고 멀고, 높고, 자유롭고, 한적하고, 담박하고, 우아하고, 맑고, 깨끗하며 진실이 살고 있는 본원의 도가적 공간으로서 밖은 말랐어도 안은 기름지고, 밖은 죽은 듯 하지만 안은 살아있음이고 밖은 나약한 듯 하지만 안은 위대함을 품고 있는 생명의 근원인 것이다. 이렇게 아스라한 공간 앞에 서면 마음이 비워지고 고요함의 정적에서 대청명(大靑明)에 이르게 되고 만물이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것이 없다. 그래서 이러한 공간은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으로서 육신과 눈, 귀의 작용이 마비되어 버리고 형체마저 잊어버린 채 오로지 대자연의 이치와 오묘함에 다다르게 되고 우주를 볼 수 있게 된다. 심재의 본성은 도(道)이며 도는 빈곳에서 보임으로 허(虛)가 바로 심재인 것이다. 가까이 보이는 사물은 보이는 순간 큰 감동을 주고, 그러한 순간적 감동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원상으로 되돌아가지만 멀리 아스라함의 감동은 뼈 속 깊이 스며들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깨달음으로 남는다. 그래서 아른거림은 구체적인 것보다 더 많은 느낌을 담고 있다. 도를 얻는 법은 눈과 귀가 아닌 마음으로 보고 듣고 다시 마음이 아닌 기로 느끼는 것만이 우주의 도를 얻는 방법이다.
색채로서도 서양은 흑백을 무색이라고 하여 색상환에 넣지 않고 있다. 그러나 동양은 오히려 서양의 현란한 색을 외면하고 검은색과 흰색을 모든 색의 근원으로 생각한다. 빛의 삼원색을 모두 하나로 합치면 흰 색이 되고 색의 삼원색을 합치면 검은색이 되기 때문이다. 서양의 일곱 가지 색은 현란한 가시적 색채이지 만 동양의 흑백은 심상적 색채로 인식하고 있다. 검은색은 단순한 검은색이 아니고 그 농도에 따라서 다섯 가지 색으로 구분된다. 서양의 원근감은 선으로 표현하고 동양의 원근감은 검은 먹색의 농도로서 사물의 뒷면에 감추어진 깊이까지 꿰뚫는 심원으로 표현하고 있다. 짙은 검은색은 음(陰)적인 색으로 심오하고 조용하고 음 유의미를 내포한 도가적 색채로 표현하고 있으며 흰색은 양(陽)적인 색으로 밝고 명쾌하고 산뜻한 유가적 색채이다. 동양에서의 검은색은 농도에 의해 다섯 가지 색으로 나타난다.
짙은 검은색은 구체적인 형상을 떠난 심오한 어떤 느낌인 심연의 본질, 즉 현묘함을 얻게 된다. 그래서 검은색을 모든 색의 근원으로 여기는 것은 동양철학과 연관되어 있다. 검은 색의 농도를 엷게 하는 것은 어떤 형상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반대로 형상밖에 있는 것을 얻기 위함이다. 중국의 장언은 "검은색의 톤으로 얻어지는 다섯 가지 색은 곧 득의를 얻기 위함" 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검은 색은 빛을 나타낼 뿐 아니라 끝없이 변화하는 심오한 우주의 기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어두운 검은색을 통하여 밝음을 볼 수 있고 이러한 어두운 색은 한참동안 보아야 그 참맛을 느낄 수 있다.
필자의 사진들은 위 글의 맥락에서 촬영해온 작업들이다. 이러한 작업들을 굳이 말한다면 크게는 동양적일 것이고 좁히면 한국적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
어쨌든 이 사진들은 그저 마음가는 대로 찍었을 뿐이다.
Nirvana beyond dark 3
글 / 이완교
서양의 미(美)와 우주관은 고대 그리스시대의 신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동양은 선진시대로부터 기(氣)를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다시 말하면, 서양의 예술관은 대개 인간의 활동을 중심으로 하였으나 동양은 하늘, 땅, 인간을 하나로 하는 천지인(天地人)의 우주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신플라톤주의자인 영국의 샤프츠베리나 쉐링의 내적감각설에 의해서 초월적 현실과 정신적 자연관인 동양의 미를 얻어가고 있다. 그러한 미의 본질은 초경험적인 비현실의 세계관으로 환상을 통한 초월이지만 동양은 철두철미한 현실을 통한 초월로서 기운생동(氣韻生動)의 내적인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감각의 개념도 서양은 피다고라스적인 시각과 청각만을 지적감각이라 하여 이 두 감각만을 예술에 응용하였으나 동양의 감각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섯가지 감각인 오감(五感)을 총체적으로 동원함을 물론 오감보다 더 중요한 마음이라는 감각을 더하여 육감(六感)을 모두 묶은 감각을 중요시하고 있다. 오감은 마지막 마음의 감각을 얻기 위한 전제이기 때문에 마지막 감각인 마음은 곧 형체마저 초월한 도(道)에 다다르게 된다. 이러한 도는 소요(逍遙)적인 무아지경에 도달함으로서 대 우주적 차원의 경지로 떠올라 그 속에서의 하늘과 땅과 내가 하나되는 우주적 자기발견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동서양의 우주관은 서로 다른 질문의 결과일 것이다.
또 다른 동양미의 특성은 텅 비어 있는 공간이 변화무쌍한 이치를 담고 있기 때문에 항상 비어 있기를 좋아한다. 이 비어 있음을 통하여 기가 생성되고 그 기를 통하여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세계로 빠져들면 곧 자아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한 자아상실은 곧 신(정신)의 소요유(逍遙遊)에 노닐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어 있음의 기운(氣韻)론은 도가 사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덕목이라서 동양예술 정신은 도가(道家)적 동심을 동경한다. 도가적 정신은 어떤 언어나 논리로 표현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결국은 예술의 창작정신과 잘 어울린다. 노자는 이러한 도(道)는 항상 도일 수 없다고 하여 도가도비상도(道家道非常道)라고 함으로써 더욱 더 창작적 매력이 감추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일찍이 혜능(慧能)도 말하길 “진정한 불도란 말이나 이론으로 표현하는 것이 부처님의 진정한 뜻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말은 깨달음의 경지가 인간의 모든 표현 영역을 초월하고 무념무상으로 비워놓은 공간에서만 떠오르기 때문이다.
서양의 감각은 돈오돈수와 같이 어느 한 순간에 전광석화 같이 생기지만 동양의 깨달음은 돈오점수와 같아서 공부를 통한 오랜 동안의 수련과 수양을 거쳐 높은 경지에 다다랐을 때 천천히 마음에 와 닿는다. 장자는 진정한 깨달음은 오감과 육감마저 떠난 상태를 선(禪) 또는 무념무상의 상태를 도(道)라고 하였다. 도는 사물 속에 있는 것이지 형질(形質)은 아니다. 그래서 노자는 말하길 “배움은 무족한 곳을 채우는 것인데 이 더함은 빼어버리기 위한 전제로서 배워야하고 배운 다음에는 빼버리라”라고 하였다. 즉 더하기는 빼기 위한 전제이어야 한다.
많은 동양예술의 근원은 바로 도(道)에서 찾는다. 도는 끝이 없으며 심원(深遠)하고 아득함이 최고의 경지이다. 그래서 동양의 예술가들은 도를 품고 사물을 마음에다 비추고 만상을 음미함으로서 자연히 깨달음에 도달하기를 강조한다. 배움은 날마다 더하는 것이지만 도는 날마다 덜어내는 일로서 배우고 나면 깨버리고, 깨고 나면 다시 떠나라(修波離)고 한다.
서양의 문화는 실체와 비례에 의한 아름다움이다. 이러한 시각의 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원근투시법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최후의 만찬에서 천장의 선이 모두 예수님의 머리 위로 모이게 함으로써 예수님을 더욱 위대하고 심오한 존재로 표현하였다. 이는 물질적 시각의 개념으로 하나의 사물을 인식하려면 고정된 초점으로써 사물을 독립적으로 보아야 분석이 되기 때문이다.
사진에서는 미국서부의 즉물주의 사진인 F-64 그룹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모젠 컨닝햄의 나뭇잎, 로버트 메플쏘프에게 영향을 준 칼라꽃, 또는 에드워드 웨스튼의 피망, 조개, 모래무늬 사진 등과 알프레드 스티그릿츠의 부인 조지아 오케프의 꽃 그림 등도 이러한 고정 초점식 시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양예술의 시점은 사물에서 가장 좋은 시점을 찾아내야 하고 그 초점에 의해서 분석적이고 본질적인 감각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적 시점은 오브제가 금방 눈에 보임으로서 마치 창문 구멍으로 내다보는 듯한 공간적 시각인 것이다. 이러한 서양적 시각은 다분히 인식론적이며 오브제를 중시하는 규범적 시각인 반면, 동양적 시각은 산점투시로서 실체도 아니고 형식도 아닌 다만 넋을 잃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가슴 속에 느껴지는 선(禪)적인 깨달음의 시각인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중국의 호가이자 미학자인 석도(石禱)는 그의 화론(畵論)에서 “풍경은 마음으로 그리는 것으로서 만물의 느낌을 마음에다 차곡차곡 새겨 두었다가 그것이 익어서 마음의 울림이 올 때 비로소 그려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한 총체적 시각은 초점 투시가 아닌 산점 투시인 것이다. 이러한 산점 투시는 관조(觀照)하는 시각으로서 사물의 이미지가 아스라이 가슴에 떠오르는 느낌의 시각이며 위, 아래, 멀리, 다시 가까이 돌아와서 눈을 사방으로 돌려보는 이동적인 산점 투시방법이다. 이러한 시각은 표층을 뚫고 심층의 맛보기인 관상(觀常)으로써 온 몸에 배어드는 도(道)적이며 기(氣)적이며 선(禪)적인 시각인 것이다. 산점투시인 관조(觀照)적 미의 발원은 사방이 탁 트인 정자(亭子)의 구조에서 볼 수 있다. 정자에서 바라다봄은 멀리보고(平遠) 다시 올려다보고(高遠) 산 넘어 까지 꿰뚫어보는 심원(深遠)으로서 보는 이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오는 시점으로 서양과 같이 한군데 머물지 않고 온 우주를 모두 마음 한 곳으로 모으는 우주적 시각인 것이다. 중국의 시인 장선(張宣)은 그의 시에서 “강산의 무한한 경치가 모두 이 정자에 모였구나”라고 하였다. 동양의 산점 투시는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고요함 속에서 눈만을 움직이는 시각인 것이다. 그래서 서양은 눈으로 즐기지만 동양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즐기는 장자의 심제(心齊)와 좌망(坐忘)의 즐거움인 것이다.
동양의 공간은 시간을 공간화 하는 화해적 특성인 것이다. 진정한 화해는 동질이 아닌 이질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양적 화해는 우주적으로서 해와 달을 중심으로 하는 양과 음을 끌고 다시 오행(목, 화, 토, 금, 수)의 상극들이 서로 상생하는 조화야말로 진정한 화해의 본질적 공간인 것이다. 상극 상생 공간의 특징은 대개 빈 듯한 공간으로 비어있음은 무(無)로서 유(有)의 공간인 것이다. 빈 듯 하면서도 비어있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공간에는 바로 도(道)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도적인 공간 밑에는 음과 양의 반복에 의해 기가 생기게 된다. 이렇게 기를 잉태하고 있는 도(道)는 곧 자연의 도(道)인 것이다.
서구의 빈공간은 실체적인 허(墟)로서 허전할 뿐이지만 동양의 아물아물한 빈 공간은 좌망으로서의 선적인 경지와 소요유(逍遙遊: 심적상태에서의 무한한 자유, 해방, 몽환감)을 맛 볼 수 있다. 이러한 허의 공간은 곧 실(失)의 공간을 전제함이며 뜻을 얻으려면 말을 잊어야 하듯이 실을 얻으려면 먼저 허(墟)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허의 공간은 심오하고, 멀고, 높고, 자유롭고, 한적하고, 담박하고, 우아하고, 맑고, 깨끗하며 진실이 살고 있는 본원의 도가적 공간으로서 밖은 말랐어도 안은 기름지고, 밖은 죽은 듯 하지만 안은 살아있음이고 밖은 나약한 듯 하지만 안은 위대함을 품고 있는 생명의 근원인 것이다. 이렇게 아스라한 공간 앞에 서면 마음이 비워지고 고요함의 정적에서 대청명(大靑明)에 이르게 되고 만물이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것이 없다. 그래서 이러한 공간은 심제(心齊)와 좌망(坐忘)으로서 육신과 눈, 귀의 작용이 마비되어 버리고 형체마저 잊어버린 채 오로지 대자연의 이치와 오묘함에 다다르게 되고 우주를 볼 수 있게 된다. 심제의 본성은 도(道)이며 도는 빈곳에서 보임으로서 허(虛)가 바로 심제인 것이다. 가까이 보이는 사물은 보이는 순간 큰 감동을 주고, 그러한 순간적 감동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원상으로 되돌아가지만, 멀리 아스라함의 감동은 가슴 깊숙한 곳을 통해 뼈 속 깊이까지 스며들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깨달음으로 남는다. 그래서 아물아물함은 구체적인 것보다 더 많은 느낌을 담고 있다. 도를 얻는 법은 눈가 귀가 아닌 마음으로 보고 듣고 다시 마음이 아닌 기로 느끼는 것만이 우주의 도를 얻는 방법이다.
색체로서도 서양은 흑백을 무색이라고 하여 색상환에 넣지 않고 있다. 그러나 동양은 오히려 서양의 현란한 색을 외면하고 검은 색과 흰 색을 모든 색의 근원으로 생각한다. 빛의 삼원색을 모두 하나로 합치면 흰 색이 되고 색의 삼원색을 합치면 검은 색이 되기 때문이다. 서양의 일곱 가지 색은 현란한 가시적 색채 이지만 동양의 흑백은 심상적 색채로 인식하고 있다. 검은색은 단순한 검은 색이 아니고 그 농도에 따라서 다섯가지 색으로 구분된다. 서양의 원근감은 선으로 표현하고 동양의 원근감은 검은 먹색의 농도로서 사물 속 깊이 감추어진 심원의 세계를 암시 하고 있다. 짙은 검은 색의 덩어리는 음(陰)으로서 우주 만물의 근원을 잉태하고 있는 자궁(子宮)으로서 생명과 신비의 원천인 것이다. 그래서 검은 색은 도가적 색이라고 한다면 흰 색은 유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양에서의 검은 색은 구체적인 형상을 떠난 현묘(玄妙)함으로서 동양철학과 연간되어있다.
검은 색의 농도를 엷게 하는 것은 어떤 형상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형상 밖에 있는 것을 얻기 위함이다. 즉 먹의 다섯가지 색은 득의(得意)를 얻기 위함이며 이렇게 어두운 색 앞에서는 몸과 마음 모두를 내려놓고 한참동안 물끄러미 서 있노라면 그 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사진들은 위 글의 맥락에서 나온 작업들로서 그저 마음 가는대로 찍었을 뿐이다.
(P.13)
저기 어둠을 넘어서
윤재근(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여러 해 전에 매우 무거운 이완교의 사진 작품집을 보면서 이분은 사진기로 실물을 찍지 않고 자기와 사물 사이에 렌즈를 두고 그 실물의 본질을 더듬어 많은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는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그 후 그의 개인전을 통해서도 더욱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는 그가 또 다른 전시를 앞두고 새로운 작품을 나에게 미리 볼 수 있는 기회를 안겨 주었다.
이번의 작품들은 저번의 기운생동(氣韻生動)은 사라지고 현묘(玄妙) 즉 어두움의 오묘함 속으로 잠입해 보라고 한다. 이렇게 컴컴한 속은 우리의 평범한 육안으로는 들여다본들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이완교의 작품을 보려면 육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컴컴한 속을 떠다닐 수 있다. 지금 이완교는 렌즈와 셔터를 빛과 순간에 맡겨두지 않고 먹과 붓의 대용으로 자연의 오묘함을 느끼게 하려고 카메라를 주물러대고 있는가 싶다. 이러한 작품들을 도가적으로 말한다면 '자연으로 오라'하고 불교적으로 말하면 '피안(彼岸)에 이르라'한다. 그래서 이번에 만나본 이완교의 작품들을 몰아서 '저기 어둠을 넘어서'라고 불러본다. 이렇게 컴컴하고 고요함은 눈도 귀도 입도 필요 없고 그냥 우두커니 어리둥절케 하는 순간을 혹(惑)이라 하고 그 순간을 겪어본 뒤를 일러 '어리석다(愚)'한다. 이렇게 어리석어야 모든 사물들이 숨기고 있는 진실을 만나볼 수 있다는 틈새를 궁리하고 있는 이완교만의 독특한 사진 세계는 분명히 그만의 자취를 남길 것이라고 확신하고 싶다.
하지만 동양의 작품들은 오히려 두 눈을 감아야 그 속으로 들어가 자유자재로 떠다닐 수 있다. 그래서 이완교의 작품은 종래의 선명한 사진의 틈을 과감하게 벗어남으로써 컴컴하고 뿌옇게 밝아오는 자연 속에서 오묘한 이미지가 무럭무럭 피어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진정한 작품을 보려면 육체적이고 과학적인 눈은 감아버리고 오로지 마음의 눈으로만 느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은 편안해지고 고요함의 밝음 속에서 진정한 마음의 자유를 얻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이미 오래전에 전시한 눈으로 보는 '기운생동(氣韻生動)'과 마음으로 느끼는(無念無想)'으로부터 싹튼 열매라고 할 것이다.
이완교의 작품은 모두 어두움 일색이다. 밝으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어두우면 마음이 밝아짐을 눈치 채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진정으로 감상하려면 우선 귀를 막고 말문을 닫고 예리한 눈의 초점을 무디게 해야한다. 그리고 '저기 찍힌 저것들은 무엇이냐?'라고 하는 소재의 질문도 하지 말고 그저 멍하게 바라다보노라면 자기도 모르게 고요해진 마음이 무르녹아 내림으로 나는 그의 작품을 '저기 어둠을 넘어서'라고 했고, 그의 작품들은 사진작품이라기보다는 노자와 장자의 선(禪)적 이야기라고 하고 싶다. 시각예술을 보려면 장님이 되고, 시(詩)를 음미하기 위해서는 벙어리가 되려함이 바로 동양미학의 즐거움일 수 있다. 오묘한 느낌은 마음 밖에서 일어나지 않고 항상 마음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어쨌든 사진의 사실성, 순간성 기록성의 숙명을 딛고 과감하게 자기 나름의 독특한 길을 개척해 가고 있는 이완교의 사진세계는 분명한 큰 발자국을 남길 것을 확신하면서 '저기 어둠을 넘어서' 앞에서 오늘 하루가 행복하였다.
(P.14-17)
이완교 사진이 표현하는 동양사상
최일범 (성균관 대학교 한국 철학과 교수)
사진에 문외한인 필자가 사진을, 그것도 전문가의 작품사진을 논한다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은 인연으로 인해 작가를 만나 작품을 보고 그가 지향하는 작품 세계를 듣고서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필자로서도 한마디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가 동양철학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물론 필자가 보기에 작가에게도 동양 철학에 대한 일가견이 있었고 그것이 그의 예술활동의 원천이었지만, 겸손하게도 궁금해 하였다. 작가와의 대화에서 필자는 그가 기(氣)와 노장 사상에 심취해 있고 그것이 그의 작품세계에 투영된 이념임을 알게 되었고, 또한 그가 사진예술의 토착화, 즉 한국적 사진예술의 정립을 위해 투지를 불태우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 필자가 작가의 사진과 대화를 시작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그가 사진 예술을 한국적 미학으로 재창조하려는 강한 신념에 동의한 때문이었다.
작가의 작품을 대하면서 필자의 마음에는 순간적으로 몇 가지 단상이 떠올랐는데, 그것은 도가(道家)의 장자(莊子)에 보이는 혼돈(混沌)과 불교의 상즉무애(相卽無碍)한 화엄(華嚴) 세계, 그리고 중국 북송(北宋) 시대의 도학자(道學者)인 주렴계(周廉溪, 1017-1073)라는 인물의 사상이었다. 주렴계를 떠 올린 이유는 작가의 사진이 온통 풀뿌리와 나무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었다. 주렴계는 당대를 대표하는 도학자였는데 그의 집 정원에는 항상 잡초가 우거졌다고 한다. 누군가 그 이유를 묻자 주렴계가 대답하기를 "잡초가 무성히 자라는 속에서 생명의 보편성을 느낀다'고 하였다. 우리는 보통 정원에는 아름답고 깨끗한 화초와 장식물이 자리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잡초의 자리가 없고 그 생명이 용납되지 않는다. 행여 어여쁜 화초 사이에 잡초의 싹이 요만이라도 보이면 대뜸 뽑혀지기 일쑤다. 그러나 주렴계의 눈에는 잡초도 엄연한 생명이었고 그 속에서 생명의 보편적 가치를 찾았다. 다시 말하면 그에게는 화초와 잡초를 분별하는 분별심이 없었고 일체가 다 생명이었다. 필자는 작가의 작품에서 일체를 생명의 흐름으로 인식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별(分別),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는 구분을 뛰어넘은 마음의 정지, 그것은 작가의 초점 흐릿한 작품과 함께 필자에게 장자의 혼돈을 떠올리게 하였다. 혼돈(混沌, chaos)에 대한 장자 응제왕편의 이야기는 이렇다.
남쪽 바다 임금의 이름은 숙이고 북쪽 바다 임금의 이름은 홀이고 그 가운데 임금은 혼돈(混沌)이라 이름 하였다. 숙과 홀이 때때로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은 그때마다 그들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숙과 홀은 혼돈의 은덕을 갚을 길이 없을까 의논하였다. “사람에게는 모두 일곱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쉬는데 오직 혼돈에게는 이런 구멍이 없으니 하루 한 구멍씩 뚫어 줍시다”라고 하였다. 하루 한 구명씩 뚫었는데 이레가 되자 혼돈은 죽고 말았다.
혼돈의 죽음은 자연의 전일성(全一性), 유기성(有機性)의 파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남쪽 바다의 임금과 북쪽 바다의 임금이 각각 분별의식의 세계를 상징한다면, 그 중앙인 혼돈은 분별을 초월한 경계이다. 서양에서는 혼돈을 'chaos'라고 하여 무질서한 상태라는 부정적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나 장자에서 혼돈은 그 중간자(=근원자) 역할을 통해서 남쪽과 북쪽이 다 같이 도움을 받는 근원적 의미를 갖는다. 이는 이분법(二分法)에 충실한 서양적 사고와 전일성을 지향하는 동양적 사유의 차이라고 하겠거니와 필자는 장자의 혼돈이야 말로 작가가 사진을 통해서 표현하려는 세계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혼돈에 구멍이 뚫린다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 원초적 비분별의 상태로부터 주객 이분화에 따른 분별의 의식으로 전환됨을 가리키거니와 이러한 분별심은 인간에게 미와 추, 선과 악의 가치를 구분하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혼돈의 비분별 상태가 가치를 부정하는 몰가치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금강경(金剛經)에서 설(設) 했듯이 “집착 없는 마음을 발하는 것이야 말로 혼돈의 진정한 의미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무주상보시, 즉 남을 돕고 있다는 의식 없는 도움 행위야 말로 집착 없는 마음이다. 즉 내가 지금 선을 행하고 있다는 의식이 나를 사로잡고 있는 한 내가 아무리 지금 선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오히려 나의 아만과 고집의 그럴듯한 포장에 불과하다”는 금강경의 가르침은 혼돈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잘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작가의 작품에 대한 육명심 교수의 다음과 같은 해석은 적절하고 생각된다.
“그의 풀 사진이나 나무 사진들은 얼핏 보기에 그동안 많이 보아왔고, 그래서 사진이라면 익히 아는 종래의 조형적인 사진들과는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들과 그의 사진 사이에는 확실하게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제까지 미국의 유명한 사진작가 캐라한(Calahan)과 그의 사진 유파들이 추구해온 조형적인 초목들의 사진들은 다분히 미(美)를 앞세우는 시각적 접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경우는 이 같은 사진의 질서와 구성의 추구하는 바와는 사뭇 다르게 우주생성의 근원적인 기(氣)의 작용, 즉 기운생동(氣韻生動)을 사진으로 포착하려는 것입니다. -풀이나 나무들을 미시적이고 즉물적으로 접근해서 그 속에서 자연의 질서를 추출하려는 이제까지의 사진들은 그 대상을 어디까지나 미적으로 파악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똑같은 대상 속에서 추출되는 조형질서를 생명적으로 파악한 것입니다.”
작품의 대상을 생명으로 보지 않는 한(물론 여기에서의 생명은 동양 철학의 유기체적, 전일적 생명관에서의 생명의 의미이다) 작가의 작품에 나타난 혼돈성, 편만성을 해석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작가의 작품이 화엄의 세계관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알다시피 화엄의 세계란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가 곧 하나'(一中一切, 多中一)인 유기적 세계이다. 그런데 이 유기적 세계란 단순히 물질세계의 구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의 마음 세계로서 중생의 생명에 대한 한량없는 자비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부처의 자비심 속에서 어느 한 생명인들 온 우주와 대등한 가치를 갖지 않겠는가. 다시 말하자면 부처의 한량없는 자비심 속에서, 즉 생명의 실상(實相)세계에서 모든 생명의 가치는 평등한 것이다.
생명을 차별하는 분별심을 초월한 무한한 마음(心)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이 나타내고자 하는 작품 세계가 바로 동양적 사상과 그 미학을 토대로 추구되고 있다는 사실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다.
선가(禪家)에서 회자되고 있는 '산은 산, 물은 물'의 화두를 통해서도 작가의 작품세계가 지향하는 방향이 드러날 수 있다. 청원(靑原) 유신 선사의 상당법어(上堂法語)로 유명한 이 화두는 생명의 세계에 대한 해석을 변증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첫 번째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는 사물을 분별하는 세속적 견지요, 두 번째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는 사물의 분별을 부정하고 평등성을 드러내는 초월적 경지이다. 그런데 유신 선사의 법어는 초월에서 끝나지 않는다. 세 번째 '산은 역시 산이고 물은 역시 물'이라는 초월로부터 세속에로의 회귀가 종극점이다. 어째서 세속에로의 회귀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가? 살아 숨쉬는 생명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세속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화려한 장미꽃과 소박한 국화를 평등하게 보는 것이 어찌 장미와 국화의 고유한 모습을 떠나서 이루어지랴. 장미의 화려함에 취해서 상대적으로 국화의 소박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세속적 분별심의 소치라면, 비분별심이란 장미의 화려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장미는 장미대로 국화는 국화대로 그 아름다움을 훼손하지 않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하자면 분별과 초월, 그리고 생명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음 모두가 마음의 세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 세계는 바로 이러한 비분별의 생명 가치, 존재 가치를 드러내려는 기획이며 그의 작품이 흐드러진 풀 한포기 나무 뿌리 하나 하나를 모두 소중하게 감싸 안고 어떤 분별도 거부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이라고 믿는다.
(P.19-23)
MY WORK'S NOTE
Yi, Wan-Gyo
In the Western tradition, the concept of the beauty begins with ancient Greek gods while, in the Eastern tradition, that concept be-gins based on the concept of Gi in Jin Dynasty. In other word, Western aesthetics is based on human activity while Eastern aesthetics is based on their vision of the universe that regards the heaven, the earth and the human as a singular being.
In the West, new-Platonists like Shaftsberry and Shering have introduced their theory of inner sense, which help people understand Oriental concept of the beauty. This kind of concept is an unrealistic vision of the world that transcends the reality through the fantasy while Eastern tradition is a transcendence through the reality based on the enlightenment of being full of atmosphere and life. Regard-ing the sense, western art applies only the sense of vision and the sense of hearing to its art while eastern art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all the sense: It not only applies all five sense the human has to its art but also put more emphasis on six sense, the mind. Five senses is nothing but the prerequisite to acquire sixth sense, the mind that will bring you to the stage of transcending the form. In this stage of Tao, you can find that you, the earth and the heaven is not the separated beings. The difference of vision of the world between the West and the East results from the different way they take in seeking the truth.
Another characteristic of eastern art is that its works have a space that can be interpretated as many different ways. This space creates Chi, that will bring you into the state of freedom from all thoughts, and in the end you can forget yourself. In that stage, you can enjoy the perfect peace of mind. Since this kind of theory of atmosphere is a top virtue of Taoism, Eastern art attempts to represent the spiritual world of Taoism. Beside, the spiritual world of Taoism cannot be expressed by words or any other logic, which matches well with the essence of art. Lao-tzu says that Tao cannot be called Tao. Huineng said that the truth of Buddhism cannot be expressed in words. In all, Eastern tradition emphasize the importance of the state of freedom from all thought as the place for enlightenment.
The sense in western tradition thought a long period of training. Chuang-tzu said that the true enlightenment is beyond human sense, the state of freedom from all thoughts. Though Tao exists in the object, it is not tangible. So Lao-tzu teaches us to realize the meaning of adding or deducting since one cannot exist without the other. Adding is a prerequisite for deducting.
The main source of Eastern art is Tao. Tao is the final stage, deep and infinite. Therefore, Eastern artists emphasize the enlightenment that can be acquired through understanding the order of the universe by inverse by investigating the object using one's mind. That is, knowledge means you add something everyday while Tao means you throw away something everyday. Once you acquire enlighten-ment, just leave.
Western culture creates the beauty by proportion of the object. The perspective of Leonard da Vinci is a good example. Designing all the lines in the ceiling in the way that they meets at one spot in the end-the head of the Jesus, he succeeds in expressing the Jesus as a great being. This effect results from the way of recognizing the object-when you analyze the object in the sense of vision, you have to see the object from a fixed focus.
In the case of photograph, F-64 group from the south of the U.S. is a good example. Picture of leaves, color and flower by Imo-gen Cunningham, picture of pimento, calm and sand by Edward Western and picture of flowers by Georgia O'Keeffe used a method of fixed focus. In western art, it is important to find the best vision point in the object, and to draw the essential and analytic sense though that focus. Thus, the vision point in Western art provides the whole picture of the object at it we were looking through the hole of the window. While this kind of approach in western art is quite epistemologic and normative emphasizing the object, the vision of Eastern art is kind of enlightenment of Zen that feels the object in one's mind instead of catching the shape or form. Shitao, a Chinese painter, said that you create a piece of landscape with you mind. First, you store all the feelings in your mind, and then you begin to paint when those feelings ring a bell in your mind. This kind of vision of in its entirety is not focus vision but spreading vision. It at-tempts to draw the image of the object in one's mind looking around the world, up and down, far and near. The structure of ancient cottage-open to all directions-provides a good source to explain the origin of spreading vision. Sitting in the ancient cottage, one can look far away, look up and look through the fronting mountain, and finally come back to his mind. In a word, spreading vision is a universal vision that does not go into one direction. It gathers all the universe in one's mind. Zhangshan of China said in his poet that this cottage commands a perfect view of the landscape of the world. Spreading vision of Eastern art requires not the eye but the mind to move. Therefore, Western people enjoy the landscape with the eye while Eastern people with the mind.
The space in Eastern art has a reconciliatory characteristic of spacing the time. True reconciliation is not homogeneous but hetero-geneous. The reconciliation in the Eastern tradition means the harmony of Yang and Yin and the balance of five Elements(tree, fire, soil, metal and water). Yin indicates the emptiness, but it also indicates the space for something. The truth exists in this space. The combination of Yang and Yin in this space creates Chi. Thus, Tao creating Chi is the truth of the nature.
In western viewpoint, the space means the physical emptiness while the space in Eastern tradition creates a spiritual place to enjoy the perfect freedom of mind. This kind of space requires the place of loss as its requisite. As we should forget the word to acquire the will, so we should acquire the emptiness first to acquire the loss. The space of the emptiness is deep, far away, high, free, silent, clear and space of Taoism where Tao prevails. This is the source of the life, whose inside is fertile though outside is sterile, inside is lively though outside is dead and inside is great though outside is weak. In this space, one can get the freedom from all thoughts and reach the state of enlightenment when you can understand every phenomenon around you. Thus, once you fall into this space, you forget you body, the sense of vision and hearing, and become to understand the order of the nature and the universe. The nature of the peace of mind is Tao, and the emptiness is the peace of mind since Tao works in the emptiness. The impression you get form the object near you is very big but it does not last long in your mind. Meanwhile, the impression you get in your mind does not go away as times go by. Thus, some say that spiritual impression leaves more diverse feelings than physical impression does. The only way to realize Tao of the universe is to recognize the world not with the eye or the ear but with the mind, and to feel the world through Chi.
As far as color is concerned, Western art does not include black in its color circle. Eastern art, however, regard black and white as the source of all the colors with little emphasis on other gorgeous colors. The combination of the three primary colors of the light produces the white color, and the combination of the three primary colors of the color produces the black color. Seven colors of the Western art is a visual factor while the black and white of the Eastern art is a factor for the mental image. The black is not a single color since it can be divided into five colors according to the density. The perspective in Western art expresses the object with lines while that in the Eastern art expresses even the depth of the object with the density of the black. Strong black is a color of Yin that can expresses the deep, silent and meaningful world of Taoism while weak black is a color of Yang that can expresses bright, clear and nice world of Confucianism
The black in the Eastern art;
First, it can be divided into five colors according to the density.
Second, Strong black can be used to express the essence of a deep feeling beyond just depicting the object. It has something to do with the Eastern philosophy that the black is considered the source of all the colors.
Third, diluting the black is not to depict the object but to express the something spiritual. A Chinese master said that five colors created by controling the density of the black is used to acquires the will.
The black not only expresses the light but also symbolizes the Chi of the universe. Therefore, we can see the brightness only through the dark black, and the true appreciation of the dark color requires a lot of time.
My works have been done based on aforementioned rationale.
I may say that my works are in the category of Eastern tradition or, more specifically, in the category of Korean tradition.
Anyway, I have just followed my heart in creating those photographs.
(P.25)
NIRVANA
Yoon, Jae-Geun (Professor Emeritus, Hanyang University)
Beyond Dark
When I looked at his photo collection a few years ago, I thought Yi, Wan-Gyo was an artist who gives you an eye-opening exper-ince getting close to the nature of things with camera lens set up between him and the objects, rather than just taking pictures of them. This thought was confirmed by his exhibition later on. Recently, he gave me a chance to take a look at his new works in advance, before making them public at his exhibition.
Contrary to his previous works of energy and dynamism, those were something that let you be absorbed into the dark. This darkness can not be seen by naked eyes. Only with the eyes of the heart can you see the dark and float in it. It seems that he uses lens and a shutter instead of Indian ink and brush to let you feel the great nature. These efforts are translated into 'Come to the nature' in Taoist terms and 'Get to the other side of shore' in Buddhist terms. So, I title those works 'beyond dark.' The moment you are in a maze of the dark, when you do not need the sense of your eyes, ears, and a mouth, you are mystified. And after going though that experience, you become foolish. Mr. Yi is telling you that you should be a fool to encounter the hidden truth behind everything. I am sure that he is going to create his own unique artistic world of photography.
When you appreciate eastern works of art, you are supposed to close your eyes to float freely around in them. That is true of Yi, Wan-Gyo, Unlike other photos of clear images, his works are dark and blurry but mystical pictures of the nature. That is why you should look at his works not with physical or scientific eyes, but with eyes of the heart. Then, you are going to feel comfortable and free in the bright silence. This has started from his previous exhibitions, 'vitality' and 'freedom from all thought.'
Every piece of his work is dim. Yi, Wan-Gyo seems to know that when it is bright, gets murky, and when it is murky, your mind your mind gets bright. So, you should have your ears and mouth covered, and eyes unfocused in order to appreciate them appropriately. You should not want to fine out what are those he has taken picture of. You should just gaze. Then your mind goes tranquil and melts down. So, I named his photos beyond the dark', like I said and I would like to say that his works are Zen story, not just photographs. It is the beauty of eastern arts that you should be blind when you want to enjoy visual arts and mute to enjoy poetry. It is because inspiration takes place on the inside, not on the outside.
Anyway, I am sure Yi, Wan-Gyo, who is pioneering his own way of photography transcending just making factual momentary records of things, will leave distinctive traces, I was happy today in front of 'beyond the dark.‘
(P.27-31)
Eastern Ideas expressed in Yi, Wan-Gyo's Photograph
Choi, li-bum (Professor, Department of Korean Philosophy, Sungkyunkwan University)
It many sound strange that I, being an outsider in the field of photograph, write an essay on the works of professional photographer. However, after saw his works and heard about his point of view in creating the works, I became to think that I might have something to say about his works as a scholar majoring in Eastern Ideas. This arttist, who I think has his own opinions on Eastern Ideas and whose artistic source is Eastern ideas, once asked me to comment on his works from the viewpont of eastern ideas. While talking with him, I noticed that he had been fascinated with a concept of Eastern Ideas, Chi, and that Chi is reflected in his works. In addition, I realized that this artist had devoted himself to finding the unique characteristics of Korean photograph art.
I should say that what attracted me to his works is his strong will to create a unique Korean aesthetics using photograph art. When I see his works, some fragmentary thoughts come up in my mind: The concept of Chaos of Taoism, Huayan of Buddhism and ideas of Zhou, lianxi, a chinese philosopher in North-Song Dynasty. His works remind me of Zhou, lianxi because his photographs captureonly roots and branches. Zhou, lianxi was a prominent philosopher of that period, whose house was filled with weeds. When someone asked the reason, he answered that he feels the universality of the life from the thriving weeds. In general, most of the people want to decorate their garden with beautiful flowers. There is no room for weeds to grow. People get rid of weed as soon as it begin to bud between beautiful flowers. To Zhou, lianxi, however, weeds is nothing but a holder of the life, and he sees the universality of the life in it. In other word, he treats flowers and weeds in the same way because they are holders of the life. I think we may notice in his works his intention to recognize everything as the movement of the life.
He seems to make an effort to reach the stage of no-distinction: in this stage, one does not see the object from the viewpoint of which is right or wrong. This kind of his mental stage, together with intentionally mis-focused works, reminds me of Chaos that Chuangtzu said. This story is as follows:
The Ruler of the Southern Ocean was Shu, the Ruler of the Northern Ocean was Hu, and the Ruler of the Centre was Chaos. Shu and Hu were continually meeting in the land of Chaos, who treated them very well. They consulted together how they might repay his kindness, and said, "Men all have seven orifices for the purpose of seeing, hearing, eating, and breathing, while this (poor)Ruler alone has not one. Let us try and make them for him." Accordingly they dug one orifice in him every day; and at the end of seven days Chaos died.
The death of Chaos symbolizes the destruction of organic and singular characteristic of the nature. While the kings of the south sea and the north sea symbolize the stage of distinction, Chaos, the king of the center, symbolize the stage of no-distinction. In the West- em tradition, chaos has a negative meaning of the state of no-order. However, Chuangtzu's Chaos has a positive meaning of the center or the origin that connects the north and the south. This kind of difference in the meaning of chaos comes from the basic difference in the way of thinking between West based on dichotomy and East pursuing the unity. I have become to conclude that Chuangtzu's chaos might be what he intends to express through his works. Puncturing Chaos symbolizes the transferring of human consciousness from the stage of no-distinction to the stage of distinction. In the stage of distinction, one becomes to distinct the values, beauty and ugliness, vice and virtue. But reaching the stage of no-distinction does not mean the denial of any value. As Mahavairocana teaches us, chaos means the stage of no-obsession. It's like that even when you help someone, you don't have the consciousness of helping someone. The teaching of Mahavariocana that if you are conscious of helping others, that is not true virtue, but hypocrisy explains the true meaning of chaos. In that regard, professor Myoungsim. Youk's comment on his works is very appropriate.
"His pictures of the grass or the branch is so familiar that I cannot see anything different in his works from photographs of other artists. But, I should say that his photographs have one thing unique to him. Photographs of the grass taken by famous American photographer, Calahan and his followers attempt to visualize the beauty while his works attempts to capture the movement of Chi, the origin source of the universe, instead of pursuing the order and composition of photograph itself. Photographs attempting to catch the order of the nature by investigating the grass or the tree itself just catch hold of the object from the perspective of the beauty. Meanwhile, he attempts to catch hold of the formative order from the perspective of the life."
Unless you see the object in his work as a holder of the life(the concept of the life here comes from the viewpoint of organic and singular living body of Eastern Ideas), you cannot understand the concept of chaos and relaxation expressed in his works. In that regard, we can say that his works represent the tip of viewpoint of Abatamska. The world of Abatamska can be explained as the organic world where one is the entire body and the entire body is one. By the way, this orgnic world not only explains the physical structure of the world but also expresses the spritual world of enlightened Buddha, his mercy for any holder of the life. To Buddha, any holder of the life has the same significance that the entire universe has. In the mind of the Buddha, each and everything in this universe is equal in terms of the value of its life. We should face the mind reaching the stage of no-distinction, and command control of it. His artistic world has an unlimited potential because his works are based on eastern Ideas and aesthetics.
I can explain the direction of his artistic world using the meditation topic of Zen society-mountain is a mountain, and water is water. This well-known meditation topic by Yousin expresses the dialectic interpretation of the life. First, "mountain is a mountain, and water is water" indicates the mundane stage of distinction. Second, "mountain is not a mountain, and water is not water" indicates the transcendental stage of no-distinction. Yousin, however, goes beyond this stage. Third, "mountain is also a mountain, and water is also water" indicates the return from the transcendental stage to the mundane stage. Why we should return to the mundane world? That's because we should go back to the mundane world to see the life. Recognizing the value of the life of a rose and a mum equally is one thing and appreciating the color and shape of both differently is another. In the mundane stage of distinction, we do not see the humble beauty of a mum blinded by the gorgeous beauty of a rose. In the transcendental stage of no-distinction, we can recognize the value of a mum as well as the beauty of a rose, rather than denying the beauty of a rose. In a world, distinction, no-distinction and enlightening of true value of the life is happening in the world of the mind. Artistic world of this artist attempts to investigate the value of the life from the viewpoint of no-distinction. That's why his photographs do not despise a single grass or a tree and reject any kind of distinction.
어두움 저 너머
어두움 저 너머는 보이는 대상 너머의 상외지의(象外之義) 로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초월적이고 무한한 우주의 이치를 지향하고자 함이다. 이는 이것의 객관적 대상을 통하여 저것의 주관적 느낌에 도달하고자 함이다. 이러한 것은 사물을 인식하는 여기의 하드웨어 (hard wear)에서 정신을 위한 저 너머의 소프트웨어(soft wear)를 추구하고자 함이다. 다시 말하면 형이하의 형을 통한 형이상의 신(神) 즉 정신을 얻고자 함이다. 저 너머는 공간 없는 공간으로 되돌아가고 그렇게 함으로 서 도 에서 비롯된 신비로운 마법에 가까운 힘을 다시 얻게 되고 보이는 여기 이 세상을 넘어 서게 된다. 도 안에서는 심제 좌망을 통하여 볼 수도 들을 수도 잡을 수도 없는 것들의 황홀 속에서 모든 것들이 뒤섞여 하나 됨으로 서 덧없는 세상을 따라가던 길에서 벗으나 진정한 자기의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자 함이다.
저 너머는 장자의 사상으로 있음을 넘어 없음을 보고자 함이고 베이컨의 현실을 통한 비가시적 본질을 표현하고자 함이고, 프라톤의 이데아 이기도하다. 노자 47장에 형태(in form) 속에 머물면 정보를 얻게되고 형태를 넘어서면 영감을 얻는다, 형태를 넘어서는 것은 상상력으로 종합적 지적 능력으로서 만들어진 상,(像) 즉 이미지는 독자적 생명력을 지닌다. 서양 철학자 프라톤은 생성과 소멸의 가시적 세계는 허구이고 오히려 보이지 않는 세계가 이데아(IDEA)로서 진정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이데아의 세계는 저 넘어 상상의 세계로서 형이상학적으로 장자의 무한 자유의 상태에서 생긴다.
이러한 사유는 서양의 여러 철학자들 에서도 볼 수 있다. 헤겔(HEGEL)은 본질은 가상을 통해서 투시된다 하였고 아리스토 텔레스도 예술은 가상을 통해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칸트(KANT) 역시 예술은 상상의 소산으로 천재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이라고 하였다. 또한 하르트만 역시 예술작품은 앞에서 보이는 물질적 소재인 전경을 통해 떠 오르는 정신적 내용을 후경이라 하고 작품은 전경과 후경으로 이루어진다 라고 하였다. 예술은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있게 하는 발명인 것이다. 이러한 발명의 원천은 상상력으로 내면의 세계가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에 공자보다는 장자의 소요유(逍搖遊)로서 걸림 없는 무한한 자유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
공자는 소에 코뚜레를 하고 고삐를 매어서 이미 닦여진 길로 가게하고 장자는 코뚜레는커녕 고삐마져 풀어서 가고싶은 대로 가는 길을 도(道)라고 하였다. 그래서 저 너머는 장자의 소요유로 무한한 상상의 공간으로 창작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저 너머의 공간은 상구지상(象久之象) 으로 깨닫게 되면 형체 너머의 형체, 맛 너머의 맛을 느끼게 된다. 영국의 비틀스 멤버였던 폴메카트니가 불러서 유행을 시켰던 예스터데이(YESTER DAY)와 렛잇비(LET IT BE) 는 순리를 따르라는 노자의 사상이 깔려있고 존레넌의 이메이진(imagine) 은 마음껏 상상하고 꿈을 꾸라는 장자의 사상인 저 너머(beyond)를 노래하고 있다. 또한 드가의 그림도 보이지 않는 저 너머를 보라고 한다. 스페인의 유명한 맹인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의 아란후에스 협주곡은 보이지 않는 별궁 담장 밖에 살 고 있는 집시들의 삶의 모습을 부인으로 부터 듣고 상상의 저 너머에 의한 명곡으로 애청 되고 있다. 장자는 무위와 무형인 도의 개념에서 보이지 않는 저 너머(BEYOND) 와 하나 되고자 하였고 모든 규범과 구속에서 벗으나 도와 하나 되고자 하였다. 하지 않는 것과 없는 것의 도(道) 로 서 자유로운 환상과 상상의 정신은 발명의 세계로서 창의적 사고에 튼튼한 초석이 되고 있다.
소리를 시각의 영상으로 이완교의 사진 세계
글 / 육명심 (서울예술전문대학 사진과 교수)
대학교 때의 전공은 바이올린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카메라 속에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완교씨. 어차피 인간은 완전치 못하고 뭔가 완성을 위해 투쟁하는 과정이라 본다면 이 작가의 여정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게 보일 수 있으리라. 흔히 예술가라면 평범치 않은 차림새로 연상되지만 이 작가는 진실 된 생활인의 모습 그대로이다. 절대로 척하지 않으며 가식이 없는 그대로. 그러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이 바로 이완교씨이다. 사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사진이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를, 새로운 사진세계로 이끌어주는 이 작가에 대해서 지난 7월 20일부터 25일까지 롯데미술관의 초대전으로 열린 2번째의 전시작품을 중심으로 풀어본다. 멀리서 울리는 종소리는 은은하게 공간에 퍼져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것처럼 이번에 「회향 - 공간(空間)」이라는 주제로 발표된 이완교씨의 사진은 절대로 강한 이미지는 아니지만 영원히 기억되고, 사라지지 않는 자연의 향을 지닌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이완교씨의 사진은 사진이라는 예술에 새로운 개념과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때론 풍경화처럼, 정물화처럼, 또 그래픽처럼도 표현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기록성, 보존성, 현장감, 생동감으로서의 사진다운 사진은 그의 사진세계에서 보기 어렵다. 예술이 작가의 창조이고 표현이라면 어디까지나 작가의 의도대로 표현이라면 어디까지나 작가의 의도대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사물을 보는 의식에 따라서 작가의 표현 방법이 달라진다. 사진이란 재생(reproduction)이 아니라 작가의 사상, 시각(視覺),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이라고, 사진을 너무 사진으로만 보려고 하는 것은 작가 의식이 결여된 것이라고, 사진가는 카메라라는 매체를 사용하는 것이지 사진 같은 사진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이완교씨는 설명한다. 그래서 여기엔 사진이 어디까지 표현이 가능한가에 대해서 오래도록 고민한 흔적이 나타나 있다. 이 작가는 작품을 하기 전에 먼저 thinking하고 그리고 seeing과 meaning을 한다. 언제나 철두철미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가운데에 사물을 보는 눈이 트이게 돼서 자신의 작품 속에서 진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의 만남. 이것이 바로 작품을 하는 사람의 진실이 아닐까. 이번에 소개된 사진의 배경은 속초에서 영덕까지의 동해안이다. 동해안은 이 완교씨의 고향. 어릴 적의 기억이 떠오르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아픈 기억조차도 그리워지는 마음의 시작이고 끝이다. 그런데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하늘만이 화면 가득히 메우고 있다. 그곳 바닷가는 바다가 하늘이고, 하늘이 바다인 모양이다. 또 셋팅이나 어떤 연출이 있었던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작품의 소재로 택해졌을 뿐이지, 그곳의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표현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여기를 무대로 작가의 의식과 논리를 전개시킨 것이다. 정방형, 모든 미술가들은 이 사이즈를 위험시한다. 단순하면서 짜기 어려운 구도인 까닭이다. 그래서 흔히 한 변을 잘라내어 가로 : 세로가 황금비가 되는 크기에 자기를 담으려 한다. 또 정방향으로 찍었다 하더라도 인화하는 과정 중에 황금비를 만들고 만다. 그러나 정방형은 그 형대로의 특징이 있으리라. 핫셀블러드(Hassel Blad)를 사용한 이 사진들은 정사각형으로만 생각할지 모르나, 그렇지가 않다. 정사각형 안에 존재하는 황금분할의 형태가 새로운 의미를 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골든 섹션과 스퀘어를 함께 묶어 볼 수 있는 공간 개념을 설정) 한 변에만 변화를 주었을 때는(밑변의 변화) 정적과 고요함을 만끽할 수 있다. 지극히 안정된 분위기가, 파란 하늘의 넓은 공간이 우리에게 환상의 날개를 달아준다. 또 칼라사진에서 자연색을 그대로 닮게 나타내는 것은 예술이 될 수 없다.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색은 작가 자신이 직접 만든 필터와 노출의 과감을 이용한 것이다. 자연색이 아닌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색대로 하고파서, 암실에서의 테크닉이 아닌 현장에서 만들어내는 작가의 색을 사용했다. 앞서도 말한 것처럼 뭔가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소리를 표현하고픈 것이 바로 이 작가의 생각이며, 또 앞으로의 계획이다. 소리를 영상으로 바꾸는 작업, 사진도 소리를 담고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연구하는 중에 보이고 싶다고 한다. 결국, 자신의 보다 성숙된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 작가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
현실공간에서 환상의 이미지를··· 사진가 이 완교씨가 두 번째 개인전을 가졌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첫 번째 개인전을 보고 나로서는 본인에게 앞으로 좀 더 그가 하는 작업을 더 두고 보지 않고는 평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까닭은 그때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사진들이 하나같이 사진의 전통적인 수법에서 벗어난 실험적인 것들로 그전에 간간히 보았던 그의 사진과는 맥락이 뚜렷하게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의 전시회를 보고 그가 요즈음 시도하고 있는 일련의 작업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자아동일성(identity)과 맞닿은 자신의 필연적인 추구임이 뚜렷해졌다. 이번에 보여준 사진적인 시도를 통해서 본인은 이제까지 암중모색해온 몸부림이 뭣인가를 스스로 발견함과 동시에 자기다운 이야기가 분명해졌다고 본다. 첫 번째 개인전에서 그가 시도한 것은 「모든 예술은 음악을 동경한다.」는 말처럼 음악의 청각적인 이미지를 사진적으로 영상화하려는 작업이었다. 그리하여 일체의 구상적(具象的)인 요소들을 배제하고 특수한 사진기법을 동원해서 시각적인 조형과 리듬감을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두 번째 전시회에서 그는 추상적인 공간으로부터 현실공간으로 돌아왔다. 이러한 변화가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추상적인 표현의 시도 속에 담으려 했던 환상의 이미지를 이번에는 현실 공간 속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번에 동해 바닷가, 그가 잘 아는 고향을 주제로 선정하고 과거의 회상적인 시공간(視空間)을 시각적으로 영상화했다. 그리하여 과거의 작업과 현재 하고 있는 작업이 일관된 체계 속에서 자기감정의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다. 이러한 추상세계로부터 현실공간으로의 변환(変換)은 내가 보는 바로는 그의 내면 속에 맴돌고 있던 그리움의 이미지가 막연했던 상태에서 뚜렷하고 확실하게 자각됨으로써 이루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완교씨의 사진적 특징은 사진에서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대상의 본질적 리얼리티(reality)의 파악과는 달리, 대상에 대한 시각적 인식의 추구이다. 첫 번째 사진전에서는 막연한 조짐으로 드러났던 이러한 특징이 이번에는 분명히 본인의 고유한 자기 것으로 일단 정립되었다. 과거의 추상적인 공간이 이번에는 현실적인 공간으로 바뀌면서 사진의 화면 전체 속에서 시간과 공간의 시각적인 인식의 논리체계가 형성됐다. 이점이 이번 전시와 지난번 전시와의 단계적인 과정에서 크게 발전된 주목할 만한 성과이다. 그는 그리움이라는 환상의 이미지와 멀리서 만나보는 원격(遠隔)의 공간과 맞물려서 감성과 이성이 합일된 시각적 인식체계를 형성하였다. 그리하여 현실공간을 수동적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의 감정과 인식의 논리에 동조시켜 내면적인 공간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감각과 인식에 의한 시각적 사고의 예술행위인데 아직 우리 사진계에서는 별로 관심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다.
이 사진전이 우리 사진계에 던져준 의의는 현대사진의 한 갈래를 끌어들여 사진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인 점이다. 이제 이 사진가의 앞으로의 과제는 자신의 사진적 특성을 확실히 인식하고 보다 차원이 높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시각적 논리체계를 영상적으로 전개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시각적 사고에 대한 두뇌의 훈련과 아울러, 끊임없는 작업을 통한 다양한 영상언어의 문맥을 체험으로 소화해야 한다. 앞으로 사진가 이완교씨는 과연 우리에게 사진영상에 의한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해서 우리에게 보여줄 것인지 자못 궁금하고 또한 기대되는바 크다.
이완교사진전에서 사물(事物), 의식(意識), 공간(空簡)
글 / 김복영 (미학미술평론가)
“멀리 봄”의 시각(視覺)
“사물을 가까이서 볼 때 보다 멀리서 볼 때 진실이 더욱 고조되는 것 같다.” 롯데미술관 초대전으로 갖는 그의 두 번째 개인전을 앞두고 작가는 자신의 작품의 의도를 아주 솔직히 이와 같이 말하고 있다. 사진이라는 활동이 흔히 사물을 그 근접거리에 있어서 드러나는 모습을 포착하는 것이 통념인바, 만일 이러한 일상의 통념을 뒤집어놓는다면 다소간 사물의 색다른 정황을 보게 될 것이다. 작가는 이 경우를 가리켜 사물의 보다 진실 됨을 이렇게 함으로써 엿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일상의 사물들을 좀 더 새롭게 볼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이다. 진실로 새롭게 보기위한 「목적」에서 그가 사진을 매체로 선택하였다면 그는 이미 사물을 기록하는 「수단」을 포기하고 그러한 수단을 통해서 일종의 가상세계에 대한 인간의 의지적 활동을 제기하는 셈이다. 하나의 작품이 정신활동의 소산임을 보이기 위해서 우선 그는 “멀리 봄”의 시각을 선택하고 있다. 주제로 등장하는 방갈로, 해안의 점경고 인물, 농촌점경, 바다, 텅 빈 산마루, 지평선에 선 인물과 같은 주로 동해안의 이모저모를 가지고 그는 시야에로 「다가오는」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시야로부터 「사라져 가는」 모습으로 인각해 놓는다. “이러고 보니 근거리의 지루함이 없어 보이고 원초적인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자신의 심경을 실토한다.
기억의 공간
필자에 관한 한, 이 작가가 근거리시야를 선택하고 있는 데에는 분명한 한 가지 의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의도란 사물의 「기록」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존재하는 「의미」의 대상으로서의 사물을 보고자 한다는 점이다. 현실의 3차원적 사물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에 대응하는 “가능적” 대상이란 무엇일까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선 작가는 의식 가운데에서 가장 간단한 「기억」의 대상을 선호하고자 하는 것 같다. 텅 빈 산마루에 홀로선 소나무, 해변의 사람 없는 방갈로의 모습을 통해 그것이 현실의 지각적 사물로서가 아니라 어느 날 여행에서 돌아와 기억을 되살릴 때 저 멀리서 들려오는 「울림」으로서의 “기억상실”을 생각게 하는 사물들이 모습이다. 작가는 이에 관하여 “회향성의 의식”을 말하고 싶다고 한다. 기억 속에서 먼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마음의 울림을 포착하려고 하는 것이다. 기억의 세계는 지각의 세계와 달리 특수한 부분들이 대부분 사상되고 자신에게 아주 어필하는 커다란 부분들만이 최후에 남게 되는 의식 속의 사물들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대부분이 덩그렇게 비고 그렇게 허허한 공간 속에 그 대신 전영이 채워진다. 이완교의 경우 다루어진 주제들은 모두 평면 아래에 가냘프게 배치되고 그 이상은 텅 빈 하늘의 공허로 메워진다. “사람을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그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보이도록 하고 싶다”고 하는 작가는 분명히 사물들을 기억의 의식 속에 현전되는 특수한 의미의 사물에도 소급되기를 바라고 있다.
공간과 사물의 존재
작가가 기억의 공간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화면의 「시공간적」 의미를 포착하려는 것으로 해석 될 수 있다. 카메라의 「눈(眼)을 가지고 인간 괴괴의 「눈」으로 변형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사용하고 있는 「정방형공간에다 광각렌즈의 물리적 가능성을 전혀 우연의 것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오히려 자신의 필연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는 그러한 자세에서 자신의 의도하는 저 의식의 사물들, 그 사물들이 있는 그대로 가장 본연의 자태로 나타날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때 의식의 공간이 현실의 공간에 대신해서 화면을 지배하게 되고 보는 사람에 대해서 기억의 사물로서의 인상을 드러낸다. 이렇게 해서 얻어지는 작품은 사물의 존재에 대한 의미의 탐색을 위해서만 제시된다. 시간적으로는 지각할 수 있는 최대의 시간거리로서, 아득한 먼 옛날의 것 인양 가능한 거리를 갖도록 피사체의 주제들을 인상 지워낸다. 이러한 시간거리의 최댓값에 비례해서 의식공간의 가장 강렬한 환영이 설정된다.
하나의 가능성
사진을 가지고, 아니 이를 「통해서」 하나의 “정신적 사물”을 서술하고자 하는 태도 내지 방법은 우리나라 사진세대들의 새로운 모범의 일단으로 간주되어도 좋을 것이다. 「기록」에 맞설 「정신적 사물」로서의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말해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는 두고두고 논의되어야 할 것이지만 우리의 세대들 중에서 이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있어야 하고 우선 무엇보다 용기와 확신을 가지고 많은 활동을 집적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이완교의 시도는 그러한 범례의 하나를 착실히 실천하고 있다하여 좋으리라. 거기에는 많은 문제들이 노출될 터이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의 상황에서는 가령 “사진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하나의 문제제기가 해답의 강요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당장의 거치름은 다음의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통하여 해결되고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여야 할 것이다.
노스탤지어의 반조형 공간 이완교씨의 사진에 붙여
글 / 한정식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
이완교 씨의 첫 사진전 「판타지」가 필자의 주목을 끈 것은 그의 반사진적 시도 때문이었다. 「판타지(FANTASY)」란 타이틀이 보여 주듯 그의 사진엔 환상적 색채의 합창만이 들려올 뿐, 일체의 사물이 그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초점은커녕 대상의 형태조차 구별이 안 되는 그 색채의 물결은 일체의 사진적 접근 방법을 거부한, 아니 사진적 의식조차 거부한 반사진적 도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반사진적 시도는 그의 냉철한 실험정신의 소산이었다기보다는 저 깊은 마음의 밑바닥에서 끓고 있던 그의 격정이 뚫고 나아간 외줄기 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캄캄한 동굴 안에서 헤매다 찾아낸 한줄기 빛, 그 빛을 따라 다다른 곳이 반사진적, 반조형적 영상이었던 것으로, 이는 그의 머리가 짜 놓은 그물이 아니라 그의 마음이 풀어놓은 구름이었던 것이다. ‘음악의 청각적 이미지를 사진적으로 영상화한’ 것으로 파악한 육명심 교수의 지적(종합「디자인」 83년 10월호 48쪽)은 그런 의미에서 탁견이었다. 음악은 조형을 거부한다. 그의 사진이 보여주는 반조형은 그 바탕을 이 음악에서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청각적, 음악적 이미지를 과연 시각화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몇 권의 저술로도 풀릴 수 없는 어쩌면 영원한 예술적 과제일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그의 그러한 시도를 찬반론으로 가릴 수는 없다. 다만 해볼 뿐인 것이다. 필자가 그의 첫 사진전에 주목을 하고 기대를 한 것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였다. 그의 이 음악적 이미지의 시각화가 과연 어떤 길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이며, 어떤 것이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기대였던 것이다.
그 후, 그는 필자와의 사담에서 청각 이미지의 시각화에 대한 본격적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뜻을 비춘 적이 있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든가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어떻게 시각화하느냐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그 나름으로는 상당히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그가 보여준 것이 그의 두 번째의 사진전 「회향-공간」이었다. 두 번째의 그의 개인전 「회향-공간」에서 일견 그는 커다란 변모를 보여 주었다. 초점이 분명히 맞고, 보여 주고자 하는 대상의 윤곽은, 그리하여 형태는 이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완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180도의 회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말하자면, 반사진적 도전에서 사진적 접근 방법으로의 귀환이었다. 종전의 「판타지」가 지나치게 회화적이었던데 대한 그 나름으로의 반성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그의 첫 사진전 「판타지」는 환상의 영상화란 면에 치우친 나머지 사실상 너무나 회화적인 외형을 띠고 나타났던 것이 사실이었다. 회화적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서슴없이 내어 놓는 것은 회화와 사진을 혼동해서가 아니라, 회화와 사진의 뚜렷한 경계선을 어디에 그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동시에 회화와 사진에 경계를 그어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 제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문의 바탕에는, 사진이든 어떤 다른 예술이든 경계선을 어디에 그어 놓고, 그 경계선을 어디까지 또 언제까지 지켜야 하는 가에 대한 의문이 깔려있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필자의 ‘반사진적’이란 표현에도 문제가 생기게 된다. 무엇이 사진적이고 무엇이 반사진적인가 하는 문제다. 그의 ‘판타지’는 결국, 이러한 ‘사진∙반사진’에 대한 의문 제기 또는 이의 제기라는 측면에서도 이해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두 번째의 전시에서도 같은 이슈로 등장한다.
두 번째의 전시 「회향-공간」이 「판타지」에 비해 보다 ‘사진적’으로 돌아섰다는 판단은 사실은, 아직도 그 둘이 같은 맥락 속에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잠시 유보되어야 할 판단이라 할 수 있다. 즉, 아직도 그의 사진은 ‘사진적’이지 않은 것이다. 그의 두 번째 전시는 첫 번째와 외형이 다를 뿐 비구상적, 반사진적 실험의 계속이란 점에서 같은 바탕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사진을 분명 보여주고자 했고 그 전시를 다녀온 우리는 분명 보고 왔지만 실상 우리는 아무것도 본 것이 없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분명 우리는 ‘본’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다만 ‘느꼈을’ 뿐이다. 전시장을 채운 50점의 사진을 보고 돌아선 우리의 뇌리에 박힌 그 사진들의 인상은 그가 허허롭게 안고 돌아섰던 그 넓고 푸른 하늘의 이미지뿐이었다. 무엇인가 멀고, 무엇인가 허허롭고, 그리고 무엇인가 그리운 어떤 아픔을 안고 돌아섰을 뿐, 구체적인 한 장 한 장 사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우리는 가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진이 보여 주는 예술 곧 시각 예술이라고 할 때,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고 느끼게 해주었다는 것은 그의 사진이 아직도 사진적이지 않다는, 바꾸어 말하자면 그의 사진에 대한 인식이 지각에 집착하기보다 정감에 끌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의 사진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추상화, 비구상화의 세계로 아직도 끌고 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의 「회향-공간」은 얼른 보면 조형으로 기운 것처럼 보인다. 특히 높이 치켜 올라가거나 극단적으로 쳐진 수평선 또는 지평선은 상식을 벗어나 새로운 조형으로 승화시키려 한 의도로 보인다. 특히 타이틀에 붙은 ‘공간’ 두 자는 우리로 하여금 그 사진을 조형으로 이해하게 하려는 음모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치켜 올려진 수평선, 극단적으로 쳐져 내려온 지평선(사진③,④참조)은 조형의 제시라기엔 사실상 너무 상식적일 수도 있다.
그의 「회향-공간」은 회화성으로 보다는 오히려 문학성으로 이해하려 할 때, 보다 분명하고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높이 치켜 올라간 수평선이나 쳐진 지평선은 거기 나타난 다른 피사체들, 극히 조그마하게 모습을 보일 뿐인 여타의 피사체들과 함께 실은, 아스라이 멀어져 간 고향의 이미지, 그의 마음속에서 항상 밖을 향해 몸부림치는 노스탤지어 바로 그것의 영상적 결론인 것이다.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인물까지를 포함해서 모두 벌레처럼 자그마하게 축소되어 있다. 이 자그마한 축소는 실은 그의 기억 속에서 가물거리는 어린 시절의 어렴풋한 추억의 영상화일 뿐이다. 그의 사진을 문학성으로 이해하는 것도 그것이 비록 형태로 나타났을 지언정, 형태가 그가 작성한 최종 답안이 아니라, 형태를 지니지 못한 향수가 어쩔 수 없이 빌어 입은 남의 옷일 뿐이라는데 있다. 이는 마치 소월의 ‘청산과의 거리’와 같은 맥락 위에 선다. ‘저만치’ 피어 있는 꽃의 ‘나와 청산과의 거리’(김동리의 평론)는 그대로 이완교와 고향의 공간적 거리, 또는 이완교와 어린 시절과의 시간적 거리인 것에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 그리고 어린 시절은 그의 기억 속에 아스라이 가물거리고 있다.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것, 텅 비인, 너무나도 새파란 하늘 아래 자꾸자꾸 작아져가는 소재들은 이 가물거리는 고향의 이미지가 입을 수밖에 없었던 오직 한 벌의 옷이었던 것이다. 「판타지」가 그가 어쩔 수 없이 이끌려 간 회화적 이미지였다면, 이번 「회향-공간」은 문학적 이미지로서의 노스탤지어의 환상적 전개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두 사진에 흐르고 있는 한 줄기 맥을 찾을 수가 있다. 회화적이든, 문학적이든 또는 사진적이든, 그가 그리고 있는 것은 그의 격정, 저 마음의 밑바닥에서 끝없이 솟아오르는 샘물, 현실과 생활의 모든 이름을 딴 여러 가지 강박 속에서 한시도 풀어보지 못했던, 그러나 끊임없이 솟는 노스탤지어라는 것이다. 이 격정이나 노스탤지어는, 다시 말하면 그의 마음 밑바닥에서 목소리를 얻지 못하고 숨어 있었던 그의 깊은 슬픔인 것이다.
그의 사진은 마음으로 느껴야지 머리로 읽어서는 접근이 어렵다. 그는 마음의 사람이지 머리의 사람이 아니다. 때문에 머리로 읽으려 들 때 그의 사진은 그 문을 굳게 닫고 받아들이지를 않는다. 그의 첫 시도 「판타지」도 음악을 시각화하기 위해 면밀한 계산으로 음악적 이미지와 사진적 이미지의 대칭을 찾은 조직적 영상이라기보다는, 마음속에서 울려오는 끝없는 슬픔과 환희, 그리고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할 격정의 계산되지 않은 발로, 감정의 응어리였던 것이다. 두 번째 사진 「회향-공간」도 얼른 보면 차디찬 시선 같지만 실은 허공을 향해 조금도 깜박이지 않는 눈동자 속으로 한없이 멀어져가는 고향과 어린 날에 대한 목멘 설움이 그 본질인 것이다.「회향-공간」중의 몇 장 사진이 특히 남다른 주목을 받은 것을 필자는 안다. 남산 타워와 숭의여전의 깃대가 한 줄로 이어진 사진①이나, 세 사람의 움직임이 시간에 의해 공간을 형성하는(리이프 리이드랜더의 사진에서처럼) 사진② 등에서는 분명 시지각의 문제라든가 사진의 시간성에 대한 그 나름의 인식이 보이고, 그쪽으로 그의 앞날을 기대해 보는 이도 있는 것 같다. 무리는 아니다. 그들 사진이 지평선의 사진보다 더 사진적이고 지적이라는 점에서 또한, 한국 사진이 정복해야 할 하나의 고지라는 점에서 그에게 그러한 기대를 걸어 보는 것도 당연할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에 대한 요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설혹 시지각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연구를 하고, 그리하여 그런 미래 지향적 사진 몇 장을 얻을 수 있다 해도 그는 결코 오래 지속할 수는 없을 것이며, 보람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마음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사람은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다. 머리로 찍는 사진이 비록 남의 칭찬을 들을지언정 그의 마음에 맺힌 한이라든가 슬픔이라든가 또는 격정 따위를 풀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가 그의 영상에서 보여주듯, 고향에 대한 그리움처럼 마음의 사진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마음의 사람은 마음의 사진에서 카다르시스와 자기 보상을 얻을 수가 있다. 사진을 한다는 것, 예술을 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남을 의식해서 하는 의식된 작업이 아니라 저 혼자 앓다가 스스로도 어쩔 수 없이 토해 놓고 마는 자기 연소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완교 씨는 앞으로도 오히려 더욱 마음의 사진, 판타지의 음악과 회향의 문학이 바탕이 된 그들이 마구 뒤섞인, 가장 사진적이지 못한 사진쪽으로 가보면 어떨까 싶다. 그 자신만이 아니라 한국 사진계를 돌아볼 때 이 바람은 더욱 간절해진다. 모두들 너무 정직한 사진만 찍고 있는 세상에 과감히 반기를 드는 사람이 몇 사람쯤은 꼭 필요한 것이다. 이완교 씨의 두 번째 사진을 보면서 필자는 이완교씨가 바로 그 사람이 아닐까 느꼈던 것이다. 그에게 의식적인 반사진의 기수가 되어 달라는 주제넘은 부탁이 아니라, 어쩌면 그가 가고 싶어 하는, 그리하여 가장 높이까지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을 그가 지니고 있다고 본 때문이다. 「판타지」가 보여주었던 주체할 수 없는 격정, 「회향」이 보여주었던 노스탤지어의 섬세한 슬픔이 다음 사진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지 다음 사진을 기대해 본다.
이완교의 사진세계
글 / 육명심 (사진가)
잡담은 제외하고, 이 사진가의 사진세계에서 핵심이라면 '기(氣)' 한글자로 요약됩니다. 그의 평소 성격 그대로 우리도 그렇게 단순 솔직하게 이야기의 실마리를 꺼내봅시다. 그를 대할 때마다 화제는 주로 '기'이고 '기'를 빼놓으면 아무 것도 없다 할 만큼 그는 온통 생각이 모두 '기' 한 가지에 쏠려 있지요. 그러니 그가 찍는 사진의 기본입장이 '기'라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는 것, 아무튼 '기'를 위해 사진을 찍는가, 아니면 사진을 위해 '기'에 몰입하는가하고 물어볼 정도로 그의 사진에서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말머리를 돌립시다. 지난 1989년대에는 정부의 대대적인 국제개방화로 그 어느 때보다 세계적인 현대사진의 물결이 한꺼번에 몰아닥쳤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미국의 이른바 뉴 토포그라픽스(New Topographics)라는 신지형학(新地形學)의 사건, 이것은 아시다시피 미국대륙의 대자연에서 파생된 'F.64' 그룹의 전통을 새롭게 계승 발전시킨 것 아닙니까? 그동안 이 새로운 사진경향이 국내에 들어와 신세대 사진인들 사이에 관심이 컸던 만큼 사진전이나, 사진집을 통해서 그 반응이 여러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진가 이완교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사진에 관심을 가진 여러 사진가들 가운데서도 그는 그 나름의 구별되는 중요한 한 가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급하게 예술적인 질(質)을 따지는 우열의 비교가 아니라 사진에 접근하는 방법상의 차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분명히 그는 여느 사진가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반응을 했습니다. 제가 그의 사진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결국 이 때문인데, 그것은 새로운 사진에 대한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수용(容)이에요 미국적인 신조형학의 사진과 동양의 '기'와의 접목, 이것이 그가 꾀하는 사진세계의 기본공식입니다. 즉 서양의 새로운 사진문법과 동양적인 정신내용, 달리 말해서, 외래적인 신식의 사진형식에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동양의 정신을 담는 사진 작업이라는 말이지요.
이번 그의 사진전에 즈음해서 새로운 사진에 대한 그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대응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솔직히 말해서, 개항 이후 지금까지 우리 사진인들이 나라 밖 세계의 큰 문화적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무조건의 무비판적인 수용, 압도적으로 일방적인 완전수용, 아니면 비판적이긴 하나 수용의 대안(代案)이 없는 불가피한 수용, 이것이 대강우리가 세계의 새로운 사진문화를 밖으로부터 받아들여 온 통상적인 입장이었다 하겠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그의 새로운 시대적 대응자세는 작품의 질을 운운하기에 앞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중요한 대목입니다. 그는 다만 사진가이기에 앞서 동양의 '기'에 관심이 깊고, 또한 이것을 직접 수련을 통해서 동양적인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몸부림치는 한국인입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르겠지만, 저는 사진보다 그 사진을 찍는 사람, 그 사람하고도 그 마음, 그 의식이 가장 중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구태여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구요? 그것은 예술의 세계에서도 원시적인 밀림 속 동물의 세계와 하나도 다름없이 약육강식(弱强食)의 살벌한 생(生)의 법칙이 그대로 지배하고 있으니까요.
현대적인 새로운 사진형식에 동양적 '기'의 세계를 표현
내가 잡아먹지 못하면, 결국 그 상대방에게 정신적으로 잡아먹히는 것이 예술세계의 비정(非情)한 생존법칙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래의 사진문화를 수용하는 데 있어서 적극적으로 문화를 활짝 여는 그 생명적 본능의 문화적 식욕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포식하도록 배를 가득 채우고도 이것을 전부 다 완전히 그리고 거뜬하게 소화(化)해내는 맹수 같은 왕성한 소화력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화력, 즉 정신력이야말로 문화적 제국주의의 물길 속에서 강대국의 맹수적인 위력의 압도를 당해내는 밑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가 현대적인 새로운 사진형식을 심오하고 방대한 동양적 '기'의 세계로 끌어들였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나 성공적인 작전이었습니다. 그런 데, 우리가 그만 이 사진전을 갖는 당사자에게 용당 물어보아야할 중요한 질문 하나를 빠뜨렸습니다. 그것은 '왜 당신은 동양의 '기'에 대해 그렇게 빠져들어 가느냐? 하는 거예요. 이완교 씨, 당신은 왜 마치도 '기'를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인 양 노상 '기'타령을 하십니까?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간단하고 분명하지요. 그거야 바로 우리의 주체성과 한국적 사진미학의 정립을 위해서라고 말할 거예요. 그렇다면 여기서 한국적 사진미학의 정립이라는 말에 조금 관심을 기울여주기를 부탁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밖으로부터 사진문화를 끊임없이 수용해 왔지만 한편 우리 나름의 사진정립을 꾀하려는 의식 있는 사진가들도 간혹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진가들 중 그의 사진에서 남들과 다른 것을 또 한 가지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한국적 사진미학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남과 구별되는 그 나름의 접근방식입니다. 우리의 것, 우리 나름을 추구하는 사진가들이 대부분 찍는 사진의 대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속에 살고 있는 토박이 인간, 거기에다 이들의 삶 속에서 발견되는 생활감정 등입니다. 그런데 그의 경우는 이와는 사뭇 다릅니다. 그의 사진에서는 외견상 우리만의 독특한 풍경이나 한국인 특유의 체취라고는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그 무엇 하나 발견되지를 않습니다. 사진에 등장하는 것은 다만 모두가 하나같이 풀이나 나무가지들 뿐, 이것들은 우리의 생활주변 가까이에서 쉽게 눈에 띄는 평범하고 흔해빠진 것들입니다. 이런 풀, 이런 나무가지들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나 지천으로 깔려있 는 지극히 일반적인 것들이지요. 그런데, 그는 여기에 한국적 사진미학을 꾀하는 사진에 시선 을 쏟고 있습니다. 즉 한국은 물론 지구상 어느 곳에서나 쉽게 발견되는 이것들을 통해 동양의 '기'가 생동하는 그 기운(氣運)을 포착하려 합니다. 이런 평범한 일반성을 통해 한국적 특수성을 발견하려는 그의 태도는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는 다른 사진가들과 사뭇 다르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대상을 미적으로 파악하기보다 생명적으로 파악
그의 풀 사진이나 나무가지 사진들은 얼핏 보기에 그동안 많이 보아왔고, 그래서 사진이라 면, 대개는 익히 아는 종래의 조형적인 사진들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들 과 그의 사진 사이에는 확실하게 다른 것 하나가 있습니다. 이제까지 미국의 유명한 사진가 캐라한(Calahan)과 그의 사진유파들이 추구 해 온 조형적인 초목(草木)의 사진들은 다분히 미(美)를 앞세우는 시각적인 접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경우는 이같이 사진의 시각적인 질서와 구성의 추구와는 사뭇 다르게 우주생성의 근원적인 기'의 작용 즉 기운생동(氣韻生動)을 사진으로 포착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존의 비슷한 소재를 다룬 사진가들의 관심은 주로 사진속의 풀과 나무가지의 시각적인 질서와 구성인데 반해 그는 이 풀이나 나무가지를 미시적(微視的)이고 즉물적으로 접근하여 그 속에서 자연의 질서를 추출(抽出)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사진들은 그 대상을 어디까지 나 미적으로 파악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똑같은 대상 속에서 추출되는 조형적 질서를 생명적으로 파악한 것입니다. 여기서 '미적인 파악'과 '생명적인 파악'사이에는 외견상 형식적으로 동일하나, 내용상으로는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호간의 차별화를 뚜렷이 하기 위해 나는 그의 사진을 '기(氣)'사진이라 이름 짓고 싶습니다. 그의 '기'사진은 내용적으로 보면, 실은 동양의 산수화와 정신적 맥이 닿습니다. 아시다시피 동양의 산수화란 대자연 속에 깃들어 있는 신기(神氣), 곧 자연의 변화와 움직임을 지배하는 영묘한 기(氣)의 활동을 그려내려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산수화를 제대로 감상하는 데는 화가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의 기가 자연의 기와 함께 감응(感應)하여 서로 상통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겨왔습니다. 이는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 즉 물질, 생명, 마음 삼계(三界), 다시 말해 우주의 라만상 전체가 '기'의 소생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질도, 몸도, 정신도, 근원적인 '기'의 관점에서 보면 서로 별개의 동떨어진 것이 아니고, 본디 모두가 원래 하나라는 기일원론적(氣一元論的)인 세계관이 산수화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세계관이 단지 그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문학이나 음악 등 예술전반에 걸쳐서 정신적인 뿌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양예술을 논할 때에는 '기'가 가장 먼저 그리고 중심주제로 떠오릅니다. 그리고 한 예술품을 평가하는 기준은 얼마나 '기'가 심오하고 생생하게 그 작품 속에 담겨있는가 하는 것이지요. 그런 까닭에 어떻게 하면 작품 속에 보다 더 심오하고 생생한 '기'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관심이 쏠려있습니다.
‘기’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작가는 무심의 경지에 이르러야
그 중요한 골자는 우선 무엇보다도 예술가 자신이 생체에너지(生體energy)로서의 기력 또는 활력인 '기'가 충분히 가다듬어지고 막힘이 없이 죽죽 뻗어나고서야 기력이 담긴 싱싱한 그 림이나 글을 쓸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주의 생명력인 '기'와 우주가운데 한낱 미미한 존재인 한 자아(自我)의 '기'가 하나로 합침으로써 작품을 통해 우주의 오묘한 생기가 생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주의 근원적인 기와 미미한 존재인 자아의 기 가 합일이 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은 예술가가 자아의 마음을 비우고서야 비로소 가능 하다고 합니다. 즉 만물의 시원(始原)이면서 세상 천지만물에 두루 통하는 '기'와 동조감응(同調感應) 한 차원으로의 입신(入神)은 마음을 완전히 비운 무심(無心)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논리적으로 정리한다면, 의식의 주체적 능동적 활동을 일체 배제시키고, 또한 주관(主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대상에 대한 전일적(全一的)인 인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양예술에서는 예술가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무심(無心)한 경지에 이르고서야 비로소 훌륭한 작품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듣는 이런 말이 있지요. 고양이를 그리기 위해서는 고양이를 그려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적어도 사자를 그리려고 해야 못되어도 고양이정도는 그리게 된 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의 사진에도 그대로 해당되지 않겠어요? 단지 '기'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기'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무위자연의 '무심의 사진'을 찍으려고 해야 결국 '기'사진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기'사진은 앞으로 지향해야 할 또 한 단계가 있음을 조심스럽게 제의합니다. 이제는 사진의 주제가 '기'에서 무위자연의 '무심'으로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요? 그리하여 그의 사진은 더 이상 '기'사진이 아니라 '무심'의 사진으로 이름이 달라져야 할 것 같은데요?
끝으로 이완교씨, 어떻습니까? 다음에 새로 갖는 개인전시에는 무심의 세계를 한껏 펼쳐놓고 당신 쪽에서 '무심의 사진' 위에 또 한 단계의 새로운 세계가 있더라 하며 우리를 가르쳐 주십시요.
한국적 심성을 찍는다 사진가 이완교
글 / 오지영 (기자)
중견사진가 이완교 씨가 氣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그의 사진에는 토박이 한국인도, 시골 토담집고, 야트막한 야산도 보이지 않는다. 세계 어느 나라에나 지천으로 깔려 있는 풀과 나무들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적 사진미학 정립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작가로 평가된다. 왜일까? 그를 만나 본다.
그는 정말로 창호지를 바른 한식 창문 앞에 앉아 있었다. “봄이면 말이야, 문짝을 전부 떼서 툇마루에 세워둔다고. 어머니가 물을 뿜으라 그러면 우리 형 둘하고 나, 셋은 정말 신나는 거지. 물을 입에 가득 머금었다 서로 질세라 ‘파’하고 뿜는 거야. 그 다음에는 창문을 팍팍팍팍, 소리를 질러가며 사정없이 찌르고. 창호지가 불면 신이 나서 막 뜯지. 그러면 어머니는 하얀 문지를 바르고 말려 두었던 국화, 코스모스 꽃잎을 척척 붙이셨다구. 다음 날 아침에 보면 방이 말도 못하게 환해. 정말 새집이야. 그 느낌이 너무 좋아 내 제자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구. 이 다음에 좋은 집으로 이사 가면 창호지를 바른 한식 창문 앞에 앉아 있을테니까 꼭 놀러 와.” 그의 한지에 대한 애정과 남다른 감수성은 아파트 거실의 한식 창문에만 배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한 장 한 장 직접 글씨를 써 넣은 닥종이 명함에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의 사진에 깊게 배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찍어라
사진가 이완교 씨는 1940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그때까지 그의 삶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사진이 아니라 음악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해 경희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으며 피아노를 전공한 음악학도를 부인으로 맞았다. 그가 본격적인 궤도수정을 결심한 것은 36살 때이지만 카메라와의 인연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용케 그의 집에 누르기만 하면 되는 플라스틱 카메라가 있었다. 60리 길을 걸어서 간신히 필름을 구하고 네 살짜리 동생을 소나무에 기대놓고 찰칵 셔터를 눌렀다. 그때부터 틈만 나면 사진기를 들고 설치다가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아버지의 성화 때문에 그 신나는 일을 잠시 포기해야 했다. 대학시절에 사진은 그에게 열렬한 취미가 되어 있었다. 지방연주회를 갈 때면 꼭 카메라를 들고 가 보우타이를 맨 채 야외에 나가 사진을 찍었다. 네 줄의 현 위에서 받는 정신적 긴장을 카메라가 고스란히 흡수해 주었다. 졸업 후에도 취미를 전공처럼 공부했다. 어떻게 소문이 났던지 그에게 원고청탁과 대학에 출강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홍익대학교 산업미술 대학원에서 사진 디자인을 공부하며 본격적으로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취미가 직업이 된 사람은 행복하다.”는 말로 뒤늦게 사진가의 길로 들어선 이유를 대신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사진은 기록이 아니라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보고 찍지 말고 느끼고 찍으라고 말한다. “하나, 둘, 셋에서 찍지 말고 넷에서 찍어라.” 그가 말하는 넷은 가슴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포착하라.’는 말은 그의 사진 작업에 있어서 화두와도 같은 것이다. 83년은 그의 사진에 큰 변화가 있던 해이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그는 아버지께 어떤 사람의 안부를 물었다. “아버님, 건너마을 김서방 노인어른은 잘 계시지요?” “어, 그 양반, 작년에 돌아가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온몸에 전율이 왔다. ‘돌아가셨다고? 어디로, 어디로 돌아갔단 말인가?’ 평소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접하던 그 말 속에 엄청난 사상이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그는 노장사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7년 동안 내리 풀만 찍었다
그해 가을, 그는 들판에서 죽어가는 풀들을 보았다. 한 길이나 되는 풀들이 몸이 꺽인 채 누워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아, 저 풀도 저렇게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구나’하는 뭉클함이 왔다. 생명을 다하고 한 줌의 흙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풀에서 그는 인간의 삶을 보았던 것이다. “삶이 무엇이냐, 자연이 무엇이냐, 인생이 무엇이냐를 풀을 통해서 충분히 느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때부터 그는 내리 7년 동안 풀을 찍었다. 지난 10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전시회 ‘기운생동Ⅰ’은 그때 찍은 풀 사진을 선보인 것이다. 그는 왜 그의 전시회에 기운생동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그것은 그가 자기 인생에 있어서 두 번째 획기적인 일이라고 꼽는 것과 관계가 깊다. 물론 첫 번째 획기적인 일은 카메라와의 만남이다. 87년 어느 날 그는 서점에서 우연히 기에 관계된 책을 접하고 그 세계에 폭 빠져서 3년 동안 기에 관한 이론서라면 닥치는 대로 다 읽었다. 90년부터는 기의 세계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 수련도 시작했다. “기라는 그것이 얼마나 자연적이고 인간적인지···말도 못해.” 그는 적어도 기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호기심으로 몸이 달아오르게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기를 알면 알수록 그는 자신의 풀 사진이 미리부터 신발끈을 묶고 뛴 것은 아니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기의 세계에 가까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옛날 제주도에 갔을 땔 거야. 콩밭을 지나가는데 바람에 콩 이파리가 하얗게 물결을 이루며 막 흔들리는 거야. ‘아, 저게 바람이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셔터를 눌렀지. 그것은 콩밭을 찍은 것이 아니라 바람을 찍은 거라구. 마찬가지예요. 나는 풀을 찍은 것이 아니라 기를 찍고 있었던 거예요. 이번 작품 중에 코스모스가 땅에서 솟아 올라오는 모습을 담은 게 있는데 그것은 꽃이 아니야. 어떤 힘이라구.” 그는 곧추선 코스모스에서 하늘을 향해 뿜어져 올라오는 땅의 기운, 그 힘을 포착하려 했다고 말했다.
氣사진 전시회, 기운생동Ⅰ
기에 대한 그의 관심은 미쳐 있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다. 그에게서 기이야기를 못이 박히도록 들은 동료 사진가들이 “기를 위해 사진을 찍는가, 아니면 사진을 위해 기에 몰입하는가?”하고 물어올 정도이다. 서울예전의 육명심 교수는 이완교씨의 이번 사진전을 서양의 새로운 사진문법과 동양적인 정신내용의 결합이라고 표현했다. 현대적인 새로운 사진 형식을 심오하고 방대한 동양적 기의 세계로 끌어들인 점은 성공적이고도 의미 있는 시도라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 사진계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었던 점은 외국 유명 사진가들의 방법론을 우리의 문화배경과 상관없이 마구 빌려온다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의 풍토와 문화에 맞는 우리 사진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이 사진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완교 씨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적 형상이 아니라 느낌, 심성이다.”고 말한다. 토박이 한국인이나 시골 토담집, 우리의 산과 들을 담는 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완교 씨의 한국적 사진미학을 정립하기 위한 시도는 아주 독특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사진에서는 외견상 우리만의 독특한 풍경이나 한국인 특유의 체취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다만 세계 어느 나라에나 지천으로 깔려있는 풀과 나뭇가지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풀이나 나무에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근원적인 기의 작용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똑같은 풀을 찍더라도 시각적,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서양인의 눈이라면 더 깊이 들어가 그 근원적인 힘을 알고 시어하는 것은 동양인의 눈이며 그것이 바로 ‘한국적 느낌이자 심성’일 터이다. 육명심 교수는 이완교 씨의 사진이 자연의 변화와 움직임을 지배하는 영묘한 기의 활동을 그려내는 동양의 산수화를 닮았으며 그것을 ‘기사진’이라 부르고 싶다고 말한다. 이번 작품들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먹물을 받아들이는 한자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까맣게 처리되었다. “김치찌개와 햄버거를 식탁에 올려놔봐라. 네 젓가락이 어느 쪽으로 먼저 가는가? 그것이 바로 너다.” 스승의 전시회를 찾은 제자들은 모두 그의 호소 겸 당부를 귀가 아프도록 들어야 했다.
사진학 입문 교재는
<음양이 뭐지?>
경기대학교 세미나실은 사진학 입문 시간만 되면 그야말로 초만원이다. 앉을 자리가 없어서 맨바닥에 앉아 강의를 듣는 학생도 있고 서서 듣는 학생도 있다. 그의 강의는 한 학기에 1,400명 가량이 수강신청을 하기 때문에 분반에 분반을 거듭할 정도이다. 재미있는 것은 강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학생들이 열심히 읽고 있는 책이 <음양이 뭐지?>라는 한의학 에세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은 뜻밖에도 외로움이라고 말했다. “풀을 찍다가 날이 어두워졌는데 새가 수만 마리 모여들면서 와글와글 거리더라구. 카메라를 챙겨들고 몸을 일으키는데 휑한 들판에 나 혼자 있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아서 새들보다도 더 시끄럽게 와- 하고 소리소리지르며 펑펑 울어버렸지.” 사진가에게 사진으로도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의 집 거실에 햇빛이 들었다. 베란다에 놓아둔 대나무 분재가 한지를 바른 창문에 살포시 그림자를 드리워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냈다. 그는 한식 창문이 있는 이 집에서 평생을 살 거라고 한다. 4년 전부터는 나무를 찍기 시작했는데 그 작품들을 모아 후에 연작형식의 사진전 ‘기운생동 Ⅱ’를 선보일 작정이다. 그때쯤이면 그의 수련도 더욱 깊어지고 외로움도 걷혀 있을지 모르겠다.
이완교 사진전 無念無想
글 / 최일범 (성균관대 한국철학과 교수)
이완교의 사진이 표현하는 동양사상
사진에 문외한인 필자가 사진을, 그것도 전문가의 작품 사진을 논한다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은 인연으로 인해 작가를 만나 작품을 보고 그가 지향하는 작품세계를 듣고서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필자로서도 한마디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가 동양철학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물론 필자가 보기에 작가에게도 동양철학에 대한 일가견이 있었고 그것이 그의 예술 활동의 원천이었지만, 겸손하게도 궁금해 하였다. 작가와의 대화에서 필자는 그가 기(氣)라는 동양철학적 개념에 심취해 있고 그것이 그의 작품 세계에 투영된 이념임을 알게 되었고, 또한 그가 사진 예술의 토착화 즉 한국적 사진예술의 정립을 위해 투지를 불태우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 필자가 작가의 사진과 대화를 시작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그가 사진 예술을 한국적 미학으로 재창조하려는 강한 신념에 동의한 때문이었다.
작가의 작품을 대하면서 필자의 마음에는 순간적으로 몇 가지 단상들이 떠올랐는데 그것은 도가(道家)의 장자(莊子)에 보이는 혼돈(混沌)과 불교의 상즉무애(相卽無碍)한 화엄(華嚴)세계 그리고 중국 북송(北宋)시대의 도학자(道學者), 주렴계(周濂溪 : 1017-1073)라는 인물의 사상이었다. 주렴계를 떠올린 이유는 작가의 사진이 온통 풀뿌리와 나뭇가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었다. 주렴계는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였는데 그의 집 정원에는 항상 잡초가 우거졌다고 한다. 누군가 그 이유를 묻자 주렴계가 대답하기를 잡초가 무성히 자라는 속에서 생명의 보편성를 느낀다고 하였다. 우리는 보통 정원에는 아름답고 깨끗한 화초와 장식물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잡초의 자리가 없고 그 생명이 용납되지 않는다. 행여 어여쁜 화초 사이에 잡초의 싹이 요만큼이라도 보이면 대뜸 뽑혀지기 일쑤다. 그러나 주렴계의 눈에는 잡초도 엄연한 생명이었고 그 속에서 생명의 보편적 가치를 찾았다. 다시 말하면 그에게는 화초와 잡초를 분별하는 분별심이 없었고 일체가 다 생명이었다. 필자는 작가의 작품에서 일체를 생명의 흐름으로 인식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별(),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는 구분을 뛰어넘는 마음의 경지, 그것은 작가의 초점 흐릿한 작품과 함께 필자에게 장자의 혼돈을 떠올리게 하였다. 혼돈(混沌)에 대한 장자 응제왕편의 이야기는 이렇다.
남쪽 바다 임금의 이름은 숙이고 북쪽 바다 임금의 이름은 홀이고 그 가운데 임금은 혼돈(混沌)이라 이름하였다. 숙과 홀이 때때로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은 그때마다 그들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숙과 홀은 혼돈의 은덕을 갚을 길이 없을까 의논하였다. "사람에게는 모두 일곱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오직 혼돈에게는 이런 구멍이 없으니 하루 한 구멍씩 뚫어 줍시다."라고 하였다. 하루 한 구멍씩 뚫었 는데 이레가 되자 혼돈은 죽고 말았다.
혼돈의 죽음은 자연의 전일성(全一性), 유기성(有機性)의 파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남쪽 바다의 임금과 북쪽 바다의 임금이 각각 분별 의식의 세계를 상징한다면, 그 중앙인 혼돈은 분별을 초월한 경계이다. 서양에서는 혼돈을 chaos라고 하여 무질서한 상태라는 부정적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나 장자에서 혼돈은 그 중간자(=근원자) 역할을 통해서 남쪽과 북쪽이 다 같이 도움을 받는 근원적 의미를 갖는다. 이는 이분법()에 충실한 서양적 사고와 전일성을 지향하는 동양적 사유의 차이라고 하겠거니와 필자는 장자의 혼돈이야말로 작가가 사진을 통해서 표현하려는 세계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혼돈에 구멍이 뚫린다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 원초적 비분별의 상태로부터 주객이 분화에 따른 분별의 의식으로 전화됨을 가리키거니와 이러한 분별심은 인간에게 미와 추, 선과 악의 가치를 구분하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혼돈의 비분별 상태가 가치를 부정하는 몰가치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금강경(金剛經)에서 했듯이 '집착 없는 마음을 발하는 것' (應無所住而生其心)이야 말로 혼돈의 진정한 의미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무주 상보시(無住相布施), 즉 남을 돕고 있다는 의식 없는 도움 행위야 말로 집착 없는 마음이다. 즉 내가 지금 선을 행하고 있다는 의식이 나를 사로잡고 있는 한 내가 아무리 지금 선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오히려 나의 아만과 고집의 그럴듯한 포장에 불과하다는 금강경의 가르침은 혼돈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잘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작가의 작품에 대한 육명심교수의 다음과 같은 해석은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의 풀 사진이나 나뭇가지 사진들은 얼핏 보기에 그동안 많이 보아왔고, 그래서 사진이라면 익히 아는 종래의 조형적인 사진들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들과 그의 사진 사이에는 확실하게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제까지 미국의 유명한 사진작가 캐라한(Calahan)과 그의 사진 유파들이 추구해 온 조형적인 초목의 사진들은 다분히 미(美)를 앞세우는 시각적 접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경우는 이 같은 사진의 질서와 구성의 추구하는 바와는 사뭇 다르게 우주생성의 근원적인 기의 작용, 즉 기생운동(氣生運動)을 사진으로 포착하려는 것입니다. -풀이나 나무들을 미시적으로 즉물적으로 접근해서 그 속에서 자연의 질서를 추출하려는 이제까지의 사진들은 그 대상을 어디까지나 미적으로 파악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똑같은 대상 속에서 추출되는 조형질서를 생명적으로 파악한 것입니다.
작품의 대상을 생명으로 보지 않는 한 (물론 여기에서의 생명은 동양철학의 유기체적, 전일적 생명관에서의 생명의 의미이다) 작가의 작품에 나타난 혼돈성, 편만성을 해석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작가의 작품이 화엄의 세계관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알다시피 화엄의 세계란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가 곧 하나(一卽一切,多卽一)'인 유기적 세계이다. 그런데 이 유기적 세계란 단순히 물질세계의 구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의 마음 세계로서 중생의 생명에 대한 한량없는 자비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부처의 자비심 속에서 어느 한 생명인들 온 우주와 대등한 가치를 갖지 않겠는가. 다시 말하자면 부처의 한량없는 자비심 속에서, 즉 생명의 실상(實相) 세계에서 모든 생명의 가치는 평등한 것이다.
생명을 차별하는 분별심을 초월한 무한한 마음(心)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이 나타내고자 하는 작품 세계가 바로 동양적 사상과 그 미학을 토대로 추구되고 있다는 사실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다.
선가(禪家)에서 회자되고 있는 산은 산, 물은 물'(山是山, 水是水)의 화두()를 통해서도 작가의 작품세계가 지향하는 방향이 드러날 수 있다. 청원(請原) 유신(惟信) 선사의 상당법어(上堂法語)로 유명한 이 화두는 생명의 세계에 대한 해석을 변증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첫 번째,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는 사물을 분별하는 세속적 견지요, 두 번째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는 사물의 분별을 부정하고 평등성을 드러내는 초월적 경지이다. 그런데 유신 선사의 법어는 초월에서 끝나지 않는다. 세 번째 '산은 역시 산이고 물은 역시 물'이라는, 초월로부터 세속에로의 회귀가 종극점이다. 어째서 세속에로의 회귀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가?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세속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화려한 장미꽃과 소박한 국화를 평등하게 보는 것이 어찌 장미와 국화의 고유한 모습을 떠나서 이루어지랴. 장미의 화려함에 취해서 상대적으로 국화의 소박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세속적 분별심의 소치라면, 비분별심이란 장미의 화려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장미는 장미대로 국화는 국화대로 그 아름다움을 훼손하지 않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하자면 분별과 초월 그리 고 생명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음 모두가 마음의 세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 세계는 바로 이러한 비분별의 생명 가치, 존재 가 치를 드러내려는 기획이며 그의 작품이 흐드러진 풀 한포기 나무뿌리 하나하나를 모두 소중하게 감싸 안고 어떤 분별도 거부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이라고 믿는다.
저 너머 추상을 보여준 사진가, 이완교 가장 동양적인, 가장 예술적인
글 / 이종화 (기자)
“사진의 본질이 리얼리티라는 점은 다른 예술이 자유롭게 넘나들며 표현해온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주제로의 사진의 접근을 어렵게 해 왔어요.” 이완교(67)는 사진의 리얼리티에 기반해 우리 눈 너머에 있는 추상적인 관념을 찍어온 사진가이다. 대학에서 음악(바이올린)을 전공한 후 사진으로 방향을 바꾼 이력에서 알 수 있듯, 눈에 보이는 사물 보다 보이지 않는 관념을 표현하는데 더 익숙해져 있다. 또 초등학교 6학년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기억은 그가 성장하는 내낸 그리움으로 남았고, 그의 사진에서도 자주 보여져온 주제였다. “음악은 예술 중에서도 가장 추상적입니다. 보이지 않는 소리로서 인간의 온갖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게 음악입니다. 음악을 오래 해와 자연히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느끼게 되는 습관이 든 것 같아요. 보이는 사물을 찍는 건 예술이라기보다 기록이라고 본 것이죠.” 사진을 시작한 처음부터 지금까지 예술로서의 사진에만 매달려온 이완교에게 예술은 구체적이기 보다 추상적이어야 하고, 은유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집에 있는 카메라로 고향인 삼척 바다를 찍으며 느끼곤 했던 묘한 매력은 아주 오래갔다. 이런 혼자만의 놀이는 공부에만 집중하라는 아버지의 꾸지람에 곧 중단되고 말았지만, 대학에 들어와 아르바이트를 해 처음 번 돈으로 카메라를 구입함으로써 다시 어릴 적 체험했던 혼자만의 세상으로 빠져들게 됐다. 지방에 연주공연을 가더라도 공연이 끝나자말자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녔다. 이렇게 사진을 찍는 동안 카메라라는 기계에 의해 찍혀진 사진이 예술일 수는 있는지, 그 리얼리티를 놓고 오랜 고민을 했고, 그 결과 예술로서의 사진이 갖는 매력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그러다 추상이라는 주제를 갖고 80년 첫 개인전인 ‘환타지아’를 열게 된다. “사물의 물리적인 면을 떠나 느껴지는 것만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음악가 칸딘스키는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역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작곡할 수 있다고 말했듯이, 사진의 리얼리티에서 벗어나 음악처럼 사진을 찍어본 거죠. 그러나 전시 이틀 만에 스스로 문제점을 발견했어요.” 스타글리츠의 사진의 본질은 리얼리티와 사실성이라는 말을 굳이 인용 않더라도 보이는 그대로를 찍는 게 사진임에는 틀림없었다. 가령 미술은 찍을 수 없는 것을 그리지만, 사진은 그릴 수 없는 것을 찍는다. 화가가 아무리 정밀하게 그리더라도 결국 허구일 뿐이듯 사진도 리얼리티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리얼리티라는 사진의 본질을 벗어나지 않고, 추상을 표현하는 게 답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습니다.”
이완교의 다음 개인전 ‘회향공간’(1983)은 당시까지의 사진의 일반 구도에서 벗어나 하늘이 많은 컬러 사진들이다. 하늘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간혹 보이는 사람과 대상은 가운데 있지만 저 멀리 밀려나 조그맣게 보인다. 이완교는 “울림을 찍은 것”이라며 “그 울림은 그리움, 외로움, 상념, 추억 그리고 미래일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넓게 보이는 공간을 통해 시공간의 조화를 시도한다. 바닷가와 하늘을 배경으로 한복을 입고 걷는 세 여인의 사진이나 유난히 구름이 많은 하늘에서 잊을 수 없는 진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풍경은 그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그리움의 거리이면서 곧 작가 자신이기도 하다. 생성됐다가 얼마 안돼 사라지는 구름은 소멸되어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 미지에 대한 동경을 표현한다.
이완교의 회향공간은 당시까지의 사진의 일반 구도에서 벗어나 하늘이 많은 컬러 사진이다. 대부분의 사진에서 하늘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바닷가 모래사장 위를 각기 다른 색의 한복을 입은 세 여인이 다른 몸짓으로 걷고 있다. 멀리 떨어져 표현된 세 여인과 바람에 날리는 치맛자락은 무언가 가고 없음을 나타낸다. 또는 사라져가고 있는 진행형의 표현이기도 하다.
초록색 천막의 찢어진 부분을 꿰맨 자국과 그 너머로 하늘과 구름의 변화를 알 수 있다. 같은 장소에서 시간만 달리해 찍은 회향공간의 연작사진은 평화로움과 그리움을 동시에 안겨 준다.
80년대 두 번의 컬러사진 전시에 이어 90년대 이완교는 예전부터 심취해온 동양철학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실험적인 작업에 나선다. 대학원에서 동서양의 공간을 비교하는 논문을 쓴 적이 있고, 오랜 기간 관련 서적을 탐독하면서 동양사상은 이미 그의 몸과 정신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을 때였다. 철학이 모든 학문과 예술에 근간을 이룬다는 점에서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완교의 사진은 자연히 그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불교와 노장철학으로 대변되는 동양사상은 서로 맞닿아 있고 서로를 넘나든다. “서양의 공간은 수치로 환산되는 몇도 몇 평이라면, 동양에선 우주론 적인 시공간을 얘기합니다. 이는 마음속으로 느껴지는 시공간이며 보다 원초적이며 근원적이죠.” 동양사상을 근원을 따져들다 보면 결국 생명과 삶 등 모든 우주의 근원인 기와 만나게 된다. “기는 무엇일까? 얻은 결과는 모든 게 마음속에 있다는 겁니다. 원효의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일심사상에서 보듯 내가 슬프다고 생각하면 슬프고 기쁘다고 생각하면 기쁩니다. 신비한지 알았던 기는 마음에 실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완교는 직접 기를 체험하고 공부하기 위해 2년여간 오대산과 청양 등지를 돌며 실제로 기를 수련하는 사람들 속에서 기의 실존을 체험으로 느끼기도 했다. 사람 뿐 아니라 단단한 바위를 비집고 풀이 쏟아나는 자연의 힘에서도 기를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작업이 94년의 ‘기운생동’이다. 기운생동은 한 단어가 아니라 한자 한자가 각각 독립적인 의미를 가진다. 마른 풀의 보이는 모습은 말라 죽은 것 같지만, 그 아래의 뿌리는 살아있어 계절이 바뀌면 싹을 틔운다. 마른 풀을 통해 죽은 기가 아니라 생과 기를 모두 품고 있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기운운동이다. 곧 삶은 삶을 통해 보이는 게 아니라 죽음을 통해 진정한 삶이 무언지 아는 것과 같은 이치다.
2000년 들어 이완교의 작업은 ‘무념무상’에 기초하고 있다. 불교에서 스님이 하안거와 동안거, 면벽 수행을 하듯 선의 경지에 드는 것, 즉 아무런 생각이 없는 제로의 상태가 무념무상이다. 인간의 가장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 아무 것도 없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최근 4월 전시에서 선보인 ‘피안(彼岸)’ 역시 무념무상에 기초하고 있다. “피안은 불교용어로 저 너머를 말합니다. 신자는 아니지만 나의 관심은 불도에 있습니다. 현실을 떠난 미지의 세계에 관한 관심이지요.” 그의 말대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현실세계에 사는 존재이지만, 현실 너머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것이 이완교 작업의 시작이다. 현실은 아니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다음의 세상, 그것이 곧 피안이다. 피안 사진을 보면 앞에 있는 나무는 초점이 안 맞는 아웃포커싱 처리가 되어 있고, 뒤쪽 나무는 초점이 맞춰진 것을 알 수 있다. 뒤쪽 나무를 통해 다음 세상을 표현한 것이다.
90년대 들어 이완교 사진은 컬러가 아닌 흑백으로 전환했다. 흑과 백은 심오하면서 동양사상과 닿아있기 때문이다. 동양사상이 근원적이듯이 흑과 백은 모든 색의 근원이고 여기서 모든 색이 나온다. 이완교 사진이 흑백으로 바뀐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일찍이 동양사상은 흑백이 주는 의미를 간파했습니다. 흑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색이고 백은 색의 부재이면서 종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표현하려는 기와 도와 맞닿아 있는 색입니다.” 또 사물도 예전보다 더 선명해진 것을 알 수 있다. 때론 원근감 있게, 때론 형태가 불분명한 이미지가 보여지지만 아예 형태를 떠나진 않는다. 그가 추구하는 예술과 사진 사이에서 오는 오래된 모순을 알 수 있다. “형태를 완전히 떠나지 않고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작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형태는 유지하되 리얼리티적이진 않는 것, 곧 저 너머의 감성과 울림 중시하는 거죠. 오브제(사물)는 살리되 오브제의 개념을 떠난 이미지화는 제 사진의 오랜 표현방식입니다.”
이를 위해 이완교는 매번의 작업마다 자신의 표현 방식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화가가 유화와 수채화 중 무얼 그릴지 선택하고, 유화를 선택했다면 다시 화학약품을 섞을지 말지를 선택하는 것처럼 자신에 맞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선명했던 무념무상을 끝내고 피안 작업을 하면서 오브제에 얽매이지 않고 너머의 것을 표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완교는 고민 끝에 필름의 장단점을 모두 활용키로 했다. 잘 사용 않는 고감도 필름을 선택한 것이다. 고감도 필름은 입자가 거친 단점이 있지만, 어두운데서 찍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계조가 풍부하고, 콘트라스트가 약하고 회색이 도는 특징이 있다. “전부 회색인 내 사진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리얼리티가 강조되는 사진과 달리 내 사진은 침침하면서 우리의 심성을 표현하는데, 여기에 가장 적합한 필름 입자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고는 추상을 표현할 수 없었어요.”
이완교는 경기대와 서울예대 등에서 오랫동안 강의를 해오다 2년 전부터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는 “오랜만에 행복감을 느낀다.”며 “학교에 매여 있지 않아, 즐기는 사진을 맘껏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완교는 “초창기 작업부터 돌아보니 내 사진에는 일관되게 한국적인 정서인 저 너머라는 그리움이 깔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이 주제를 갖고 작업은 계속될 것이지만 대상이 무엇이 될지, 어떤 표현방법을 쓸지는 그때마다 다를 것”이라고 계획을 말했다. 덧붙여 새로움에 대한 도전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문화(Culture)의 어원에는 '개간하다'는 의미가 있다. 음악과 미술이 지역과 민족마다 다르듯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게 문화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동양적인 정서를, 눈에 보이는 사진으로 표현해온 이완교의 작업은 새로운 사진적 시도를 넘어, 국내외에서 폭넓은 공감을 얻은 지 오래다. 더 나아가 우리만의 사진을 고민하는 데 좋은 이정표가 되고 있어 그의 작업에 거는 기대가 높다. 이완교는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화두가 되었으면 하는 노자의 한마디를 남겼다. “나는 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이완교 감각과 강단의 작은 거인
글 / 진동선 (사진평론가)
나의 기억 속에 이완교라는 사진가는 세 가지 이미지로 다가온다. 하나는 그가 대중을 상대로 사진 강의를 똑소리 나게 잘했다는 점과, 내가 아는 한 우리 사진계에서 가히 유일하게 음악도 출신의 사진가라는 점과, 마지막 하나는 보기 드물게 대쪽같은 성격으로 일전불사를 마다않는 강단 있는 사진가로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만의 이미지인지는 모르나 그렇게 세월이 흘러도 그는 변함없는 이미지 그대로 있다. 그리고 그것이 추억의 이미지가 되어 어느덧 8, 90년대를 지나 오늘날까지 그리움으로 장식되고 있다. 그와 나는 공식적인 사제 관계는 아니었다. 사제관계라기보다는 상당한 나이 차가 있는 선후배 관계였다. 그런 만큼 두 사람이 함께 차를 마신다거나 식사를 같이 한 적은 과거에 없었다. 단 한번 동문 그룹전에서 그는 동문으로, 나는 재학생으로 함께 전시장벽에 작품을 걸었던 것이 유일하다.
그랬기 때문인지 지난 20년을 돌이켜보면 가까우면서도 먼 거리에 있는 사람이었다. 계보의 시대, 학연, 지연의 시대였던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는 동안 깊은 연(緣)이 닿아야 했는데 대학원 동문이라는 성근 학연 빼고는 가까울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평론가로서 활동하면서도 그에 대한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으나 이런저런 이유, 정황들 때문에 멀리 있었고, 처음으로 두 사람이 서로 마음으로 가까워진 것은 21세기가 지난 2001년 4월쯤이다.
1985년 여름. 나는 서울예전 사진과에서 그를 처음으로 보았다. 그해 서울예전 동랑아카데미 사진 프로그램에서 만날 수 있었던 세 사람의 강사(육명심, 이완교, 배병우)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때 그는 우리에게 사진의 특수표현기법을 강의했던 사람이었다. 특수표현이 생소했던 것만큼 이완교라는 사람도 생소했다. 그의 수업을 기다리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특수한 표현으로 사로잡을 것인지 실로 궁금하고 고무되어 기다렸다. 오전 10시. 작은 키, 둥굴둥글한 몸, 첫 인상부터 재미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는 빠르고 경쾌하고 직설적이며 강단이 있었다. 실기 수업이었는데도 시종일관 웃느라, 떠드느라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완교. 이름 그대로, 생김새 그대로 딴딴하면서도 둥글었다. 속사포처럼 터지는 말은 거칠지만 리듬을 탔다. 그래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까발리는 이야기 속에 스트레스가 풀렸다. 사진에 정통하지 못한 내게도 어떤 길이 사진의 길이고, 어떤 자세가 성의로운 사진가의 자세인지 알게 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일주일이 지나갔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목청만 높인 게 아니었다. 그가 정의했던 사진의 특수표현이란 무엇인지를 기억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표현이란 연주다. 특수표현이란 특수한 연주방식이다. 특수하다는 것은 특수하게 적용하면 효과가 극대화되는 기법을 말한다.” 그가 사진의 특수한 비법으로 소개한 것은 하이콘트라스트기법, 바스-릴리프기법, 솔라리제이션기법, 포스타리제이션기법이었다. 요즘은 관심도 없고 전혀 특수할 게 없는 비법들이지만 당시에는 사진의 특수표현기법으로 자리했다. 강의도중 그는 종종 자신이 음악도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였음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니 자랑 정도가 아니라 대단한 긍지로서 그저 사진만 아는 사진가들과 변별력을 갖고 싶어 했다.
그는 그렇게 내게 자리했다. 음악가인 사진가, 그때나 지금이나 사진과 음악이 이야기될 때면 맨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그다. 외국에는 피아니스트였던 앤셀 아담스가 있고, 사진을 인화할 때 바트에서 바하의 음악(첼로 무반주조곡)이 흘러나올 때 명작임을 예견한다는 바하 전문가 에드워드 웨스톤이 있지만, 이 땅에서 사진을 음악과 결부시킬 때 기억나는 사람은 내게 이완교가 유일하다. 일찍부터 그는 “음악=사진=표현=연주=이완교”라는 등식을 입력시켰다. 사진과 음악이 어떻게 횡단할 수 있는지, 또 사진에서 음악적 음색과 소리의 빛깔이 어떻게 스며날 수 있는지를 연구한 사람이 그였다. 20년 전 동랑아카데미에서 그는 강의와 실습을 통해서 그것들을 말했다. 나의 트라우마에 문제가 없다면 그는 그렇게 음악을 사진의 영역으로 옮겨놓고 싶어 했던 사람이다. 그것들이 단순히 음악을 접어야했던 미련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찌됐건 그는 사진의 표현을 음악의 연주로 다가섰고, 또 음악의 밀도 없는 공간성을 사진의 공간성에서 찾으려 했던 사람이다. 석사 논문의 주제가 사진의 공간성일 만큼 그는 음악적 기운을 사진의 공간성에서 찾고 대입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1987년 가을, 홍익대학원 동문전에서 나란히 동문으로서 사진을 내걸었다. 그때 그가 걸었던 작품은 하늘과 대지의 여백이 강조된 컬러 사진이었다. 허허로운 하늘에 흰구름이 떠가고, 하단 프레임에 살짝 산과 나무가 걸친 긴 여백의 작품이었다. 그날 작품에서 보았다. 그가 사진의 공간성에서 소리를, 공명을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또 그가 하늘과 땅 사이에서, 구름과 산 사이에서, 구름과 나무 사이에서 시지각적 음색을 보려했다는 사실을. 그래서일까. 이후 나도 비슷한 감각의 사진을 제작한 일이 있다. 그때 그가 보았다면 “쟤가 나를 따라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우리는 서로 함께한 적이 없었다. 1988년 겨울 논문 통과와 동시에 나는 한국을 떠났고, 돌아왔을 때는 시간 강사를 전전했기에 만날 시간이 없었다. 그 또한 일주일 36시간씩 강의를 할 만큼 바빴으니 더더욱 만날 기회가 없었다.
딱 한번 있었다. 1993년 3월쯤으로 기억한다. 신학기가 막 시작되었을 무렵, 유학을 앞두고 서울예전 사진과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그가 수업이 있었던지 과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짧은 시간 그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너무도 그날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그날 나는 그의 손등에 핀 검버섯을 보았다. 그러면서 다짐을 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이 들어 서까지 시간강사를 하지는 말아야지. 그의 손등에 핀 검버섯을 보면서 나이 들어서까지 시간강사를 한다는 것은 정말 못할 짓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보기엔 그는 진작 사진학과 전임이 되었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시간강사를 전전했다.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만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를 통해서 교수될 가망이 없다면 일찍이 미련 없이 적당한 나이에 시간강사를 접어야 하는 것이 일찍 전임이 된 후배들에게 미안하지 않고, 학생들 보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미안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그날 했다.
그랬다. 그는 사진과 전임이 진작 되어야 할 사람이었다. 또한 사진계로부터 공로상을 받았어야 할 사람이었다. 실력이나 열정, 감각이나 표현, 그 시절 여느 작가에게 뒤지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 때문에 전임의 시기를 놓쳤고, 똑 부러진 강단있는 성품 때문에 우후죽순 생겨난 80년대 사진학과에 한 자리를 꿰차지 못했다. 언젠가 그에게 그런 말을 했다. “선생님은 공로상을 받아야 합니다. 대중 사진교육을 헌신적으로 했기에 공로상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가 웃었다. 그렇게 전전한 시간강사 생활, 훗날 경기 대학에서 전임을 했지만 사진학과에서 만큼은 시간강사로서 일생을 바쳤다. 일주일에 36시간을 강의한다는 것은 못할 짓이다. 강철 체력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죽기 살기로 하지 않으면 견뎌내지 못할 일을 그렇게 했다. 나의 기억 속에 그것들이 있다. 그는 영원한 시간강사였고, 가장 열성적이고 가장 뛰어난 명강사였다.
유학에서 돌아왔을 1996년. 사진계의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바야흐로 세대교체가 시작될 무렵이었고, 상당 부분 힘의 이동이 40대로 옮겨간 시점이었다. 오랫동안 한국사진을 주도했던 중심 세력들이 정년을 맞아 2선으로 물러날 시점이었고, 여기에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40대 박사학위자들이 이론과 비평의 중심에 서서 새로운 사진 토양을 일굴 때였다. 이완교도 교육 일선에서 물러날 시점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물러난다는 의미는 전혀 다른 맥락이었다. 작업을 위한, 진검승부를 위한 물러남이었다. 돌이켜 보건대 교수라는 신분으로 명성을 떨쳤던 상당수 작가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나이 때문이 아니라면, 건강 때문이 아니라면 한 때 주가를 높였던 교수작가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완교의 2선 후퇴는 사라짐이 아니라 작가로서 도약을 위한 멋진 기회였던 것 같다.
1994년 예술의 전당에서 그가 <기운생동전>을 발표했다. 유학중이라 그의 전시를 보지 못했으나 언젠가는 그가 진검승부를 펼칠 때가 올 것이라고 예감을 했다. 사진학과 교수라는 사회적 계급장을 떼고 시합을 벌였을 때, 진짜 실력으로, 생명이 긴 장기 레이스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할 자가 누구인가의 진짜 진검승부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최소한 내게 그는 사진학과 전임의 계급장을 달지 못한 깊은 그림자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내게는 그가 주목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그런 말을 해줄 위치도, 입장도 아니었다. 그런 기회가 왔던 것은 2001년 4월. 그가 덕원미술관에서 야심찬 <무념무상>을 발표했을 때이다.
그날 나는 다소 미안한 마음으로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장 맞은편이 내가 운영했던 하우아트갤러리였다. 화랑을 운영하면서도 그를 잊었다는 미안함과, 몇 몇 기획전에 초대했을 법도 한데 컨셉을 생각하느라 전혀 그를 생각하지 못한 점이 미안했다. 그래서 살짝 다녀오려는 마음에서 전시장을 찾았는데 몇 발짝 못가 마주쳤다. 작품들이 좋았다. 무엇보다 내 예견이 빗나가지 않아 기뻤다. 그가 계급장을 떼고 승부를 걸었을 때 숨이 긴 작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날 그런 말을 했다. 이제 작가로서 승부를 걸면 멋지게 성공할 것이라고. 이번 전시는 그런 점에서 의미 있고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그리고 정성들여 만든 도록부터 외국의 유명 미술관과 화랑에 보내자고. 우리는 그렇게 하여 마음이 통하여, 의기투합이 되어 잘 만든 도록들을 회국 화랑으로 보냈다. 그리고 어느 구름에서 비 내릴지 모른다는 어떤 분의 말씀처럼 뉴욕 화랑에서 초대전 제의가 들어왔다. 이듬해 2002년 7월, 그는 뉴욕 첼시에 있는 조지 빌리 갤러리에서 성공적으로 초대전을 마쳤다. 뉴욕 화랑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지만 아무나 전시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에게 진짜 이제 진검승부가 시작되었다.
뉴욕 화랑으로부터 초대전을 통보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날 그가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다짜고짜 내가 쓴 <한 장의 사진미학>을 읽었는데 글을 참 잘 썼다고 했다. 마음으로 읽었던 것일까. 내가 그의 사진을 마음으로 읽었던 것처럼 그도 마음으로 나의 글을 읽었던 것일까. 전화를 끊고 한동안 그가 했던 말이 뱅뱅 돌았다. 우리는 그렇게 평론가는 작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작가는 평론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비록 그것이 바람 같은, 한때의 일회적 제스처였을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믿음이었고 의지였다는 사실을 서로 알았다. 뉴욕 전시를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가 전화를 했다. 광화문 근처에서 식사를 한번하자고. 그날 나는 그로부터 새로운 경험담과 작가로서 앞으로 방향에 대해서 들었다. 그는 무엇보다 행복하다고 말했다. 옛날에는 사진을 헌신적으로 했다면 지금은 사진을 행복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손등에 눈길이 갔다.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그의 손등. 지금 그 검버섯은 어떻게 되었을까.
2005년 4월 21일 인사아트센터 5층. 햇살이 따사롭게 인사동 곳곳을 비추던 날 나는 그의 전시장을 찾았다.
아니!
박수근의 그림이 왜 여기에 있지.
사진이 아니라 박수근의 그림이네.
작가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지만 능청스럽게 한 소리가 좀 컸던 모양이다. 피안의 안개 속으로 들어가니 갑자기 짙은 안개 입자가 박수근의 도톰한 흑갈색 마띠에르로 보였다. 그래서 목소리가 컸는데 그 소리를 들었는지 그가 "역시 사진평론가라 다르네."라고 말을 받으면서 온다. 그리고는 "안 올 줄 알았다"라고 말한다. 어제가 오픈이었는데 벌써 그런 말을 하다니. 농으로 한번 해 본 소리인지, 정말 오픈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보고 안 나타날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인지는 모르나 아무튼 출현에 반가워했다. 천천히 <피안>의 안개 속을 들어갔다 나왔다를 했다. 안개와 숲, 안개와 대지, 그 사이에서 몸을 넣었다 뺐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그의 사진을 볼 줄 안다. 20년 전부터 자리 잡은 나만의 감상법. 그것은 소리를 보는 것이고, 공명을 느끼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사진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또 공명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필시 이완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는 음악도니까. 그보다 줄기차게 음악성에 대해서 다가선 사람이 없었으니까.
한 사진가가 내게 심어준 트라우마의 울타리는 실로 집요하고 옹골차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의 사진 앞에 서면 미세하게 여린, 숨결 같은 여백과 허허로운 공간에서 음색을 더듬는다. 그 옛날 텅 빈 하늘에 걸린 한 조각 여백의 구름의 소리에서부터 촘촘하게 뒤덮은 심연의 안개 속까지 여린 음색, 떨리는 공명의 빛을 더듬어 본다. 피안. 피안은 그저 관념의 공간성이다. 목적지가 아니라 울림의 여백이다. 사진에서 그것들은 소리 속에 있고, 음색 속에 있고, 빛깔 속에 있다. 기운생동, 무념무상이 그랬듯이 피안 역시 정신의 공명이다. 모든 것을 종료시킨 교향곡이 있었던가. 운명, 합창, 전원은 소리를 잃은 영혼이 순간적으로 지각하고 감각하는 공명이지 모든 것을 종료시키기 위한 교향곡은 아니다. 악보, 악기, 연주를 통해서 그저 한 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 갈 뿐이다. 울림은 그 자체로 영원한 것이다.
전시장을 돌고 와서 마주보고 앉는다. 내가 한마디 한다. “하나도 변한 게 없습니다. 여전히 공간, 소리, 음색을 보게 됩니다.” 동그란 얼굴을 더욱 동그랗게 하면서 현을 퉁기듯 그가 한마디 한다. “그렇지? 똑같지? 육 선생이 어제 그랬는데 빈말이지만 더 이상 다다를 곳이 없대. 끝을 냈다는 말인데 빈말이지만 듣기가 좋더라구.” 그는 기뻐했다. 정말로 요즘 사진하는 맛을 새롭게 깨달은 것 같다고 기뻐했다. “진 선생. 요즘 그렇게 행복할 수 없어. 사진하는 게 행복이야. 사진의 새로운 맛에 빠지는 것 같애.” 30년 이상 산전수전을 다 겪은 강단의 사진가가 사진하는 것이 행복하단다. 강의면 강의, 논쟁이면 논쟁, 사진이라면 지고 싶지 않을 독설의 사진가가 그런 말을 하니 실감이 난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서기 전에 <피안>이 지난번 덕원의 <무념무상>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또 지난 4년 동안 사진에서 어떤 모습이 변했는지 막 말해주려는 순간 손님 한 분이 전시장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함께 합석하여 말문이 엉뚱한 곳으로 흐른다. 그만 일어나야겠다고 엉덩이를 드는데 성가대 합창 이야기가 나오고, 음악 이야기가 나오고, 바이올린 이야기가 나온다. 언젠간 꼭 한번 물어보고 싶은 말을 그 손님이 건넨다. “지금도 연주하세요.” 그가 말한다. “바이올린은 있는데 손이 굳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다 말고 탁자 위에 올려진 그의 손등을 내려다본다. 그 옛날 손등에 피었던 검버섯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행복하면 검버섯까지 지워지는 모양이다.
Contemporary Photo Artists Series Lee Wan-kyo
글 / 최건수 (미술평론가)
음악도 시간 예술이고 사진도 시간 예술이다. 그러나 음악의 가장 큰 약점은 시간의 소멸에 있다. 연주가 끝나면 예술도 끝난다. 그것은 견딜 수 없는 안쓰러움이다. 녹음하여 듣는 음악은 연주가와 공연장에서 만나는 그 숨막히는 순간을 나누지 못한다. 그러나 사진은 날아가는 시간을 동결시킨다. 사진가가 설정한 공간 속에서 시간을 얼린다는 것은 또 다른 기쁨이다. 소리의 한계, 즉 시간의 소멸이 주는 아픔을 훌륭하게 이기고 있는 것이다.
1940년에 강원도 삼척 원덕에서 출생한 이완교는 사진가이다. 그러나 1967년 경희대 음악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음악을 꿈꾸었다. 사진가로 변신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1984년 홍익대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이후이다. 그의 생애에 첫 출간한 사진집에 실린 첫 사진은 의미 있게도 서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본인의 프로필 사진이다. 하직 활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의 사진에는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몸으로는 여전히 소리가 흘러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몸에 밴 그 소리를 찍고 싶어 한다. 1980년에 첫 개인전을 한 이후 4번의 개인전을 더 했다. 그가 처음 사진기를 만져보고 촬영을 시도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이다. 동해안 바닷가에서 자란 이완교의 눈에는 바다, 하늘, 백사장, 갈매기, 솔밭 등 모든 것이 찍을 것들이었다. 어머니를 초등학교 6학년 때 여윈 그에게 남은 것은 그리움과 외로움이었다. 그것들은 홀로 있을 때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너무 이른 나이에 ‘외로우니까 인간’이라는 인식에 다다른 것이다. 눈물 뿌려진 바다 위에는 어머니 얼굴도 보이고, 신들려 바다로 간 외삼촌의 얼굴도 두둥실 물위에 떠있다. 싱싱한 바다의 무한한 공간은 사진가의 그것들을 보듬어 안기에 충분히 열려 있었다. 사진기를 가지고 바닷가로 갔다. 찍고 또 찍었다. ‘새벽’이나 ‘학원’에 실린 정도선의 사진들이 사진적 시각을 확장 시켜 주었다. 간혹 누드가 실리곤 했지만 마음을 움직인 것은 풍경 사진들이었다. 혼자이며, 그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사진을 찍었지만, 너무 이른 나이의 사진 찍기는 아버지의 억압으로 끝장이 난다. 사내 녀석이 할 일이 아니었을까? 그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유년의 시간은 그의 욕망을 마음 깊은 곳에 숨겨 놓고 지나갔다.
이렇게 놓아버린 사진 찍기는 경희대에서 음악을 하고 있을 때 다시 찾아왔다. 지방 순회 연주 때 바이올린과 사진기는 함께 챙겨지고, 연주가 끝나면 다음은 사진 찍기로 이어졌다. 부산, 강릉, 경포대에서 많은 사진을 찍었다. 어찌 그곳이 모두 바다일까? 이 무렵에 음악에서 사진으로 진로를 바꿀 생각을 하게 된다. 보다 진지하게 사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박달근이나 유만영이 쓴 기초적인 메커니즘 서적을 읽기도 했고 서강대 도서관에서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 / 1908~1976)의 작품집을 구해서 보기도 했다. 깜짝 놀랐다. 사진이 여기까지 갈 수 있다니! 대상에 대한 감정이입이 명상에까지 도달한다는 것은 음악 수준 아닌가? 음악은 형태도 색채도 언어도 없다. 소리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서 감정의 뿌리까지 다다르는 그런 것이다. 그가 본 마이너 화이트의 사진은 보이는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인간의 심연 속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다. 음악도 시간 예술이고 사진도 시간 예술이다. 그러나 음악의 가장 큰 약점은 시간의 소멸에 있다. 연주가 끝나면 예술도 끝난다. 그것은 견딜 수 없는 안쓰러움이다. 녹음하여 듣는 음악은 연주가와 공연장에서 만나는 그 숨막히는 순간을 나누지 못한다. 그러나 사진은 날아가는 시간을 동결시킨다. 사진가가 설정한 공간 속에서 시간을 얼린다는 것은 또다른 기쁨이다. 소리의 한계, 즉 시간의 소멸이 주는 아픔을 훌륭하게 이기고 있는 것이다. 왜 그는 사라지는 것을 못 견디어 하는 것일까? 그가 바이올린의 활을 내리고 사진기를 잡은 이유를 나는 여기서 찾고 싶다. 어느 날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어머니나 외삼촌의 모습과 유년의 그 감정의 결(잃어버린 것에 대한 갈망 혹은 절망)들을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은 사진가의 안타까움이 아닐까? 사진은 눈앞에 두고 싶어 하는 모든 것들이 또다시 소멸되는 두려움을 견디게 해준다.
1980년 첫 전시회가 「환타지아」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사진들이고 그의 초기 사진들이다. 다시 보는 환타지아는 그리 썩좋은 사진은 아니다. 사진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흥분된 감정만 많이 보인다. 그럼에도 「환타지아」를 언급해야 하는 이유는 이 전시회가 그의 사진에 대한 철학을 순수하게 드러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진가들은 사진은 예술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사진은 사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의 깊이는 역사의식과 인간의 삶이 어우러진 곳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위 다큐멘트의 정신이 사진의 모든 것이라는 것이다. 이완교가 생각하는 사진은 다르다. 그의 사진이 머무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느낌이다. 느낌은 영혼에 근접해 있다. 그 느낌은 무엇을 지시적으로 보여 주어서 될 일이 아니다. 음악의 울림과 같이, 그러나 구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울림을 줄 수 있는 시각적 언어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마치 칸딘스키(W.Kandinsky/1866~1944)의 주장처럼 들린다. 칸딘스키는 회화가 ‘외형적 사실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진리임을 밝히는 과학’이라는 것이다. 그가 점, 선, 면, 색으로 정신의 본질에 접근하려고 했다면 이완교는 「환타지아」같은 추상성을 사진에 접목하여 그 세계로 들어가기를 원했다. 보이는 사물을 찍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추상하여 감정을 이입해야 한다는 것은 칸단스키의 주장과 이웃해 있다. 「환타지아」는 다큐멘트와는 다른 독자적 사진 세계를 구축하려한 젊은 시절의 사진가의 꿈이다. 사진으로 예술을, 특히 추상의 세계를 탐구하려 했던 것은 음악을 했던 까닭에 욕심을 내볼 만은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사진을 걸고 3일 만에 사진가는 이점을 깨우친다. 다큐멘터리가 아니어도 사진이 회화와 다른 특성이 있을 텐데, 「환타지아」는 그것 자체로 회화인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것이 아닌 것이다. 이때 라즐로 모홀리 나기(Laszlo Moholy Nagy/1895~1946)의 말이 그를 때렸다. ‘그릴 수 없는 것을 찍고, 찍을 수 없는 것을 그려야 한다.’ 그런데 그가 찍은 것은 그림으로도 해결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왜 찍었을까?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1864~1946)의 주장대로 사진의 본질은 역시 스트레이트이어야 하고, 사실을 통해서 대상 안에 있는 ‘의미’를 끄집어내야 한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한 것은 「환타지아」의 최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3년 후에 열린 두 번째 개인전에서 「환타지아」에서 겪은 마음의 갈등이 해소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회향공간」은 애절하게 아름답다. 이 사진전의 주제는 그리움이라고 요약 할 수 있는데, 그 노스탤지어가 맑고 순정하여 그리움은 더욱 애절하다. 사진 속의 리얼리티는 과거 시제로 나타나고 그 공간은 과거의 어느 공간이다. 동해안에서 사진가는 서성거린다. 여기가 놀던 곳이다. 여기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내향적 성격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잘 엮어 내지 못한다. 그 대신 일찍부터 홀로 외로움을 견디어 내는 것에는 익숙하다. 외로운 마음이 그리움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그것들은 때로는 시원(始原)의 자리(어머니·고향···)를 향하고 때로는 자연(바다·구름···)을 향한다. 멀리 볼 때, 그리고 사랑하는 이미지들이 사라져갈 때 원초적 감정들은 증폭된다. 넓은 하늘은 그가 찍을 수 없는, 그러나 보고 싶은 온갖 것들이 들어 있다. 그 빈 하늘은 바이올린의 활이 점점 디크레센토로 내려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곳에 머무를 때, 소리가 없으나 마음에 소리의 공명이 남아서 울림이 오는 감정의 극치 상태를 닮아 있다. 사진은 밖을 찍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외부 이미지를 자신의 이미지로 변환시키는 힘은 사진가의 상상력이다. 「회향공간」에서 상상력의 뿌리가 되어 주는 것은 사진가의 어린 시절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외부 이미지는 작가의 내부 이미지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완교가 싸우는 것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실용적 이미지와 상투적 이미지에 저항하면서 이것들을 어떻게 자신의 상상 공간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부분일 것이다.
원초적 감정으로의 회귀라는 중요한 모티브를 가지고 있는 이 사진전에서 그의 의도가 성공하고 있는 사진①, 사진②, 사진③은 좋은 예가 된다. 3매가 1조를 이루는 이 사진들은 시퀀스(sequence) 사진의 전형적 예이다. 사진기의 앵글과 거리를 변화시키지 않고 시간의 경과에 따른 외부 이미지의 변화만을 일정하게 찍는 것이다. 나를 찌르는 것은 찢어진 초록색 천막의 꿰맨 부분과 짙은 하늘색 배경으로 한 구름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왜 나를 찌를까? 초록색 천막의 평면(그것은 시간이 경과하여도 변함이 없다)은 마치 잔디밭의 안락함을 느끼게 한다. 신은 천지 창조의 3일째 대지를 초록으로 입히었다. “대지를 푸른 풀들로 푸르게 만들라!”했다. 모든 식물의 시작은 초록이다. 대지 위에 자라나는 것의 모든 것은 초록으로 시작된다. 이 사진의 화면의 하단을 장식하는 초록은, 사진가가 어린 시절 뛰어 놀던 그 들판과 솔밭의 초록이다. 그의 유년 시절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한 것이다. 그 초록의 둥근 들판 위로 아이들의 웃음소리, 어머니, 송아지 울음소리(흰구름)가 떠올라온다. 사진가는 구름을 자신과 유년의 해맑은 시간과 등가의 자리로 놓는다. 그래서 구름은 그리움이라는 이미지로 치환된다. 무엇에 대한 그리움일까?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 고향의 공간으로 되돌아가고픈 그리움이다. 기억에는 있지만 눈앞에는 없는 유년 시절의 공간이다. 그곳을 떠난, 그리고 이미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장성해 버린 사진가의 마음에는 돌아 갈수 없는 공간임을 알기에, 천막의 꿰맨 자리처럼 몇 번이고 그 마음을 봉합하였겠지만 어떻게 하랴! 여전히 그리움과 아픔은 계속 터져 왔고, 안될 줄 뻔히 알면서 또 꿰매고 있는 사진가를. 나는 들판 위의 흰 구름과 함께 봉합된 그의 그리움의 시간들을 함께 보고 있다. 사진④는 좋은 사진이다. 사진가의 개성이 그대로 살아 있는 사진이다. 인적이 드문 바닷가이다. 잿빛 하늘로 보아서 햇빛을 구름이 가릴 수는 없지만 하늘에 구름이 두툼하게 덮인 것으로 보인다. 잿빛 하늘 아래 짙푸른 바다가 누워 있다. 바다는 잔잔하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어두운 노랑 빛을 띄우고 있는 모래밭이 펼쳐져 있다. 숨죽인 바닷가 끝자락을 한복 차림의 세 사람의 여인이 걷고 있다. 우측의 분홍색 한복을 입은 여인은 뒷짐을 지고 있다. 바람이 치마를 살짝 걷어 올린다. 가운데 두 번째 여인은 팔을 허리까지 떨어뜨리고 걷고 있다. 하얀 한복 위에 점처럼 보이는 손은 앙증스럽다. 그 뒤를 따르는 세 번째 여인의 한복은 노란색이다. 이 여인도 우측의 첫 여인처럼 뒷짐을 지고 걷는다. 노랑 치마가 뒤쪽으로 날린다. 어디를 가는 것일까? 이 세여인은 마치 오선지 위의 음표 같다. 그리고 이 음들은 우측의 프레임 밖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풍경은 덩그렇게 하늘과 바다와 모래밭만 남을 것이다. 이완교는 사라지는 것의 두려움을 알고 있다. 그 뒤에 오는 적막감은 미니멀리스트들의 주장대로 ‘less is more’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때 처절한 슬픔을 느낀다. 마치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이 저만치 가네 / 나 홀로 남겨두고’의 심정이 된다. 그래서 사진가는 사라져 가기 직전의 모습을 남겨두고 싶어 한다 그것이 그의 마음의 자리이다. 좋은 사진이란 개인적 체험을 체험으로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맛이 없다. 사진 속에서 체험은 깊어지고, 아니 사라져 버리고, 사진가가 감각하는 깊이의 흔적만으로도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진들이 그것을 보여준다.
문화는 자생의 문화이어야 한다는 것이 사진가의 주장이다. 우리의 경우도 사진을 도입한지 100년이 지났으면 우리 사진이 나올 때가 됐다는 것이다. 한국적 토양의 사진이 기대되는 것이다. 우리 사과와 배가 서양의 기후와 토양 속에서는 그 맛을 낼 수 없듯이 사진 역시 서양식의 사고와 논리를 한국 사진에 적용할 때 역시 그것은 서양의 아류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양 사진의 특징은 다큐멘트에 있고 한국 사진의 특징은 풍경 사진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다큐멘트가 좋다고 해도 그들이 쌓아온 다큐멘트의 전통에서 보면 우리의 다큐멘트는 하잘 것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것이 사진가의 사진관이다. 그래서 본인은 다큐멘트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한다. 우리 토양과 기후에 맞는 사진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는 것이 고민거리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진가들이 이점을 고민하면서 사진을 찍어 왔지만 눈에 보이는 한국적 사물들을 찍고, 그것이 한국 사진이라고 한다면 너무 소박한 관점이 아니냐고 지적한다. 한국의 정체성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레방아와 초가집이 한국의 아이덴티티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서양의 정신세계가 한계를 노출하고 있고, 그 빈곤의 해결책으로 동양의 정신세계를 추구하고 있는 이즈음 아닌가? 물질문명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동양 사상에, 정신적 부분에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만행-하바드에서 회계사 까지’를 쓴 현각도 이런 갈등을 풀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벽암록’을 풀이한 김홍호는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가 셋 있다고 한다. 하나는 자연이요, 하나는 신이요, 또 하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서양 철학사를 보면 고대 천년은 자연을 사랑하는 때요, 중세 천년은 신을 사랑하는 때요, 근대 천년은 사람을 사랑하는 때로 보았다. 서양 사람의 관심은 사람에 있고 중동 사람의 관심은 신에 있고, 동양 사람의 관심은 자연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동양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것도 자연이다. 신도 자연이요, 사람도 자연이요, 자연도 자연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나리자의 얼굴 뒤에는 산과 들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동양의 산수화는 높은 산, 넓은 물에 배 한척 떠 있고 그 배에 탄 사람은 점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같은 식물의 줄기를 찍더라도 서양인들이 찍은 것은 식물이 가지고 있는 외향적 미에 치중한다면 동양인의 미의식은 그것의 숨은 미, 즉 내재된 미를 보는 것이다. 즉 object를 subject로 바꾸어 보는 것이 우리의 미의식이다. 이완교의 사진이 깊어 가면서 머문 곳이 바로 동양적이며 한국인의 심성의 본질에 접근하는 사진을 찍어 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구체화된 것이 氣韻生動(1994년,예술의전당)이고 無念無想(2001년,덕원갤러리)이다.
氣韻生動 : 이 사진들이 앞서 언급한 「환타지아」나 「회향공간」과 다른 점은 외형적으로 칼라사진에서 흑백사진으로 옮겨온 점을 들을 수 있고, 다른 특징으로는 공간감이 없는 꽉찬 앵글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며, 세 번째 특징은 사진기의 눈높이가 높은 곳을 올려다보고, 눈높이로 보고, 다음으로 낮게 땅 쪽으로 내려다보는 시점(視點)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왜 칼라를 버리고 흑백으로 갔을까?RMSMS 더욱 단순해지고 싶었던 것이다. 칼라가 줄 수 있는 상상력까지 거세하여 버린 세계로 가고 싶은 것이다. 그 근원적 세계는 바로 ‘氣’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흑이 무엇인가? 모든 것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성의 원초적 밑바탕은 바로 ‘道’가 살고 있는 곳이고 그것을 색으로 나타낸다면 검은 색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칼라가 주는 표피적 표현력을 버리게 한 원인이다. 검은 색은 얼마나 깊은 것인지, 우주를 아우르고 있는 신비의 색이다. 또 하나, 색이 아니면서 색인 흰색은 어떤 것인가? ‘흰색은 하나의 색이기 보다 모든 색의 부재인 동시에 종합이다.’ 칸딘스키가 체험한 흰색도 그렇다. ‘흰색은 물질의 성질과 존재로서의 모든 색이 사라진 어떤 세계의 상징과도 같다’고 한다. 한쪽 끝의 흰색과 반대편 끝 쪽의 검은색 사이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우리는 마음의 눈으로 그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氣’의 세계이다. ‘靜’이면서 ‘動’인 세계이다. 자연은 생명체이다. 산의 바위도, 흐르는 강물도, 나무와 풀도 구름과 안개도 살아 있는 것이다. 인간이 생동하는 가운데 인간적 가치를 가지게 되고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듯이, 하찮아 보이는 자연 속에도 정신과 생명의 가치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사진가의 작업은 이와 같은 자연에서 생동하는 기운을 발견하는 것으로 사진 인생의 후반부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찍은 대상들은 하찮은 것들이다. 나무, 풀, 보리밭, 들꽃, 담쟁이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道’는 이 평범한 것들에도 깃들어 있다. 사진가가 보고 있는 것은 나무도 풀도 아니다. 생명력이다. 자연을 움직이는 힘 – 즉 ‘氣’이다. 그가 생각하는 미는 이성화된 것이 아니다. 고립된 형식미를 떠나서 사물에 내재되어 있는 힘, 그 전체를 보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가는 밖으로 드러나는 미적가치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물의 정신, 즉 ‘氣’를 볼 뿐이다. 아니 스스로를 일체의 자연에 합일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장자의 ‘物化’ 또는 ‘物忘’의 세계인 것이다. 주객을 구분하지 않는 세계이다. 나비가 장자인지, 장자가 나비인지- 그는 이 사진들을 찍으면서 오대산에서 2년간 ‘氣’수련을 병행하였다. 노장 철학에 심취하기도 했다. 침잠하여 깊이 보고, 분석을 넘어서서, 그리고 우리 체질, 토양에 맞는 사진을 찍고 싶어서이다. 그가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할 때 인간적이고 솔직함을 느끼게 한다.
無念無想 : 이 사진들은 기운생동과 이웃하고 있다.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찍고 있는 사물도 사진기의 앵글과 시점(視點)도 그렇다. 그럼에도 사진가는 똑같은 것을 반복적으로 찍고 있다. 왜 그럴까? 그가 가고 있는 곳은 ‘禪’의 단계이다. 그는 사진으로 이제 무엇을 보는 것까지를 거부하려는 마음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산을 보아라.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지고
있을 때 산을 보아라.
눈앞의 푸른 바위를 보라
그것을 본 사람은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
진다고 서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산이 있다. 나무가 있기 전에 산이 있다. 잎
이 트이기 전에 산이 있다.
산을 보라 산을 보면 나무는 문제도 안 되지
않느냐?
누가 자기의 얼굴을 보았나.
누가 자기의 본체를 보았나.
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氣韻生動 때 사용했던 6x6 중형 사진기를 버리고 35mm 소형 사진기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찍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 인화지 위에 나타나는 것은 그가 원하는 것은 아니다. 고감도 필름을 증감하여 굵은 입자 사이로 모든 것이 감추어진다. 감추어진 것을 볼 수 있는 것, 면박을 하면서 내 얼굴을 보고자 하는 욕망, 아니 그것까지도 거세된 세계로 사진가는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텅 비어 있는, 둥근 화해의 세계로 그는 자꾸 들어가는 것이다. 이완교가 세계를 보는 방법은 전시를 위해 준비한 글에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산점투시의 방법으로 예를 든 ‘亭子’에서 보는 관점은 그가 무엇을 보는 것이 아니라 관조하고 있는 것이며, 관조를 통해서 마음속에서 다시 통합하여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관조적 미의 발견은 사방이 탁 트인 정자에서 볼 수 있다. 정자에서 바라봄은 멀리보고(平遠) 다시 올려보고(高遠) 산의 뒤쪽까지 꿰뚫어 보는 심원(心遠)으로서 보는 이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오는 시점으로 서양과 같이 한군데 머물지 않고 온 우주를 마음 한곳으로 모으는 우주적 시각인 것이다.
(중략)
그래서 서양은 눈으로 즐기지만 동양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즐기는 심재(心齋)와 좌망(座忘)의 즐거움 인 것이다-
이완교의 사진은 사진계에서 그렇게 주목하는 사진전도 아니었고 또 많은 담론도 만들어내지 못하였다. 그의 사진과 유사한 형태의 사진들이 마치 90년대 유행이다 싶을 정도로 우리 사진계에 많이 등장한 것이 한 이유이겠고, 다른 이유로는 사진가가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는 기, 노장철학, 도, 관조 같은 단어들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단어들이어서 한국인에게는 그만큼 신선하지 않은 것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내 사진이 그것을 찍을 수밖에 없이 절실하였느냐가 어쩜 가장 중요한 문제 일 것이다. 최근 이완교에게 미국의 많은 갤러리에서 전시 제의를 해오고 있다. 2002년 7월 N.Y의 CHEISEA에 있는 George Billis 화랑과 LA의 Rose 화랑에서의 전시가 확정되어 있고, 캐나다와 영국에서의 전시도 섭외 중이다. 10여년에 걸쳐 동양철학과 서양의 사진을 접목시켜서 우리 사진을 해보려는 사진가의 노력이 결실을 얻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가는 요즘 즐겁다.
사진으로 부르는 나만의 노래 이완교
글 / 최재균 (기자)
작가의 작품을 대하면서 필자의 마음에는 순간적으로 몇 가지 단상들이 떠올랐는데 그것은 도가(道家)의 장자(莊子)에 보이는 혼돈(混沌)과 불교의 상즉무애(相卽無碍)한 화엄(華嚴)세계 그리고 중국 북송(北宋) 시대의 도학자, 주렴계(周濂溪)라는 인물의 사상이었다. 주렴계를 떠올린 이유는 작가의 사진이 온통 풀뿌리와 나뭇가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었다. 주렴계는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였는데 그의 집 정원에는 항상 잡초가 우거졌다고 한다. 누군가 그 이유를 묻자 주렴계가 대답하기를 잡초가 무성히 자라는 속에서 생명의 보편성을 느낀다고 하였다. 우리는 보통 정원에는 아름답고 깨끗한 화초와 장식물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잡초의 자리가 없고 그 생명이 용납되지 않는다. 행여 어여쁜 화초 사이에 잡초의 싹이 요만큼이라도 보이면 대뜸 뽑혀지기 일쑤다. 그러나 주렴계의 눈에는 잡초도 엄연한 생명이었고 그 속에서 생명의 보편적 가치를 찾았다. 다시 말하면 그에게는 화초와 잡초를 분별하는 분별심이 없었고 일체가 다 생명이었다. 필자는 작가의 작품에서 일체를 생명의 흐름으로 인식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감수성의 원천, 어머니
강원도 삼척에서 보낸 그의 어린 시절은 퍽 유복했다. 사업을 경영하시던 아버지 덕분에 집안이 넉넉하여 형과 그, 두 형제는 어려움 모르고 지낼 수 있었다. 특히 삼국지, 춘향전, 목민심서 등 독서에 열심이었던 그의 어머니는 밤이면 야학을 열어 미처 글을 익히지 못했던 동네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곤 했다. 늘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감수성이 풍부했던 어머니 덕분에 그들 형제는 자연스레 문학과 음악에 접할 수 있었다. 정신적 지주였던 그의 어머니는 그러나 그가 중학교 2학년 때 많은 정서적 유산을 남겨놓은 체 세상을 떠났다. 얼마 전까지 즐거웠던 세상이 그렇게 슬퍼 보일 수가 없었다. 그는 그 무너진 가슴을 시로 풀어냈다. 사춘기 시절의 예민한 감수성이 담긴 그의 시는 당시 국어 교사의 눈에 들어 전쟁미망인이었던 여선생님이 전근을 떠나며 꼭 시인이 되라'고 그동안 그가 과제로 제출했던 시가 담긴 노트를 한 묶음 내어 놓았던 기억도 있다. 그런 그였지 만 어느 날인가 이미 문재(文才)를 알리고 있던 형님과 '형이 이미 시를 쓰고 있으니 아우는 다른 일을 하기로' 약속을 한 다음날로 시 쓰기를 그만 두었다. 그 형님이 바로 문단의 원로인 이성교(성신여대 명예교수) 시인이다.
바이올린과 카메라
시작(詩作)은 접었지만 그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국민 학교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었고, 그 와중에 우연히 사진과도 만나게 된다. "127 필름을 사용하는 코닥 박스 카메라였는데, 거리도 고정되어 있고 날씨에 맞는 조리개 구멍 몇 개만 있던 간단한 제품이었지. 그래도 그 카메라로 찍어내는 사진의 재미가 얼마나 컸던지, 어린 나이에 왕복 60리길을 걸어 필름을 사러 가곤 했었어. 공부 안한다고 아버지께 야단맞고 한동안 그만 둬야 했지만." 바이올린을 전공하여 4년간의 전액장학금을 받으며 경희대 기악과에 입학한 이후 에도 그의 사진 사랑은 계속되었다. 전국을 순회하며 연주하는 순회연주회에서도 낮에는 늘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곤 했고, 음대 졸업 이후 여러 대학의 음악 관련 강의를 계속 하면서도 사진기를 놓지 않았다. 시를 쓰던 소년이었던 그에게 사진은 함축성이 큰 시각 예술로 다가왔던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사진을 예술로서 시작했어. 영화는 서사적이지만 사진은 함축적이지. 영화가 소설이라면, 사진은 시야. 엄청난 분량의 내용들을 압축하여 몇 마디의 단어 몇 개로 표현해내는 시. 나는 사진의 그런 함축성이 마음에 들었어." 사진을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었지만 당시 국내에는 마땅한 책도 없었고 볼 만한 사진집을 구할 수도 없었다. 수소문 끝에 그가 교양음악을 강의하던 서강대 도서관에서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의 사진집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시절은 복사기술이 형편없어서 복사하고 나면 삼분의 일 정도는 흐릿해져 알아 볼 수가 없었어. 원본을 놓고서 보이지 않는 부분을 다시 메워 넣어야만 했지. 하지만 어찌나 반가웠던지. 모자라는 영어실력으로 밤새워 책을 번역했어. 어떻게 서양 사람이 동양적 개념인 명상(meaitation)을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 놀라웠지. 작가다운 작가를 만나고 나니까 사진이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예술이라는 용기를 가지고 사진을 계속 할 수 있었어.” 언젠가부터인가 그는 사진을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시작했다. 기량을 유지하기 위해 날마다 대여섯 시간씩의 연습을 요구하는 바이올린은 자신을 지나치게 고갈시켰지만 사진은 독서를 넓히고 사색하는 시간을 늘리면 그 결과가 따랐다. 결국 그는 한 가지 분야에 집중하기 위해 아들이 유치원에 다니는 36살이 되던 해, 사진으로 진로를 수정하기로 결심한다. 나덕성(한국첼로협회회장, 중앙대 교수) 교수 같은 친구들은 ”어떻게 바이올리니스트가 카메라맨이 될 수 있냐“며 말렸지만 그의 결심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생활은 더 어려워졌지만, 그는 행복했다.
보다 나다운 사진을 찾아
그 사진의 근저를 이루는 동양사상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이미 여러 곳에서 사진을 강의하고 있던 그가 뒤늦게 입학하였던 홍대 산업 미술대학원에서 우연히 이루어졌다. 당시 독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임범재 교수의 미학 강의를 청강하던 중 "예능계 사람에게는 너무 어렵지 않겠나. 그만두는 것이 어떠냐."는 임 교수의 말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어릴 때부터 공부에 취미가 있었던 그는 거의 완성단계에 있었던 디자인 관련 논문을 접고, 보다 인문학적인 주제로 논문 방향을 바꾸었다. 그렇게 새로 다잡은 주제가 '사진에서의 공간연구' 다. 서양의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부터 시작하여 공간에 대한 공부를 진행하다가 동양의 공간에서 벽에 부딪혔다. 동양학 관련 서적 가운데에서는 독자적인 공간론을 찾기 힘들어 결국 노자와 장자의 저작들에서 유추해 내어야만 했는데, 이때 그는 노장사상에 흠뻑 빠지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문학이나 음악 같은 다른 예술 분야들은 모두 나름의 한국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왜 사진은 그게 없는지 답답했어. 너도 나도 서양의 사진가들을 흉내 내기에만 급급했지 우리의 사진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이 부족했거든.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 그들에 견주어 우리를 더욱 제대로 발견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우리 학생들은 오히려 자기 있던 것마저 잃어버리고 돌아오거든. 국수적이 되자는 것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문화적 스펙트럼으로서 우리만의 문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 우리에게 가장 어울리고, 가장 편안하게 느끼고,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문화가 있어야 하는 것이거든." 그는 자신의 사진이 '동양적'이라는 말을 듣는 것조차 그리 반기지 않는다. '동양적' 보다는 '한국적' 이라는 말이 반갑고, 그보다는 '그답다'는 말이 기껍다. 예술가라면 스스로에 대해 자신을 가지고 다른 이들에 대해 정신적으로 어느 정도 오만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이너 화이트와 윈 벌록(Wynn Bullock)을 좋아하지만 그들의 작업을 닮기보다는 자신의 작업을 계속 곱씹으며 보다 자신다운 작업을 찾으려 노력해왔다.
뉴욕 첼시에서의 개인전
이런 그에게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제자들의 이야기는 불만스러웠다. 미국의 어느 미술관, 어느 도서관을 방문해도 한국 작가의 사진집 한 권을 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작년, 자신의 '기운생동(氣韻生動: NATURAL POWER)', '무념무상(無念無想: FREEDOM FROM ALL IDEAS AND THOUGHTS)' 작업을 한 권으로 묶은 작품집이 나오자 미국의 미술관과 도서관들에 책을 발송하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더 반응이 좋았다. 여러 곳에서 전시를 열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그중 현대 미술시장의 중심지인 뉴욕 첼시(Chelsea)에 위치한 죠지 빌리스 갤러리(George Billis Gallery: www.georgebillis.com)에서 지난 7월 9일부터 8월 3일까지의 전시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전시기획자인 죠지 빌리스(George Billis)는 전시 서문에서 '도가, 불가 등 동양의 정신사상이 반영되어 있는, 동양의 정신을 서양의 형식에 담은 새로운 사진(New Photographs)' 라고 그의 작품을 소개했다. 오픈 다음날 AT&T, 스프린트(Sprint) 등 유수의 통신회사를 중심으로 전시한 17점 가운데 무려 9점이 낙점되었고, 전시기간을 통털어 꾸준히 작품이 판매되는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가격도 일반 작가로서는 상당한 $1,200 수준으로 제 값을 받은 셈이다. 2003년에 열리는 디트로이트 포토 페어(Detroit Photo Fair)에도 초대받았다. "처음에는 작품이 팔리겠나,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성과가 좋았어. 문화민족인 그리스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갤러리 큐레이터가 무척 기뻐하더군. 한국 토종이 미국 가서 전시해서 인정받았으니 성공한 셈이지. 가장 나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던 게 퍽 만족스러웠어.
가슴 속에 살아남는 사진을 향해
작년 말로 그는 30여년이 넘게 해온 교직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서재에 들어앉았다. 책에 둘러 쌓여 작업을 구상하고 또 촬영하고, 다시 책을 읽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고 한다. 짙은 흑백의 화면에서 그가 또 어떤 우리다움을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나는 다른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나를 위한 작업을 해왔어. 앞으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할 거야. 영적인 것, 보다 정신적인 것을, 그런 내 작업에 사람들이 공감해주면 역사 속에서 매듭이 하나 지어지는 것 아니겠어. 요즘에 제자들을 만나면 이런 이야기들을 하곤 해. 머리로만 하는 사진은 사진이 아니라고. 사진은 가슴으로 해야 한다고. 물론 머리로만 하는 사진으로 잠깐 유명해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가 죽고 난 후에는 냉엄한 역사의 심판이 있을 거야. 가슴이 아닌 머리로만 한 작업은, 그가 죽으면 사진도 죽어 버리고 말아. 그렇지만, 가슴으로 한 사진은 그가 죽어도 사람들의 가슴 속에 계속 살아남지.
저 너머 추상을 보여준 사진가, 이완교 가장 동양적인, 가장 예술적인
글 / 이종화 (기자)
“사진의 본질이 리얼리티라는 점은 다른 예술이 자유롭게 넘나들며 표현해온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주제로의 사진의 접근을 어렵게 해 왔어요.” 이완교(67)는 사진의 리얼리티에 기반해 우리 눈 너머에 있는 추상적인 관념을 찍어온 사진가이다. 대학에서 음악(바이올린)을 전공한 후 사진으로 방향을 바꾼 이력에서 알 수 있듯, 눈에 보이는 사물 보다 보이지 않는 관념을 표현하는데 더 익숙해져 있다. 또 초등학교 6학년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기억은 그가 성장하는 내낸 그리움으로 남았고, 그의 사진에서도 자주 보여져온 주제였다. “음악은 예술 중에서도 가장 추상적입니다. 보이지 않는 소리로서 인간의 온갖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게 음악입니다. 음악을 오래 해와 자연히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느끼게 되는 습관이 든 것 같아요. 보이는 사물을 찍는 건 예술이라기보다 기록이라고 본 것이죠.” 사진을 시작한 처음부터 지금까지 예술로서의 사진에만 매달려온 이완교에게 예술은 구체적이기 보다 추상적이어야 하고, 은유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집에 있는 카메라로 고향인 삼척 바다를 찍으며 느끼곤 했던 묘한 매력은 아주 오래갔다. 이런 혼자만의 놀이는 공부에만 집중하라는 아버지의 꾸지람에 곧 중단되고 말았지만, 대학에 들어와 아르바이트를 해 처음 번 돈으로 카메라를 구입함으로써 다시 어릴 적 체험했던 혼자만의 세상으로 빠져들게 됐다. 지방에 연주공연을 가더라도 공연이 끝나자말자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녔다. 이렇게 사진을 찍는 동안 카메라라는 기계에 의해 찍혀진 사진이 예술일 수는 있는지, 그 리얼리티를 놓고 오랜 고민을 했고, 그 결과 예술로서의 사진이 갖는 매력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그러다 추상이라는 주제를 갖고 80년 첫 개인전인 ‘환타지아’를 열게 된다. “사물의 물리적인 면을 떠나 느껴지는 것만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음악가 칸딘스키는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역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작곡할 수 있다고 말했듯이, 사진의 리얼리티에서 벗어나 음악처럼 사진을 찍어본 거죠. 그러나 전시 이틀 만에 스스로 문제점을 발견했어요.” 스타글리츠의 사진의 본질은 리얼리티와 사실성이라는 말을 굳이 인용 않더라도 보이는 그대로를 찍는 게 사진임에는 틀림없었다. 가령 미술은 찍을 수 없는 것을 그리지만, 사진은 그릴 수 없는 것을 찍는다. 화가가 아무리 정밀하게 그리더라도 결국 허구일 뿐이듯 사진도 리얼리티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리얼리티라는 사진의 본질을 벗어나지 않고, 추상을 표현하는 게 답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습니다.”
이완교의 다음 개인전 ‘회향공간’(1983)은 당시까지의 사진의 일반 구도에서 벗어나 하늘이 많은 컬러 사진들이다. 하늘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간혹 보이는 사람과 대상은 가운데 있지만 저 멀리 밀려나 조그맣게 보인다. 이완교는 “울림을 찍은 것”이라며 “그 울림은 그리움, 외로움, 상념, 추억 그리고 미래일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넓게 보이는 공간을 통해 시공간의 조화를 시도한다. 바닷가와 하늘을 배경으로 한복을 입고 걷는 세 여인의 사진이나 유난히 구름이 많은 하늘에서 잊을 수 없는 진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풍경은 그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그리움의 거리이면서 곧 작가 자신이기도 하다. 생성됐다가 얼마 안돼 사라지는 구름은 소멸되어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 미지에 대한 동경을 표현한다.
이완교의 회향공간은 당시까지의 사진의 일반 구도에서 벗어나 하늘이 많은 컬러 사진이다. 대부분의 사진에서 하늘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바닷가 모래사장 위를 각기 다른 색의 한복을 입은 세 여인이 다른 몸짓으로 걷고 있다. 멀리 떨어져 표현된 세 여인과 바람에 날리는 치맛자락은 무언가 가고 없음을 나타낸다. 또는 사라져가고 있는 진행형의 표현이기도 하다.
초록색 천막의 찢어진 부분을 꿰맨 자국과 그 너머로 하늘과 구름의 변화를 알 수 있다. 같은 장소에서 시간만 달리해 찍은 회향공간의 연작사진은 평화로움과 그리움을 동시에 안겨 준다.
80년대 두 번의 컬러사진 전시에 이어 90년대 이완교는 예전부터 심취해온 동양철학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실험적인 작업에 나선다. 대학원에서 동서양의 공간을 비교하는 논문을 쓴 적이 있고, 오랜 기간 관련 서적을 탐독하면서 동양사상은 이미 그의 몸과 정신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을 때였다. 철학이 모든 학문과 예술에 근간을 이룬다는 점에서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완교의 사진은 자연히 그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불교와 노장철학으로 대변되는 동양사상은 서로 맞닿아 있고 서로를 넘나든다. “서양의 공간은 수치로 환산되는 몇도 몇 평이라면, 동양에선 우주론 적인 시공간을 얘기합니다. 이는 마음속으로 느껴지는 시공간이며 보다 원초적이며 근원적이죠.” 동양사상을 근원을 따져들다 보면 결국 생명과 삶 등 모든 우주의 근원인 기와 만나게 된다. “기는 무엇일까? 얻은 결과는 모든 게 마음속에 있다는 겁니다. 원효의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일심사상에서 보듯 내가 슬프다고 생각하면 슬프고 기쁘다고 생각하면 기쁩니다. 신비한지 알았던 기는 마음에 실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완교는 직접 기를 체험하고 공부하기 위해 2년여간 오대산과 청양 등지를 돌며 실제로 기를 수련하는 사람들 속에서 기의 실존을 체험으로 느끼기도 했다. 사람 뿐 아니라 단단한 바위를 비집고 풀이 쏟아나는 자연의 힘에서도 기를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작업이 94년의 ‘기운생동’이다. 기운생동은 한 단어가 아니라 한자 한자가 각각 독립적인 의미를 가진다. 마른 풀의 보이는 모습은 말라 죽은 것 같지만, 그 아래의 뿌리는 살아있어 계절이 바뀌면 싹을 틔운다. 마른 풀을 통해 죽은 기가 아니라 생과 기를 모두 품고 있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기운운동이다. 곧 삶은 삶을 통해 보이는 게 아니라 죽음을 통해 진정한 삶이 무언지 아는 것과 같은 이치다.
2000년 들어 이완교의 작업은 ‘무념무상’에 기초하고 있다. 불교에서 스님이 하안거와 동안거, 면벽 수행을 하듯 선의 경지에 드는 것, 즉 아무런 생각이 없는 제로의 상태가 무념무상이다. 인간의 가장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 아무 것도 없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최근 4월 전시에서 선보인 ‘피안(彼岸)’ 역시 무념무상에 기초하고 있다. “피안은 불교용어로 저 너머를 말합니다. 신자는 아니지만 나의 관심은 불도에 있습니다. 현실을 떠난 미지의 세계에 관한 관심이지요.” 그의 말대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현실세계에 사는 존재이지만, 현실 너머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것이 이완교 작업의 시작이다. 현실은 아니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다음의 세상, 그것이 곧 피안이다. 피안 사진을 보면 앞에 있는 나무는 초점이 안 맞는 아웃포커싱 처리가 되어 있고, 뒤쪽 나무는 초점이 맞춰진 것을 알 수 있다. 뒤쪽 나무를 통해 다음 세상을 표현한 것이다.
90년대 들어 이완교 사진은 컬러가 아닌 흑백으로 전환했다. 흑과 백은 심오하면서 동양사상과 닿아있기 때문이다. 동양사상이 근원적이듯이 흑과 백은 모든 색의 근원이고 여기서 모든 색이 나온다. 이완교 사진이 흑백으로 바뀐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일찍이 동양사상은 흑백이 주는 의미를 간파했습니다. 흑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색이고 백은 색의 부재이면서 종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표현하려는 기와 도와 맞닿아 있는 색입니다.” 또 사물도 예전보다 더 선명해진 것을 알 수 있다. 때론 원근감 있게, 때론 형태가 불분명한 이미지가 보여지지만 아예 형태를 떠나진 않는다. 그가 추구하는 예술과 사진 사이에서 오는 오래된 모순을 알 수 있다. “형태를 완전히 떠나지 않고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작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형태는 유지하되 리얼리티적이진 않는 것, 곧 저 너머의 감성과 울림 중시하는 거죠. 오브제(사물)는 살리되 오브제의 개념을 떠난 이미지화는 제 사진의 오랜 표현방식입니다.”
이를 위해 이완교는 매번의 작업마다 자신의 표현 방식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화가가 유화와 수채화 중 무얼 그릴지 선택하고, 유화를 선택했다면 다시 화학약품을 섞을지 말지를 선택하는 것처럼 자신에 맞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선명했던 무념무상을 끝내고 피안 작업을 하면서 오브제에 얽매이지 않고 너머의 것을 표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완교는 고민 끝에 필름의 장단점을 모두 활용키로 했다. 잘 사용 않는 고감도 필름을 선택한 것이다. 고감도 필름은 입자가 거친 단점이 있지만, 어두운데서 찍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계조가 풍부하고, 콘트라스트가 약하고 회색이 도는 특징이 있다. “전부 회색인 내 사진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리얼리티가 강조되는 사진과 달리 내 사진은 침침하면서 우리의 심성을 표현하는데, 여기에 가장 적합한 필름 입자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고는 추상을 표현할 수 없었어요.”
이완교는 경기대와 서울예대 등에서 오랫동안 강의를 해오다 2년 전부터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는 “오랜만에 행복감을 느낀다.”며 “학교에 매여 있지 않아, 즐기는 사진을 맘껏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완교는 “초창기 작업부터 돌아보니 내 사진에는 일관되게 한국적인 정서인 저 너머라는 그리움이 깔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이 주제를 갖고 작업은 계속될 것이지만 대상이 무엇이 될지, 어떤 표현방법을 쓸지는 그때마다 다를 것”이라고 계획을 말했다. 덧붙여 새로움에 대한 도전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문화(Culture)의 어원에는 '개간하다'는 의미가 있다. 음악과 미술이 지역과 민족마다 다르듯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게 문화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동양적인 정서를, 눈에 보이는 사진으로 표현해온 이완교의 작업은 새로운 사진적 시도를 넘어, 국내외에서 폭넓은 공감을 얻은 지 오래다. 더 나아가 우리만의 사진을 고민하는 데 좋은 이정표가 되고 있어 그의 작업에 거는 기대가 높다. 이완교는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화두가 되었으면 하는 노자의 한마디를 남겼다. “나는 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이완교 피안彼岸, 무엇을 보려고 하는가?
글 / 최건수 (사진평론가)
높은 고음으로 맹렬하게 여름을 주장하던 매미들의 자지러지던 소리는 어디 갔을까? 미샤 마이스키의 연주로 드보르작의 ‘고요한 숲’을 들으며 달력을 보니 여름뿐 아니라 가을도 무르익어 가는 10월의 초순이다. 이렇게 소슬히 깊어지는 가을을 시인 박용래는 ‘귀뚜라미 정강이 시린 백로’라 했던가? 그러고 보니 눈보다도 마음에 가을이 먼저 내려앉는다. 안단테, 아다지오, 라르고 같은 느린 선율의 CD를 걸어놓는 일이 요즘 부쩍 많아졌다. 무한한 영감과 따뜻함 그리고 짙은 우수가 이 선율의 빠르기표에 담겨 있는데, 홀로 있는 가을밤에 듣고 있노라면 마치 이완교의 사진 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다. 그의 피안彼岸은 라르고보다도 유장하여 사진과 사진 사이에 끊어짐이 없이 차안此岸에서 피안으로 이미지를 흘려보낸다.
묵은 매화나무 가지에 꽃 흐드러져
전시장(피안 II/2006.9.20~26/인사아트센터)에서 만난 노사진가(이렇게 말해도 되는 것인지···그러나 1940년생인 사진가는 70세를 눈앞에 두고 있지 않은가?)는 아직도 동안의 얼굴과 투명하고 활기찬 목소리를 자랑한다. “선생님, 은퇴한지도 꽤 됐고, 연세도 있으신데 이리 젊게 사시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사진과 관련 없는 질문으로 일 년만의 해후에 대한 반가움을 드러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면 인생이 재미있어. 이제 사진이 뭔지 조금 알 것도 같고···그러니 이 제 편하게 내 사진도 할 수 있을 성싶네.” 30년 넘게 사진을 찍고 가르쳐 오던 사진가는 이제 사진에 눈이 조금씩 뜨인다고 했다. 하긴 2000년 교직 은퇴 이후로 거의 매년 개인전을 개최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데, 그 수준이 심봉사 눈 뜨듯이 새로운 차원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으니 사진 좀 했다는 후배들을 낯부끄럽게 만든다. 사실 다른 예술처럼 사진도 나이 들고 기력이 떨어지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창의력과 몸의 움직임이 예전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 밥에 그 나물인 사진들이 원로 사진가들 사진 아닌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진가들에게 발견되는 이 현상은 아쉽지만 받아들여야 할 자연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로버트 프랭크는 『The Americans』라는 1950년대 작품집 하나로 버텨오고, 오늘도 여전히 현대 사진의 개척자로 대접받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그에게 1950년대와 같은 참신한 사진을 2000년대에 기대하고 있지 않다. 나이에 따른 감수성의 고갈을 누구나 느끼고 인정하는데, 나는 이 노사진가의 사진을 ‘새롭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피안’ 시리즈의 사진들이 ‘그’ 혹은 ‘너’ 같은 삼인칭이나 이인칭 문제를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사진가의 사진은 일인칭인 ‘나’의 거울이 된다. 삼인칭에서 일인칭으로 건너오는 시간은 얼마나 멀고 아득한가? 그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이 소멸하고 풍화해도 살아남은 것은 ‘나’라는 존재다. 이제까지 보아온 사진들이 현실세계에 진입해서 얻어진 것이라면 이완교의 사진은 삶이라는 동태적 풍경으 로부터 이탈함으로써 얻어진다. 사회에 대한 민감한 감성이나 섬세한 관찰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사진들을 새롭다는 말로 견인하고 싶다. 삶에 대한 통찰은 대상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때 얻어지는 것으로, 쓴맛 단맛 다 맛본 인생에게나 찾아오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 사진들은 젊은 사진가가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아니다. 흉내 내 본들 떫은 풋감 같은 맛일 수밖에 없다.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19세기 후반에 유행했던 회화주의 사진의 아류로 보는 사람도 있고 또 수묵화나 판화를 흉내 낸 것이라 보는 사람도 있다. 모두 틀린 이야기들이다. 그들 역시 보이는 것만 가지고 볼 뿐이다.
저만치 안개 속이 찬란하구나
이완교에게는 사진 스승이 없다. 그렇게 혼자 좌충우돌하면서 쓸쓸히 사진을 해왔다. 그에게 스승은 사진을 가르쳐준 사람이 아니라 인생을 가르쳐준 사람들이다. 노자와 장자가 그들이다. 이들이 사진가에게 준 첫 번째 화두는 삶의 본질 찾기이다. 이제까지 사진에서는 그것을 리얼리티라고 하고, 리얼리티를 드러내야 하는 것이 사진이라고 했다. 소위 현실에 대한 기록과 재현성을 미적으로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마르쿠제marcuse식의 ‘예술을 통한 현실에의 의의 제기’이다. 그런 까닭에 풍경을 찍으면서도 무엇을 찍을지 뚜렷하게 의식하는 것이 이제까지의 사진 찍기 방식이었다. 따라서 랜드 스케이프landscape 사진의 역사라는 것이 찍는 자의 지배적 관점을 표현 방식에 개입시켜 왔던 것이다. 이 명료한 분석적 사진 찍기는 서구 문화의 출발과 흐름을 같이한다. 탈레스는 우주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며 확정적이고 명쾌하게 결론 내림으로 서구 문화를 출발시켰다. 이 명료함은 다른 명료함으로 나아가고 부정되면서 서구 문화는 진화되어 왔다. 예를 들면 아낙시메네스의 ‘무한’, 피타고라스의 ‘수’ 그리고 헤라클레이토스의 ‘불’ 같은 것이다. 이후에 데모크리토스는 세계의 본원을 ‘원자’로 이해했다. 이 모든 것이 실체에 대한 탐구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더 나아가 세계를 물로 이해하는 것도 모자라 산소와 수소라는 분 자 세계를 탐구하고 이들을 더 쪼갤 수 없는 원자 수준으로 내려가 세계를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 서구인이었다. 사진의 역사도 그 흐름을 벗어나지 않는다. 존재보다는 실체를 알아내는 데 모든 노력을 경주했다. 더 밝은 렌즈, 더 빠른 촬영 속도, 더 정밀한 색재현 능력, 우리 눈이 보는 것과 같은 명도의 재현 등은 모두 이 차안의 세계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문제였다. 머이브릿지가 ‘달리는 말’을 찍었을 때 그가 관심을 보인 것은 단 하나였다. 말이 달릴 때 네 개의 발이 어떤 움직임을 보여주는지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모든 짐승이 일생의 디딤돌로 발을 쓰지만, 발의 존재 이유를 찾기보다 머이브릿지는 움직임에 관심을 보였다. 안셀 아담스는 또 어떤가? 그가 개발한 존 시스템은 실체를 자세히 보자는 명료한 의식의 산물이다. 보다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질서를 인화지 위에 드러냄으로 실체에 다가가려는 것이다. 따라서 사진은 '실체'의 세계에 대한 서구인의 총체적 이해를 돕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완교가 찍고 싶은 것은 현실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사진가이기에 랜드 스케이프를 찍지 못한다. 그가 찍고 싶은 것은 ‘풍경’이고 ‘자연’이다. 말 그대로 바람風과 빛景을 찍고 싶고, 스스로自 그렇게 있는燃 것을 찍고자 한다.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질서를 넘어서는 지점에 삶의 비밀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세상을 보는 그만의 방법이다. 그가 풍경을 통해서 보는 세상은 피안이고 불교적 용어로는 열반涅槃, 산스크리트어로는 니르바나 nirvana라 한다. 탐욕과 노여움 그리고 어리석음이라는 삼독三毒을 내려놓고 도달하는 세계가 니르바나의 세계이다. 그 초월의 세계에 참다운 아우라aura가 있다. ‘구체적인 무엇임’을 초월한 ‘이다being’라는 본질의 세계인 것이다. 이렇듯 대상과의 소통에서 초월로 대전환하고자 하는 꿈을 사진가는 십년 이상을 꾸어왔다.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표면적 형상을 통해서 플라톤이 꿈꾸는 세계(이데아)나 노장老將이 꿈꾸는 도(道, 우주의 근본법칙)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인가? 이완교는 천하 만물이 모두 유有에서 생기는데 그 유는 무無에서 생성된다는 유·불·도의 우주관을 믿고 있는 것 같다. 아지랑이처럼 보일 듯 말 듯, 있는 듯 없는 듯한 도道가 무無이고 공空이다. 결국 그의 사진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닌 것道可道, 非常道’ 같이 구체적 사물을 지움으로 본질에 이르는 길을 찾아가고 있다.
사진의 기본 명도는 중립적 회색이지만 이완교의 사진은 어두운 회색이다. 그가 특히 이 회색을 중요시하는 까닭은 모든 색을 끌어안고 있는 색이 회색이기 때문이다. 이것과 저것을 아우르는 회색을 안셀 아담스는 존 5에 속한 명도로 삼았다. 또한 스님들의 법의法衣에서 발견되는 색이기도 하다. 그것이 중용中庸의 색이다. 중영은 ‘마음이 뚫림’을 말하는데 그것이 한번 뚫리고 그쳐서는 소용이 없기에 다산 류영모는 ‘줄곧 뚫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완교는 명도를 조절함으로 ‘치우치지도 않고 기울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고 못 미치지도 않는’ 중中의 세계를 가본세계로 삼았다. 그러기에 서양식의 원근법은 깊은 회색 속에 감추어져 있다. 먼 곳도 가까운 곳이고 가까운 곳도 먼 곳인 것은 그가 대상의 이것과 저것을 나누어 보는 것을 무용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눈을 뜨고 본 것을 눈을 감고 보면 원근이 또렷이 나타나는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이 투명하게 다가온다. 이것이 관조의 세상이다. 그 속에서 보는 세상은 나무도 바위로 보이는 검은 덩어리의 세계로 카오스적이고 모호하다. 그는 보이는 모든 것을 지우려고 한다. 사진의 거친 입자도 있는 것을 없는 듯 지우는 데 퍽 유용하다. 그 기술적 부분을 살펴보면, 고감도 필름을 다시 증감 촬영하여 높은 온도의 현상약으로 현상하고, 8X10인치 크기로 인화한 후, 이 결과물을 다시 스캔하여 롤지에 잉크젯으로 프린트했다. 그것은 거친 입자를 강조하기 위하여 검토된 방법이었고, 구체적 사물을 입자 속에서 지워 버리는 효과를 얻었다. 어두운 회색 톤과 굵은 입자, 낮은 콘트라스트, 빈대떡처럼 눌려진 원근,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어두운 회색의 덩어리들, 이 모든 것은 실체를 지움으로 무와 공의 세계로 가고 싶은 사진적 시도이다. 나이 듦으로, 모든 것을 버림으로 얻어지는 이완교식 ‘이다’에의 접근, 그것이 피안 아니겠는가?
Yi Wan-gyo Cha Yong-boo 彼岸과 彼岸(피안과 미로)
글 / 최건수 (사진평론가)
彼岸과 彼岸
한 1년 쯤 전인가? 기획자로서 이런 욕심이 있었다. 이완교·차용부의 2인전이 그것이다. 다른 이들이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이 조합이 특별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두 분 모두 삶의 근본을 추구하지만 방법론이 사뭇 다르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사진은 매체의 속성상, 보편적인 인간의 내면을 궁구하기보다는 밖의 세계에 관심이 많다. 흥미진진한 세상은 늘 호기심의 대상이다. 그것을 보고, 문제를 제기하고, 매로는 시대정신을 발견한다. 두 분 사진가는 조금 다르다. 자신의 내면 탐구를 통해서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문제로 확장해 나간다. 그게 흥미진진하다. 같은 문제를 어떻게 저리도 다르게 해석하고 접근하는지···
이완교님의 해석은 중도적이다. 이것과 저것을 나누지 않는다. 진(眞)과 위(僞)의 문제를 하나로 묶어낸다. 그것을 두 가지의 외면적 특징으로 집어낼 수 있다. 하나는 형태감이다. 그의 사진은 모든 것이 투명하지 않다. 있는 듯 없는 듯하다. 가득 찬 것 같기도 하고, 텅 빈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처음과 나중 사이에 걸친, 또는 생(生)과 사(死) 사이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두 것을 아우르는 느낌이다. 이번에는 흑과 백을 다루는 입장을 살펴보자. 유독 회색만이 강조되었다. 검은색도 회색으로, 희색도 회색으로 들어왔다. 그러니 회색은 모든 색의 어머니요, 그곳으로부터 검은 색도 흰색도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생로병사가 어디 따로 있는 것이랴? 내 몸이 그것들의 거처인 것을. 이완교님은 그것을 돌부처처럼 한자리에 딱 앉아서 사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사진을 보면 반가유사유상이 생각난다.
차용부님은 어떤가? 논리적이고 엄정하다. 흑백의 계조를 보아라. 쪼개고 쪼개 수 있을 만큼 흑과 백을 분리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사물의 재현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인식하는 문제로 나는 이해한다. 그렇다. 그는 자신을 찾기 위해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길을 떠난다. 물론 관광도 아니고 여행도 아닌 순례자처럼 길을 떠나는 것이다. 세계를 주유하는 것이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을 찾는다. 그 삶의 동태적 풍경 속에 끼어 자신(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다. 사진에는 ‘나’와 ‘세계(혹은 너)’를 분리해서 보려는 흔적이 역력하다. ‘나’는 곧잘 새, 개, 공룡, 한 대의 자동차 같은 것으로 상징된다. 그것은 세계 속에 있지만, 세계 속에서 떨어져 나온 ‘나’이다. 세계는 여전히 사진가가 주변을 맴돌아야 하는 곳이고, 저만치 떨어진 사유의 대상이다.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사진가는 늘 외롭다. 아니, 인간이 외롭다. 나는 이러한 차용부님의 마음에 공감한다. 마침내 길 위의 고독은 사랑 속으로 스며든다. 사랑해야 할 대상은 또한 끝내 인간일 수밖에 없다.
한 자리에 있으니 마치 흑과 백처럼 사진들은 선명하다. 그것이 보고 싶었다. 두 분의 목소리는 개별적이지만, 보편적 삶의 자리에서도, 역시 울림은 크다.
이완교의 IT BOOK 문화전쟁
글 / 이주영 (기자)
이완교는 바이올린을 전공한 사진가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작업에서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오선지의 음표들처럼 그의 작품 속 흑과 백의 이미지들은 그가 만들어 놓은 운율을 따라 흐르고 있는 듯하다. 그의 서재가 있는 판교근처의 나무로 지어진 2층짜리 단독주택은 꼼꼼한 그를 닮아 앞뒤 뜰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서재창 너머로 보이는 뒤뜰의 나뭇가지에 앉은 작은 새들이 인터뷰 내내 창가에서 한마디씩 참견했다.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그가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연습에 쫓기며 불안감 속에서 사는 상황에서는 진정한 예술을 즐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완교의 사진에서 보여지는 것은 완전한 추상이다. 추상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음악이라고 한다면 그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추상의 이미지들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완교는 사진을 기록이 아닌 순수예술로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순수한 예술일수록 탄탄한 이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은 예술은 물가의 모래성 같이 어느 순간 무너져 버리게 될지 모른다. 실재하는 상황을 촬영하는 사진가들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런 후에 사물을 대할 때 그것에 대한 깊이 있는 안목이 더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사진은 그것이 다큐멘터리든, 예술이든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작가의 울림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울림echo은 사진가의 정신을 담고 있어야 한다. 대상을 촬영하는 사진가가 얕고 좁은 정신으로 촬영을 했을 EO 그것이 온전히 보는 이들에게 깊이 있게 다가갈 수는 없다. 작품 너머의 정신과 울림까지 느낄 수 있는 그러한 작품을 할 때 비로소 보는 사람과 작가의 작품 간의 완벽한 교감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는 철학자와 사진가에게는 항상 ‘What is’라는 의문이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대상, 사회, 삶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의문이 있을 때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그의 작업 전반에는 동양철학의 정신이 바탕이 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현대를 동양철학으로 풀이한 “문화전쟁”
사진가 이완교가 예술가들에게 권하는 책은 윤재근의 「문화전쟁」이다. 윤재근은 노자, 맹자, 장자 등 동양 철학의 대표서적들을 읽기 쉽게 풀이한 저자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우리 고유의 것과 외국의 것이 어지럽게 섞여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현대의 모습을 동양철학사상을 통해 풀이한다. 또한 우리의 것을 지키면서 그것을 멋지게 이어갈 방법에 대한 다양한 모색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문화를 올바르고 탄탄하게 형성하고 그것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문화정신으로 만들어 제대로 내보낼 수 있는 방법을 노자와 장자의 이야기를 통해 알기 쉽게 이야기한다. 그간 많은 철학서적을 읽어왔던 사진가 이완교는 이 책을 통해서 철학과 예술의 중요한 접점을 찾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철학을 우리 문화와 예술에 좀 더 확실하게 대입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신상’이라는 말이 생겨나듯이 요즘은 무엇보다 새것이 우선시 되는 시대이다. 하지만 그 새것이 생겨나기에 앞서 이전의 역사들이 한 장 한 장 쌓여 그 새것을 만들어 낸 것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는 예술가들의 해외 진출이 늘고 있고 있는 것은 정말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그러기에 앞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걱정한다. 그는 본격적인 문화전쟁터에 나가기에 앞서 우리의 것에 좀 더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의 서재에 꽂혀있는 많은 철학 책들을 한권씩 살펴보니 책 안에는 빨간 밑줄이 수없이 그어져 있다. 그는 그냥 책을 한번 읽고 덮어 버리지 않는다.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될 때까지 그것을 자신에게 이해시키고 흡수하고 있는 듯했다. “자문화를 강문화로 성장시키는 민족이나 국민은 현명한 인간집단이며, 자문화가 타문화에 종속되는 현실을 방치하여 약문화로 전락시키는 민족이나 국민은 어리석은 인간집단이다. 문화는 인간의 것이므로 인간에 의해서 강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한다. 현명한 민족이나 국민은 자문화를 강화시킬 줄 알고 어리석은 집단은 자문화가 약해지는 것을 방치해 버린다.”(문화전쟁 중에서) “누군가 당신에게 Who are you? 라고 물었을 때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대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가장 안타까운 것이 유학을 다녀 온 많은 예술가들이 외국의 것만을 그대로 익혀 와서 한국에서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데, 그것이 정말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나는 우리의 것만 옳다고 하는 국수주의자가 아니다. 외국에 나가서 우리의 것을 제 3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것을 통해 나 자신을 뒤돌아 볼 때 비로소 문화적 발전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됐을 때 진정한 Global이 되지 않을까 한다.”
사진가 이완교는 5월 5일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의 한 궁전에서 한국을 알리는 전시를 가진다고 한다. 그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우리 것으로 완전히 무장하고 “문화전쟁”을 치르러 간다고 한다. 멋진 승전보를 전해 주길 기대한다.
이화정(梨花汀)의 바람꽃_저 검정 너머의 세상에는
글 / 이은순 (작가)
인사동에서 열리고 있는 이완교 사진전을 감상했다. 수차례 이 작가의 전시회를 보았지만 오늘은 현수막에 휘날리는 ‘니르바나해탈의 경지’라는 제목이 눈길을 머물게 하고 생각마저 멈추게 해 얼른 발길이 옮겨지지 않았다. 전시실 안은 온통 흑백의 잔치였다고나 할까. 펼쳐진 작품들이 마치 동양화의 수묵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양 나에게 낯설지 않음은 한때 수묵화에 빠져 그림을 그렸던 옛 영상이 내게로 다가옴인가. 먹과 붓으로 화선지에 찍고 나면 퍼지는 발묵發墨, 번지고 스며들어 예기치 않은 다른 빛으로 향해가는 오묘한 연출을 살짝은 맛본 터라 어느 작품 하나도 건성건성 넘기지를 못했다.
작가는 현실을 몽롱한 불확실의 세계로 보고 안개 너머에 있는 피안을 향한 동경을 끝없이 추구하고 있다. 눈앞의 나무나, 풀, 꽃 들이 하나의 하찮은 물상일 뿐 그것들이 갖는 미학적 형태나 색향 등은 작가에게는 별다른 의미로 각인되지 못한다. 오로지 그 원형만이 보일 뿐이다. 그래서 모두 같은 톤의 색으로, 흑색과 회색의 조화로 희미한 형상만이 존재할 뿐이다. 온통 대지는 회색으로 물들고 연무가 드리운 오솔길을 끝없이 따라 가노라면 검정 너머 우리가 가고픈 그리움의 세계가 번뜩이며 진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속념에서 벗어나 이상 세계의 희원을 자아내게 하려는 건 아닌지.
작가는 현실이라는 혼돈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몸서리치는 고독을 씹으면서도 꿈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노스탤지어를 저리도록 아프게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노래하고 춤추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 또한 고독을 견뎌보려는 정신적인 유희라 생각한다면 그의 작품 역시도 고뇌의 씨앗으로 보아도 됨직하다. 온통 검은색을 바탕으로 톤의 강약에 따라 현묘한 공계空界에 대한 형이상학적 상상을 자유자재로 표현했다. 이는 바로 동양화의 발묵법을 터득한 것으로 언어 이전의 사유 세계를 나타내는 데 더없이 좋은 기법이다. 이 같은 오묘함을 사진에 접목시킨 것은 집요한 추구 끝에 발견한 작가만의 착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화폭 속에는 시공을 넘나들며 모아놓은 자연의 물상들이 담겨 있다. 작가는 일일이 따지지 않는다. 추억과 그리움, 회한과 자책, 절망과 희망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 됨으로 끝자락에는 언제나 희망 한 가닥이 있어 밝음으로 인도한다. 이것은 구도나 빛으로 때로는 무형의 마음으로 처리된 작가의 의도인지도 모른다. 어떻든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마법이 스미어 있는 듯하다. 그 화폭에 나타난 형상들은 불가에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실체가 없는 현상에 지나지 않지만 그 현상 하나하나가 실체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공즉시색空卽是色일 터이다. ‘색이란 모든 형체가 있는 만물로, 우리가 만질 수 있는 만물은 모두 일시적인 모습일 뿐 실체의 것이 아닌 텅 빈 공空’이라고 말하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의 묘법도 담겨 있다. 우리가 눈감고 중정中正에 이르러 주변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공空의 사상에 어긋나지 않는다. 작가는 본디 지니고 있는 소심素心의 세계를 사진의 화면으로 옮기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역시 작가는 동양 정신을 바탕으로 작품에 임한 것 같다. 사진이라는 출발 자체가 과학이다. 근래의 학문과 예술이 동서양의 접목으로 크게 발전하고 있는 것처럼, 작가 역시 서양의 과학에다 동양 정신을 심어서 유감없이 표출한 것은 수많은 실패와 시련 후에 얻은 작가 자신만의 새로운 예술 세계를 창조한 것이라 하겠다. 작품에 깔린 소재를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것으로 택하여 서양화 기법에 동양화의 수묵화를 가미한 오묘한 깊이를 발굴했다고나 할까. 혼은 아득한 시공을 초월한 인간의 세계로 돌아왔다. 순간의 셔터는 그 자리에서 머물지 않고 황홀한 세계로 이끌어준다. 강과 내가 있을 때는 물길을 나타내고, 중첩된 산속과 빽빽한 숲 속에서는 한줄기의 빛이 비치며, 험준한 산속에도 한 채의 인가가 있고, 드넓은 바다에도 물길을 그려 넣은 것은 닫혀 있는 마음의 탈출구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작가는 현실을 꿈의 공간으로 바꾸고 그 너머에는 이상적 현실을 설정하여 전체 화면을 꿈같은 몽환의 세계로 인도한 것일지 모른다. 그 검정 너머에는 다른 세계로 가는 듯, 이상과 저승이 교차하는 길목에서 새롭게 번뜩이는 오색찬란한 빛이 느껴져 나의 마음속까지 아름다운 해 오름으로 다가온다. 자꾸만 보아도 또 보고 싶은 작품 앞에서 떠나지 못하는 것은 현실 앞에 부딪히는 뭇 상념에서 벗어난 저 검정 너머 니르바나의 세계에는 참 자유가 가득할 것 같기 때문이다.
-《강남문학》 16호, 2010
치유하고 느끼는 사진으로
글 / 박정현
낭시국제이미지비엔날레에 초대되어 프랑스를 방문하고 돌아온 이작가는 지금까지의 리얼리티 개념에서 벗어나 치유의 예술로서 사진작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를 평가했다. “독일의 낭만주의 문인 노발리스는 ‘20세기 황폐해진 정신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동양사상뿐’이라고 말했어요. 낭시 비엔날레의 큐레이터 역시 ‘인간을 자연으로 되돌려놓음으로써 잃어버린 인간성을 치유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고 제게 말하더군요. 제 작품은 물질문명에 대한 인간성 상실이나 고갈과 연간 되며 무한경쟁의 세계와도 무관치 않아요.” 아울러 흑백의 거친 입자는 프랑스 관객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 충격은 지금껏 ‘보는 사진’에 익숙했던 이들이 ‘느낌의 사진’을 첫 대면한 데서 기인한다. 이처럼 이완교의 사진은 보이고, 보는 것이 전부라는 서구인의 시각에서는 분명 낯설고 처음 접하는 이미지임이 분명했다. 이작가는 서구 관객과의 첫 대면의 소감을 담담히 전했다.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의 모습에서 새삼 프랑스가 문화강국임을 실감했어요. 특히 개인적으로 감회가 남달랐던 점은 케르테츠의 나라를 방문했다는 것이었어요. 앙드레 케르테츠(Andre Kertesz, 1894~1985)는 브레송의 스승으로 잘 알려졌는데, 예전 제 작업실에 그의 작품 브로마이드를 걸어놓을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서구 사진은 ‘보는 사진’ 즉, 현상학적이에요. 그러나 케르테츠는 당시에 벌써 본다는 것을 넘어 이미지 즉, 느낌을 중시했던 작가입니다. 마침 비엔날레에서 그의 빈티지 작품도 함께 전시되어 특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완교 사진의 거친 입자는 작가만의 오랜 작업 스타일이다. 필름 입자 그대로 어떤 조작도 가하지 않은 이미지는 보이는 것 너머를 향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의 사진 속 검은 세계는 단순한 검정색이 아니다. 모든 색깔이 비롯되는 색의 근원이자 우주만물을 잉태하고 있는 생명의 시작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여전히 색을 탐구하는 중이며, 사물을 대하고 느끼는 자신만의 감성을 기를 것을 강조한다. “결국 꾸준히 공부해야 해요. 감각과 감성은 선천적으로 타고 나기도 하지만 지식과 지성과 비례하기도 해요. 지식이 쌓이면 보는 눈이 달라져요. 저 역시 계속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중이며 어떻게 바뀔지 몰라요. 하지만 변함없는 건 아마 동양적 심성에서 출발한다는 점이겠죠. 내가 나고 자란 곳이니까요.”
낭시국제이미지비엔날레에서 이완교의 특별전이 열렸다. 올해 비엔날레의 주제 ‘Ailleurs’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 보이지 않는 어떤 곳’이라는 다소 형이상학적인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비엔날레 전시는 현대 물질문명 속에서 황폐해져 가는 인간성의 회복과 정신적 치유로서의 방편으로 사진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올해 비엔날레의 코디네이터인 르홍은 이완교 작가를 초대한 과정에 관해 “비엔날레에 가장 적합한 작가를 여러 나라에서 물색하던 중에 우연한 기회에 한국의 이완교 작가의 작품을 발견하면서 한동안 정신이 멍한 감동을 받았다”며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그의 작품을 유럽에 처음 소개하게 된 것에 커다란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동안 낭시국제이미지비엔날레에는 윌리 호니스(Willy Ronis),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 알버트 랭거-파츠(Albert Renger-Patzsch), 세바스치앙 살가두 등이 초대된 바 있다. 이완교 작가의 작품은 비엔날레 전시장 입구에 특별히 마련된 공간에 대형 사이즈로 모두 8점이 걸렸다. 비엔날레를 찾은 프랑스 관객이 가장 먼저 이완교 작가의 작품 이미지를 접하게 함으로써 올해 비엔날레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려는 주최 측의 의도였다. 아울러 평소 유럽에서 볼 수 없었던, 동양철학이 기반이 된 사진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번 특별전은 관객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완교 작가의 특별전은 프랑스 문화부 사진 담당관이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비엔날레 전시장을 직접 찾는 등 현지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샤를르 프리리 미술관의 연장 전시로도 이어졌다.
피안(彼岸) 이완교 Yi Wan-Gyo
글 / 김이삭 (전시기획자)
“검은 것은 우주 만물을 잉태(孕胎)하고 있는 어머니이고, 회색과 가물가물함은 정신적 자유를 얻고자 함입니다.”
피안(彼岸)은 차안(此岸)의 상대어로서 불교에서는 세속으로부터 초월하여 해탈에 이르는 것으로 번뇌에 얽매인 생사고해(生死苦海)를 넘어선 깨달음의 세계인 ‘열반(涅槃)’을 이르는 말이다. 이것은 촛불을 불어 끈 상태로도 비유되는데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지혜로 꺼서 참 진리를 깨닫고 완전한 정신의 평안함에 놓여진 이상적인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완교(1940~) 작가의 대표작 피안(彼岸: Nirvana_Beyond Dark)은 한국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도가사상(道家思想)을 메인 콘셉트(Concept)로 하고 있다. 그는 “도가적 정신은 어떠한 언어나 논리로 표현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예술의 창작정신과 잘 어울린다.”고 이야기 한다. 기운생동(氣韻生動), 무념무상(無念無想) 등 지금까지 작가가 평생을 두고 진행해 온 작업들은 모두 동양의 노장사상(老莊思想)에 기반을 두고 있다. 작가는 동양사상을 황폐해진 인간의 정신을 치유할 수 있는 해답으로 생각했던 독일의 문인 노발리스(Novalis)의 말에 주목하며 자신 또한 힐링(Healing)의 예술로서 그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음을 피력했다.
강원도 삼척에서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이완교 작가는 바이올린(Violin)을 전공하고 국내 유수한 기관의 합창 지휘자로서 활동하던 중, 돌연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진가로 전향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1세대 사진작가이다. 그는 “음대 재학시절, 레슨비를 모아 카메라를 구입하고 낮에는 사진을 찍고 밤에는 연주를 하면서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전공과 사진을 병행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고 이야기 한다. 결국 작가는 모든 경제적, 사회적 기득권을 포기하고 예술로서의 사진의 길을 택하게 되는데 그것은 당시 사진계에 만연해 있던 문화적 사대주의(事大主義)에서 벗어나 사진예술을 통해 ‘한국적인 미학(美學)’을 세계무대에서 실현해 보이겠다는 ‘대붕(大鵬)의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과 예술로서의 사진의 재현방법에 대한 탐구, 그리고 한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품은 자신만의 예술적 형식을 만들기 위해 지난 37년간 동서양의 철학과 미학, 종교학, 무속학 등을 꾸준히 연구해 오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로서의 확고한 정체성(Identity)을 구축해 가고 있다. 프랑스의 예술계(Art Market)에서는 이러한 이완교 작가의 동양적이면서도 유니크(Unique)한 작품에 주목하고 그를 2014년 프랑스 낭시(Nancy)에서 개최되는 제18회 국제이미지비엔날레에 대표작가로 초청하여 프랑스 문화부 등의 기관과 참여관객들에게 커다란 호평을 받았다.
그의 사진은 Zone 0에서 Zone 5까지의 계조(Zone System : 순흑(full black)에서 순백(pure white)까지의 톤을 농도별로 10단계로 나눈 것)만을 사용하여 낮은 콘트라스트(Low Contrast)의 어둡고 중량감 있는 톤(Tone)을 연출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무겁지 않고 오히려 평온하고 밝아진다. 작품에서 생략된 Zone 6에서 Zone 10까지의 계조가 관람객의 심상(心象)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또 한 연기, 안개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서 공중에서 사라지는 연기처럼 윤곽선을 분명히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번지듯 그리는 공기원근법인 스푸마토(Sfumato) 기법의 적용은 장면의 심오한 깊이와 가까운 듯 멀고 먼 듯 가깝게 느껴지는 동양의 심상적 거리감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술적 효과는 작가가 프레임을 구성하고 있는 검정(Full black)과 회색(Gray) 그리고 가물가물하고 아련한 이미지를 ‘도가사상을 표현하기 위한 중심코드’로 만들기 위한 장치이다.
노자의 도덕경 14장에 나오는 이(夷), 희(希), 미(薇)는 작가의 중심철학이다.
보아도 보지 못하므로 ‘이(夷)’라 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므로 ‘희(希)’라 하며
잡아도 잡지 못하므로 ‘미(薇)’라 한다.
이 셋은 따로 무어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섞여 하나로 어울리더라.
그 위는 밝지 않고, 그 아래는 어둡지 않으며,
끝없이 이어져 이름 지을 수 없고,
무엇이 없는 데로 돌아간다.
이를 형상 없는 형상이라고 하는데
물질이 아닌 형상이니 이름하여 ‘황홀(恍惚)’이라 한다.
눈의 집착을 버리고 작품을 마음에 비추니 작가가 지휘하는 조화로운 합창의 선율이 여기와 저기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나의 마음으로 흘러 들어와 그의 작품을 보는 내내 나의 마음도 황홀하였다.
‘사진’은 ‘철학’을 말하고 표현할 수 있는가?
글 / 심대원 (사진평론가)
≪기운생동≫
이완교의 사진전≪기운생동≫(9.28-10.24 | 서이갤러리)이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있는 서이 갤러리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지난날 작가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풀과 나무와 같은 ‘자연 속 대상’을 중형 필름카메라로 포착하여 ≪기운생동(氣韻生動)≫이란 타이틀을 붙였다. 작품은 촬영 당시(1984-1999년) 작가가 암실에서 직접 흑백사진을 인화한 오리지널 ‘빈티지 프린트’이다. 최근에 전시를 보면 잉크젯 프린터로 출력한 디지털 흑백사진이 많은데, 오랜만에 잘 보존된 아날로그 흑백사진 원본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작품 감상 기회였다.
붐비지 않은 오후 시간, 한옥이 멋스러운 갤러리에 도착했다. 찬찬히 <기운생동> 작품들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사진은 철학을 말하고 표현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필자는 대부분 실패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사진이란 ‘시각 언어’와 말과 글이란 ‘소리 및 문자 언어’ 사이에는 결코 서로 치환할 수 없는 절대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사진이란 시각 언어를 사용하여 ‘소리 및 문자 언어’가 지닌 내용을 전달하고 옮기고자 하면 ‘소리 및 문자 메시지’가 표현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내용을 사진은 온전히 옮기지 못한다. 그러나 같은 ‘소리 및 문자 언어’ 영역 안에 있는 영어나 불어 또는 기타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해보면 비교적 그 의미와 미묘한 뉘앙스까지 쉽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과 문자를 사진으로 옮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이처럼 말과 글이라는 ‘소리 및 문자 언어’는 사진이라는 지극히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묘사’가 가능한 시각 언어와 달리 인간의 ‘관념 속에 그려진 주관적이고 모호한 이미지’를 통해 커뮤니케이션 작용이 이뤄진다. 그런 이유로 매우 추상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앞에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소리 및 문자 언어’가 모호하고 추상적이라면 사진은 구체적이고 매우 사실적이다. 그래서 모호하고,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을 분명하고, 실재적이고, 사실적인 것으로 온전히 대치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근본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사진은 말과 문자로 구성된 내용을 제대로 번역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매체라는 결론을 짓고자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말과 글이란 ‘소리 및 문자 언어’로 구성된 특정 내용을 사진이란 시각 언어를 통해 완벽하고 온전하게 전달하고자 욕망한다면 그것은 관념이 실재가 되어야만 가능하기에 차원과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완전 새롭고 혁명적인 번역 기술 체계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사진과 철학을 연계해 생각해보면, 우리가 앞서 ‘시각 언어인 사진을 가지고 소리 및 문자 언어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번역하는 게 불가능하다’라고 판단한 맥락에서 봤을 때, ‘사진이 소리 및 문자 언어로 구성된 철학을 말하고 표현하는 것 또한 가능하지 않다’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사진은 철학을 말하고 표현하지 못한다는 전제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에서 보았던 이완교 작가의 작품들은 도가철학을 완성한 ‘장자(莊子)의 기(氣) 개념’에서부터 파생(派生)된 ‘기운생동’이라는 철학 개념을 사진 매체를 통해 아주 효과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필자는 이번 전시에서 이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사실 그동안 프로 사진가들뿐만 아니라 사진평론가들조차 ‘철학의 오남용’ 사례를 자주 노출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부 사진가는 ‘사진에 담겨 있지 않은 철학을 사진에 담았다’라고 주장하고. 어떤 사진평론가는 작가가 생각해본 적도 없는 철학을 가져와서 작품설명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종종 보여줬다. 필자는 사진가들과 사진평론가들이 이완교 작가가 사진으로 철학을 다루고 있는 방식에 주목한다면 철학의 오남용 사례를 많이 줄일 수 있고, 또한 시각 언어를 사용하는 사진 매체의 특징에 기인한 개념적 오류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지리라 생각한다. 아랫부분에서는 이런 관점과 맥락을 견지하면서 이완교 작가가 철학적 개념을 어떤 방식으로 본인 사진 작품제작에 활용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노장사상’과 ‘장자(장주- 莊周)의 사상’에 매료된 이완교 작가는 1970년대 후반부터 철학과 관련된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학문적 연구를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도 장자의 철학을 사진으로 옮기고 표현하는 시도를 40년 이상 지속하고 있다. 그동안 그가 몇 차례 전시와 몇 권의 책을 출간하면서 보여준 ‘기운생동’, ‘피안’, ‘무념무상’과 같은 용어는 모두 장자의 철학에서부터 작가에게로 전이된 핵심 개념이다. 이완교 작가의 집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수많은 책이 꽂혀 있는 책장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그곳에는 노장사상 및 장자와 관련된 아주 다양한 서적들이 있었고, 필자는 이 책들을 통해 작가의 학문적 열정과 철학 공부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사진에 철학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작가 스스로 철저하고 깊이 있는 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공부와 검증과정을 거쳐야 철학자의 본래 생각과 의도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은 결정적 오류를 범하지 않고 철학 개념을 사진 작업에 적용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완교 작가가 대학 학부 과정에서 음악(바이올린)을 전공한 것도 눈여겨볼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이미 음악이라는 추상적 세계를 예술로서 능숙하게 다루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음악이라는 일종의 사전 연습과정이 있었기에 ‘소리 및 문자 언어’를 사용하는 철학을 본인의 사진 작업에 중요한 개념적 도구로 인지해 받아들이고,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완교 작가의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사진이 아니다. 1980년대에 ‘기운생동’이란 주제로 촬영한 초기 사진부터 사진 속에 메타포(metaphor)를 사용하여 본인의 생각과 느낌을 자연 속 대상에 투사하여 표현했다. 이때 촬영한 주변에 흔한 풀과 나무는 모든 생명과 그 생명이 지닌 힘(생명력)에 대한 예찬 즉, 삶과 존재에 대한 은유이다. 그리고 '모든 생명은 그 모습이나 존재의 형태를 넘어 모두 동등한 가치가 있다‘라는 장자 철학의 영향을 받은 작가의 신념을 표출한 것이기도 하다. 바로 이 지점이 다큐멘터리 사진과 파인 아트 사진(순수 예술 사진)의 구분과 경계가 나누어지는 분기점이라 하겠다. 그는 기록으로서 사진과 예술로서 사진의 차이와 작업 방법론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는 사진가이다. ‘기운생동’이라는 철학을 사진으로 표현하면서 이완교 작가는 구체적인 대상(작품 소재)는 중요하지 않고,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장자의 철학 개념을 표현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스스로 “장자의 제자”를 자처한다. 인터뷰 때 본인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이야기 나눴던 『장자』의 내용을 아래에 인용해 본다. 이 글을 통해 이완교 작가가 풀과 나무 등을 촬영하면서 장자의 어떤 생각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싶었는지 그 얼개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듯하다.
“세상살이에 아옹다옹 다투다가도 욕심의 울타리를 벗어나 잠시라도 모든 것을 벗어버려야 할 때도 있어야겠다. 꽃밭을 지나며 이 꽃이 더 아름답다. 아니 저 꽃이 더 아름답다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지만, 사실 꽃들은 서로 잘났다며 어깨를 겨루지 않는다. 그저 존재하는 그 자체일 뿐이다. 빨강이 더 좋아, 파랑이 더 좋아, 아니야, 노랑이 더 좋아, 이는 탐욕에 사로잡힌 인간의 언어일 뿐, 색깔 자체는 서로 잘났다며 앞서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존재하는 그 자체일 뿐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필자는 사진은 철학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이완 작가의 작업은 사진으로 철학을 말하고 표현한 성공적인 사례로 보인다. 어쩌면 다른 사진가들과 사진평론가들도 그가 만들어 낸 결과물(사진)을 보면서 철학을 이용한 사진의 성공적인 방법론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그는 시각 언어라는 사진 매체의 한계성을 극복하는 방법론으로서 메타포(은유법)를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그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자기 안으로 침잠하여 ‘장자 철학’을 자신의 것으로 완전히 체화시켰다. 그럼으로써 몇몇 장자의 핵심 개념을 본인의 중요한 사진 작업개념으로 발굴해 오류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이완교 작가가 촬영한 기운생동 작품은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각기 다른 해석을 붙이고 이미지를 분석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촬영 대상의 가치를 평가하고 구분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풀과 나무와 같은 개별적 대상 간에 차이를 극복하고,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지닌 강한 생명력과 함께 모든 생명은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느끼고 음미해보라고 권유한다.
다음으로는 작가의 작품 세계와 이번 전시가 갖는 의미를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이완교 작가는 스스로 "사진을 촬영하는 이유는 단 하나, 장자의 철학을 사진으로 구현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국내에서 철학과 직접 맞닥뜨려 씨름을 벌이는 몇 안 되는 사진가이고, 장자 철학에 관한 그의 진정성과 열정은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다.‘기운생동’ 전시는 도입부에서 필자가 제기한 사진은 철학을 말하고 표현할 수 있는가? 라고 하는 논제에 대응해 그게 가능하다라는 해답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것은 풀과 나무와 같은 소소한 자연 속 대상(생명체들)이 발산하는 강한 생명력을 작가가 장자 철학에서 가져온 ‘기’라는 개념을 은유적으로 사용하여 ‘기운생동’의 에너지가 느껴지도록 사진으로 표현했고, 우리는 사진 감상을 통해 그 자연적 대상이 뿜어내는 기운을 느끼고 소통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 서 봤을 때, 이완교 작가의 기운생동 사진은 철학을 말하고 표현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작가가 보여준 ‘기운생동’이란 철학적 개념을 작업한 사진들은 ‘소리 및 문자 언어’를 기반으로 해서 작동하는 철학을 ‘사진가는 어떻게 사진으로 말하고 표현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참고할 만한 해법을 보여준 중요한 작업이자 전시로 판단하고자 한다. 이완교 작가는 사진에 있어 은유법의 진정한 미덕(美德)을 알고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예술 사진가이다.
글 / 윤재근(한양대 명예교수)
이완교(李完敎)란 분으로부터 여러 해 전에 매우 무거운 사진작품집(寫眞作品集) 한권을 받아본 일이 있다. 일면식(一面識)도 없었던 분이 보내준 사진작품(寫眞作品)들을 보고 이 분은 〈사진기(寫眞機)로 실물(實物)을 찍지 않고 자기(自己)와 실물(實物) 사이에 렌즈를 두고 그 실물(實物)의 실정(實情)을 더듬어내는 개사(開士)>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서 이완교의 전시(展示)를 기다렸다가 마음먹고 관람(觀覽)했던 일이 생생하다. <렌즈>로 기운생동(氣韻生動)을 말한다는 뜻을 작품(作品)들 앞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박(拍)을 타는 숨질이 기운(氣韻)이고 살아서 펄펄함이 생동(生動)이다. 숨질이 자연(自然)을 따르면 그 숨질은 기운(氣韻)이고 사람이 바라는 대로 숨질을 짜고 맞추면 그 숨질은 기운(氣韻)이다. 그 때 마주했던 이완교의 사진작품들은 이완교(李完敎)라는 인간의 기운(氣韻) <렌즈>를 통해 실물(實物)들을 생동(生動)하게 하는 모습을 바라보게 했다. 그래서 이완교를 개사(開士)라고 생각했었다. 개사(開士)란 중생(衆生)의 눈을 뜨게 하는 선비란 말이다.
이완교가 <렌즈>를 <붓>으로 삼아 까막눈을 뜨도록 실물(實物)의 참모습(實情)을 통찰(洞察)하게 했던 그 전시회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인연(因緣)이 있었던 뒤로 여러 해가 지났지만 서로 만날 기회는 없었다. 지난 늦봄에 인사동 골목에 서 우연히 마주쳐 반갑게 인사만 나누고 스쳤던 인연(因緣)이 이완교를 만난 두 번째였다. 초여름 무렵 어느 날 전화를 받고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세 번째로 만났을 때 전시할 작품들을 미리 볼 수 있는 기회를 나에게 안겨주었다. 작품들을 마주본 순간 이완교가 예전에 보여주었던 <기운생동(氣韻生動)>과는 너무나 달라 보였다. 그래서 <저기 검정 너머>에 무슨 일이 있어서 내 시야(視野)가 온통 검어지게 하면서도 어째서 마음속을 발그레하게 하는 일인지 새겨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저번의 <기운(氣韻)>은 사라지고 이번에는 기운<기운(氣運)>으로 돌아오고 저번에는 <생동(生動)>을 보라하더니 이번에는 <현묘(玄妙)> 속으로 잠입해보라고 한다. 저번에는 〈렌즈〉를 앞세워 실물(實物)로써 <사람의 뜻>을 보게 생동(生動)했으나 이번에는 <렌즈〉를 물러 세우고 <실정(實情)>으로써 <자연의 뜻>을 만나보게 현묘(玄妙)하다. 현묘(玄妙)하면 본래 컴컴하다(暗黙). 컴컴한 속을 눈(目)으로 들여다본들 육안(肉眼)의 시력(視力)은 관통(貫通)하지 못한다. 심안(心眼)의 시력(視力)이라야 컴컴한 속을 유영(遊泳)할 수 있다. 지금 이완교는 렌즈와 셔터를 빛(광)과 찰나(刹那)에 맡겨두지 않고 먹과 붓(筆)이 되어 자연(自然)을 현묘하게 발묵(發墨)하라고 주물러대고 있는 중인가 싶다. 이제는 이완교의 작품들이 도가적으로 말한다면 자연(自然)으로 오라하고 불교적으로 말하면 〈피안(彼岸)에 이르라> 한다. 의식(意識)이란 고(苦)가 없어짐을 일러 피안(彼岸)이니 자연(自然)이니 한다. 자연(自然)과 피안(彼岸)은 같은 생각 같은 말로 통한다. 그래서 이번에 만나본 이완교의 작품들을 몰아서 <저기 검정 너머>라고 불러본다.
암묵(暗默)! 눈도 귀도 입도 필요 없고 그냥 우두커니 어리둥절케 하는 순간을 〈혹(惑)이라 하고 그 순간을 겪어본 뒤를 일러 <어리석다(愚)>한다. <어리석을 우(愚)라야 실물(實物)마다 숨기고 있는 실정(實情)을 만나볼 수 있다는 틈새를 이완교가 찾아내 그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없을까를 궁리(窮理)하는 개사(開士)가 되었다는 느낌이 잡혀 <저기 검정 너머〉로 말려들어 빨려 들어가는 미명(微明)을 마주하게 되었다.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작품들은 그래도 사진 같았는데 이번에 마주한 <저기 검정 너머>에 있는 작품들은 사진(寫眞)이 아니란 생각이 앞선다. 실물(實物)은 검정으로 암묵(暗默)되고 실정(實情)이 <저기>서 아스라이 가물거리는 <여기>로 들어오라 하는 작품(作品)들이 발묵(發墨)이 현묘(玄妙)한 수묵화(水墨畵)로 펼쳐진다. 서양화(西洋畵)는 제 앞에서 서서 바라보라고 하지만 동양(東洋)의 수묵화(水墨畵)는 제 속으로 들어와 무르녹아보라고 한다. 그래서 서양화 앞에서는 두 눈알을 부라려야 하지만 수묵화(水墨畵) 앞에서는 두 눈을 감아야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림 보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 이완교의 작품 앞에 서면 사진도 아니고 서양화도 아니고 컴컴하더니 밝아오는 수묵화(水墨畵)가 무럭무럭 피어난다. 그 안으로 들어가는 심안(心眼)이면 족하고 육안(肉眼)은 감아버려야 한다.
그래서 이완교(李完敎) 교수(敎授)가 해놓은 일(作品) 앞에 서면 한 순간 온통 검어진다. 그래서 이완교의 일을 <저기 검정 너머> 라고 일컫고 싶어진다. 온통 검정이니 눈도 귀도 입도 다 없어져 버린다. 마음만 편안히 고요해지고 밝아진다. 바로 이런 지경이 <저 검정 너머>로 들어갈 수 있는 꼬투리가 된다. 밖을 보거나 듣거나 말하지도 말라 함인가? 그렇다면 <저기 검정 너머>로 어떻게 들어가 보란만 말인가? 이렇게 어리둥절하다 보면 안개인가 싶게 피어나 저 안에 빈 데(虛)가 있지 않나 싶어진다. 그러다가 허(虛)하지 않으면 편할 리 없다는 말씀이 울린다. 그 순간 저 검정(黑)이 마음 쓸 것 없다고 부풀어나 <귀허(歸虛)하라> 한다. <빈 데로 (虛)돌아 가보라(歸).> 이렇게 이완교가 해놓은 일들이 소곤거린다. 그 소곤거림이 도피안(到彼岸)이란 말씀으로 <저기 검정 너머>을 풀어보게 한다. 물론 도피안(到彼岸)이란 말씀은 불교(佛敎)에서 으뜸가는 말씀이다. 불교(佛敎)는 그 말씀의 뜻(義)을 <이생멸(離生滅)>로 푼다. 그러니 <피안(彼岸)에 이름(到)은 <생멸(生滅)을 떠남(離)을 뜻하게 된다. 도피안(到彼岸)은 마음이 생(生)하고 멸(滅)하는 짓을 떠났음(離)이다. 생멸(生滅)은 마음이 의식(意識)하는 짓. 마음이 의식(意識)하면 알음아리(生解)가 용솟음쳐 시비(是非) 걸기로 마음은 맞장 치게 마련이다. 시비(是非) 걸기로 맞장 치기를 그만둔다면 절로 마음은 쉴 수 있다. 그래서 <저기(彼岸)로 건너가라(到)> 한다. 이완교가 일구어놓은 <저기 검정 너머>이 <저기(彼岸)로 건너오라(來)〉한다.
이완교가 해놓은 <저기 검정 너머> 앞에 서면 저기(彼岸)로 건너오라(來)〉 한다. <저기 검정 너머>의 저기(피안)는 빈 데(虛)가 분명하다. 허심(虛心)하라는 기미(機微)가 <저기 검정 너머>이란 말이다. 나는 이완교가 <저기 검정 너머>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알지는 못하겠지만 어쩌자고 <저기 검정 너머>을 저렇게 만들어내야 하는지 만큼은 새겨볼 수 있다. 내가 그래볼 수 있다는 까닭은 <저기 검정 너머> 앞에 멈추어 있는 동안 내 마음이 <저기 검정 너머> 속으로 조용히 끌려들어가 고요해지기 때문이다. 마음이 고요해 짐은 이미 저기(彼岸)에 다다름(到)이다. 그러니 (저기(彼岸)로 건너오라(來)는 <저기 검정 너머>의 부름을 내 마음이 <정(靜)>으로 답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완교의 작품들은 그 앞에 선 마음들을 <정(靜)>으로 끌어간다. 분명 이완교의 <저기 검정 너머> 앞에 멈추면 마음이 고요해져간다. 도피안(到彼岸)이면 적멸(寂滅)이라더니 이요수의 <저기 검정 너머>들이 황홀(恍惚)하게 하는 것이다.
잡동사니 같은 의식(意識)의 조각들을 마음에서 다 쓸어내 버릴 수 있다면 어느 마음이든 다 황홀(恍惚)할 수 있고 삼매(三昧)를 누릴 수 있다. 물론 황홀(恍惚)은 노자(老子)가 도(道)를 노래함이고 삼매(三昧)는 여래(如來)가 노래함인 줄 안다. 성현(聖賢)은 늘 황홀(恍惚)한 삶을 누리고 늘 삼매(三昧)에 노닐지만 한 순간의 황홀(恍惚), 한 찰나(刹那)의 삼매(三昧)는 범인도 맛볼 수 있는 목숨의 열지(說之)이다. 온갖 시름 접어버리고 이 순간만이라도 고요한 마음을 누릴 수 있음은 <즐거움을 맛보는 것(열지)>이 아닌가. 이완교(李完敎)의 <저기 검정 너머> 앞에서 마주하기만 하면 누구의 마음이든 열지(說之)를 누리는 실마리를 풀어가면서 한 순간의 황홀(恍惚) 한 찰나(刹那)의 삼매(三昧)를 누릴 수 있다. <저기 검정 너머>로 아스라이 있는 듯 없는 듯한 것들이 빈데(虛)다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이는 어둠이 밝아옴일 수도 있고 밝음이 어두워짐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완교의 <저기 검정 너머>는 같저문 저녁의 천궁(天弓) 아래 잠들어버린 것들이 저만치 있는 것이다. 분명 저것들은 검정 속에서 저만치 있다. 검정 속은 곧 어둠 속이다. 어둠은 만나면 육안(肉眼)은 시력(視力)을 잃지만 오히려 심안(心眼)은 밝아진다. 불을 켜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불을 고면 마음이 밝아온다는 옛말이 이완교의 작품 앞에 서면 확실해진다. 이렇게 이완교의 <저기 검정 너머>는 심안(心眼)을 밝히기 시작한다. 참으로 이완교가 찾아낸 <저기 검정 너머>는 의식(意識)을 살라버린다.
<저기 검정 너머> 앞에서 검정(흑) 안에서 아른거리는 저것들은 무엇이냐고 묻지 말라. 나무냐 풀이냐 가지냐 땅이냐 둥둥 따져서 캐묻지 말라한다. <저기 검정 너머> 앞에서는 <지자불언(知者不言)>을 환기(喚起)할 일이다. <저기 검정 너머> 앞에서 암흑(暗黑) 이냐고 따지려면 차라리 <저기 검정 너머> 앞에 서서 서성일 필요가 없다. 예리(銳利)한 의식(意識) 따위로 치수를 재서 <저기 검정 너머>의 깊이와 부피를 잰들 터무니없고 부질없는 짓이다. <저기 검정 너머>로 스며들어가 어른거리는 저것들과 말을 나누고 싶다면 불언(不言)하라. 고요한 마음을 누리고 싶다면 말문을 닫고 예리하려고만 덤비는 칼날을 무디게 하라. 그래서 〈폐기문(閉其門)하고 좌기예(挫其銳)하라> 하는 것이다. (감각(感覺)을 꼬드기는) 그(其) 문(閉)을 닫아라. 그러면 마음이 고요해진다(靜). (지성(知性) 을 꼬드기는) 그(其) 날(銳)을 무디게 하라(挫). 그러면 마음이 고요해진다(靜). 이완교의 <저기 검정 너머>는 심정(深情)을 다스리고 심정(深情)을 무르녹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완교의 <저기 검정 너머>들을 사진작품(寫眞作品)이라기보다는 <선화(禪話의 여기>라고 수시(垂示)하는 것이다. <저기>가 이미 <여기>라면 <저기>는 저만치 떨어져 있음이 아니고 이미 한 자리가 되어버린다. 이완교의 <저기 검정 너머> 앞에서 마음이 고요해지면 고요해진 마음이 <저기 검정 너머>로 마치 자벌레인 양으로 슬슬 기어들기 시작한다. 그러면 고요를 누리는 마음은 참으로 현묘(玄妙)한 경(境)을 만난다. 나는 <저기 검정 너머> 속에서 고요해진 마음이 삼라만상과 더불어 어울려 하나(一)도 는 즐거움을 맛보고 이렇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다:
일화개(一花開)하자 세계기(世界起)한다
<꽃(화) 하나(일) 열리자(개) 세계가(세계) 일어난다(기).>
벽암록(碧巖錄)』19칙(則) <수시(垂示)>에 있는 말씀이다. 왜 시비(是非)를 떠나버린 내 마음이 <저기 검정 너머> 자벌레처럼 스며들어가 <선화(禪話)의 여기>로 삼고 가물거리듯 잡힐 듯 말듯했던 것들을 한 송이 꽃이 핀 것(一花開)으로 여겨버리고 만물(萬物)은 여럿(庶)이 아니라 하나(一)인 것(세계기)이라고 중얼거릴 수 있단 말인가? 이완교가 저런 선화(禪話)를 표현하고자 카메라 조작을 해서 저렇듯 <저기 검정 너머>를 만들어서 벽에 걸어볼 작정을 한 것이 아닐 터이다. 그런데 왜 나는 이요수의 <저기 검정 너머>를 마주하고 고요해진 내 마음이 <일화개(一花開) 세계기(世界起)〉라고 중얼거릴 수 있는 묘미(妙味)는 <저기 검정 너머>의 시커먼 빈데(虛)가 우리네 생각을 말하고 있다는 증거이지 서양의 Aesthetics(美學)를 통해서는 <저기 검정 너머>를 해석(解釋)해 볼 없다. <저기 검정 너머>를 흑백(黑白)이란 색깔이 빚어내는 조형(造形)을 따지거나 광도(光度)나 초점(焦點) 등등을 따져서 이야기한다면 <저기 검정 너머>는 한 장의 사진(寫眞)이란 물건(物件)으로만 남아서 만들어진 솜씨를 두고 설왕설래(說往說來)하고 말 것이다. 따 지고 보면 그런 말짓거리는 마음이 누리는 열지(說之)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저기 검정 너머>를 마주하고서 무엇인가를 알아보기로 시비(是非) 걸기를 하면 <저기 검정 너머>는 검정색으로 흐릿하게 한 별스런 사진 한 장에 불과하리라. 그러나 <저기 검정 너머> 앞에 서서 피어나는 빈데(허)를 마주하고 이것인지 저것인지 알아보기를 그만두면 자신도 모르게 절로 편안해져서 고요해지는 마음을 마주할 것이다. 그 순간 이완교의 <저기 검정 너머> 앞에서 편히 쉴 수 있는 자리를 얻게 된다. 그러니 이완교는 비록 사진기를 들고 실물(實物)을 찍지만 카메라의 렌즈가 잡은 피사체(被寫體)로 말하지 않는다. 렌즈가 잡아낸 피사체(被寫體)는 이미 변용(變容)된다는 전제(前提)를 안고 그의 카메라는 찰각하는 것이다. 이완교의 <저기 검정 너머>는 동양의 심관(心觀)으로 <선화(禪話)의 여기로 변용(變容)돼 마음 속 파랑(波浪)을 잠재운다. 그래서 <저기 검정 너머> 앞에 서면 카메라도 없어지고 이완교도 없어지고 마주선 마음이 <저기 검정 너머>로 기어드는 것이다.
착경(著境)하면 생멸기(生滅起)하여 여수유파랑(如水有波浪)하니 즉명위차안(卽名爲此岸)이고
이경(離境)하면 무생멸(無生滅)하여 여수유통류(如水有通流)하니 즉명위피안卽名爲彼岸)이다
(『六祖壇經』 第二般若品, 參考)
<바깥 사물을(境) 집착하면(著) 생과(生) 멸이(滅) 일어나(起) (마음이) 파도가(波浪) 치는(有) 물(水) 같다(如). 곧(卽) 일컬어(名) 여기(此岸)라한다(爲). 바깥 사물을(境) 여이면(離) 생과(生) 멸이(滅) 없어져(無) (마음이) 걸림없는(通) 흐름이(流) 있는(有) 물(水) 같다(如). 곧(卽) 일컬어(名) 저기(彼岸)라한다(爲),>
<빈데로(虛) 돌아 가보라(歸).> 이렇게 이완교가 해놓은 일들이 소곤거린다. 그 소곤거림이 도피안(到彼岸)이란 말씀으로 <저기 검정 너머>을 풀어보게 한다. 이렇게 앞에서 말했다. 도피안(到彼岸)은 생멸(生滅)을 없앰(無)을 말한다. 생멸(生滅)을 요새 말로 한다면 <의식(意識)의 흐름(the stream of consciousness)>과 같은 말이다. 그러니 도피안(到彼岸)이란 의식(意識)을 멈추고(止) 쉬는(休) 마음이면 피안(彼岸1)에 도달함이다. 그러니 피안(彼岸)이란 시비(是非) 분별(分別)로 알음알이를 내지 않는 마음인 셈이다. 의식(意識) 하지 말라. 이는 Art에는 없는 마음가짐이다. Art는 끊임없이 날카롭게 의식(意識)하라 할 뿐이다. 그러므로 Art의 잣대로 이완교의 <저기 검정 너머>를 만나려고 하면 그 <너머>로 깃들 수 없다. 그러면 오히려 이완교의 <저기 검정 너머>는 멍멍해지거나 덤덤해지기 쉽다. 그러나 심정(心靜)으로 귀환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면 이완교의 <저기 검정 너머>는 곧장 <귀허(歸虛)>가 곧 <귀명(歸命)>과 한길임을 소리 없이 알려 줄 것이다. <자연의 가르침(命)으로 돌아 가보라(歸)> 그러면 스스로 (자지자(自知者)>가 되는 오솔길로 접어들 수 있다. 이완교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 다음과 같은 말씀을 새겨보면 한결 더 현묘(玄妙)하리라.
안견여맹(眼見如盲)하고 구설여아(口說如啞)하다
<눈은(眼) 봐도(見) 장님과(盲) 같고(如) 입은(口) 말해도(說) 벙어리와(啞) 같다(如).>
지인자지(知人者智)하고 자지자명(自知者明)하며
<남을(人) 아는(知) 것은(者) 앎이고(智) 자기를(自) 아는(知) 것은(者) 밝음이다(明).>
위의 말씀은 『벽암록(碧巖錄)』42칙(則) <본칙(本則)>에 있고 아래 말씀은 『노자(老子)』 33장(章)에 있다. 저 위에 인용(引用)된 『육조단경(六祖壇經)』의 <착경(著境)>과 <이경(離境)>을 새기자면 눈은 장님(盲)이 되고 입은 벙어리(啞)가 되어야 하며, 바깥것들을 알아보려는 <지자(智者)>가 아니라 자기(自己)를 알아보려는 <명자(明者)>가 되어야 한다. 장님이 되려고 서화(書畵)를 보고 벙어리가 되려고 시가(詩歌)를 음영(吟詠)함이 동양의 <악(樂)>이다. 그래서 미리 앞에서 <폐기문(閉其門)하고 좌기예(挫其銳)하라>는 말을 해두었다. 우리는 서양의 Art에 매달리다 보니 우리네 본래(本來)의 <악(樂)>을 잊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는 날카로움만 알지 무딜 줄 모르고 감각을 앞세우기만 하고 물러서게 할 줄을 모르게 되고 말았다. <악(樂)>을 모르고서는 <저기 검정 너머>로 몰입(沒入)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악(樂)>을 사진기로 펼쳐보이다니 <저기 검정 너머>는 사진(寫眞)이 아니라 수묵화(水墨畵)인 셈이다. 이완교는 카메라 의 렌즈와 셔터를 마치 수묵화(水墨畵)의 필묵(筆墨)으로 잘 길들여서 <저기 검정 너머>에 의식(意識)하기를 멈추고 편히 휴식(休息) 하게 하는 <여기>를 발묵(發墨)의 미리내(銀河水)처럼 숨겨두고 있다는 말이다. <저기 검정 너머>에 있는 <저기>는 어디란 말인가? 피안(彼岸)이요 자연(自然)이리라. <저기>는 검정(暗默)이라 현묘(玄妙)하다. 그 캄캄한 <저기>가 <여기>를 밝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밝아오는 <여기>는 어디일까? 이완교가 펼쳐놓은 <저기 검정 너머>로 밝아지는 <여기>는 마음 밖(外)이 아니라 마음 안(內)이다. 그러니 <거기>로 들어가면 <여기>가 되고 <여기>로 들어가면 <거기>가 되는 일이라 참으로 현묘(玄妙)하다. 현묘(玄妙)한 일이란 마음 밖에서 일어나지 않고 항상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실정(實情)이어서 이를 두고 <수중(守中)>이라 한다.
<마음속(中)을 지켜라(守). 그래야 <도피안(到彼岸)이다.> 그래야 <자연(自然)이다.> 이렇게 이완교는 자기 손에 쥔 <카메라의 렌즈와 셔터>를 피안(彼岸)으로 귀순(歸順)하게 하여 <저기 검정 너머>로 스며들어갈 수 있는 길을 터놓고 <도피안(到彼岸)하지 않겠느냐>고 안개를 피우고 있는 중이다. 도피안(到彼岸)이나 자연(自然)이나 마음의 쉴 자리로 보면 하나인 <거기>일 뿐이다. 이완교는 바로 <거기>를 그리워하고 있다. 저 컴컴한 안개 같은 <너머>에는 빈데(虛)가 있고 그 빈데(虛)에 자리를 잡고 있는 저것들이 무엇이냐고 입으로 묻지 말 일이다. 저것이 무엇인지 눈으로 따지지 말 일이다. 나무면 어떻고 풀이면 어떻고 가지면 어떻고 줄기면 어떻단 말인가. 새면 어떻고 짐승이면 어떻고 돌이면 어떻단 말인가. 그냥 수중(守中)하고서 <저기>와 <여기>를 둘(二)이 아니라 하나(一)로 즐기는 마음이 밝아진다면 서서히 밝아오는 검정(暗默) <저기 너머>에서 마음이 편안히 휴식(休息)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휴식(休息) 이 절실하다. <저기 검정 너머>에서 한 찰나(刹那)만이라도 온갖 의식(意識)들로 지쳐버린 마음을 쉬게 할 수 없는가? <저기 너머> 암묵(暗默)에서 쉬어보라. 그러면 곧장 한 순간만이라도 마음은 피안(彼岸)이고 자연(自然)이다. 이것은 분명 마음속에다 피안(彼岸)을 열어주려는 선비(개사)로서 이완교(李完敎)의 독백(獨白)만은 아니다. <저기 검정 너머> 앞에 서보라, 그러면 그 독백(獨白)은 누구의 마음속에서는 은은히 울릴 것이다.
글 / 최일범 (성균관대 한국철학과 교수)
NATURAL POWER AND FREEDOM FROM ALL IDEAS AND THOUGHTS
사진에 문외한인 필자가 사진을, 그것도 전문가의 작품 사진을 논한다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은 인연으로 인해 작가를 만나 작품을 보고 그가 지향하는 작품세계를 듣고서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필자로서도 한마디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세계가 동양철학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물론 필자가 보기에 작가에게도 동양철학에 대한 일가견이 있었고 그것이 그의 예술활동의 원천이었지만, 겸손하게도 궁금해 하였다. 작가와의 대화에서 필자는 그가 기(氣)라는 동양철학적 개념에 심취해 있고 그것이 그의 작품 세계에 투영된 이념임을 알게 되었고, 또한 그가 사진 예술의 토착화 즉 한국적 사진예술의 정립을 위해 투지를 불태우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 필자가 작가의 사진과 대화를 시작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그가 사진 예술을 한국적 미학으로 재창조하려는 강한 신념에 동의한 때문이었다.
작가의 작품을 대하면서 필자의 마음에는 순간적으로 몇가지 단상들이 떠올랐는데 그것은 도가(道家)의 장자(莊子)에 보이는 혼돈(混沌)과 불교의 상즉무애(相卽無碍)한 화엄(華嚴)세계 그리고 중국 북송(北宋)시대의 도학자(道學者), 주렴계(周濂溪: 1017-1073)라는 인물의 사상이었다. 주렴계를 떠올린 이유는 작가의 사진이 온통 풀뿌리와 나무가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었다. 주렴계는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였는데 그의 집 정원에는 항상 잡초가 우거졌다고 한다. 누군가 그 이유를 묻자 주렴계가 대답하기를 잡초가 무성히 자라는 속에서 생명의 보편성 느낀다고 하였다. 우리는 보통 정원에는 아름답고 깨끗한 화초와 장식물이 자리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잡초의 자리가 없고 그 생명이 용납되지 않는다. 행여 어여쁜 화초 사이에 잡초의 싹이 요만큼이라도 보이면 대뜸 뽑혀지기 일쑤다. 그러나 주렴계의 눈에는 잡초도 엄연한 생명이었고 그 속에서 생명의 보편적 가치를 찾았다. 다시 말하면 그에게는 화초와 잡초를 분별하는 분별심이 없었고 일체가 다 생명이었다. 필자는 작가의 작품에서 일체를 생명의 흐름으로 인식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별(分別),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는 구분을 뛰어넘은 마음의 경지, 그것은 작가의 초점 흐릿한 작품과 함께 필자에게 장자의 혼돈을 떠올리게 하였다. 혼돈(混沌 chaos)에 대한 장자 응제왕편의 이야기는 이렇다.
남쪽 바다 임금의 이름은 숙이고 북쪽 바다 임금의 이름은 홀이고 그 가운데 임금은 혼돈 (混沌)이라 이름하였다. 숙과 홀이 때때로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은 그 때마다 그들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숙과 홀은 혼돈의 은덕을 갚을 길이 없을까 의논하였다. "사람에게는 모두 일곱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쉬는데 오직 혼돈에게는 이런 구멍이 없으니 하루 한 구멍씩 뚫어 줍시다"라고 하였다. 하루 한 구멍씩 뚫었는데 이레가 되자 혼돈은 죽고 말았다.
혼돈의 죽음은 자연의 전일성(全一性), 유기성(有機性)의 파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남쪽 바다의 임금과 북쪽 바다의 임금이 각각 분별의식의 세계를 상징한다면, 그 중앙인 혼돈은 분별을 초월한 경계이다. 서양에서는 혼돈을 chaos라고 하여 무질서한 상태라는 부정적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나 장자에서 혼돈은 그 중간자(=근원자) 역할을 통해 남쪽과 북쪽이 다 같이 도움을 받는 근원적 의미를 갖는다. 이는 이분법(二分法)에 충실한 시간적 사고와 전일성을 지향 하는 동양적 사유의 차이라고 하겠거니와 필자는 장자의 혼돈이야말로 작가가 사진을 통해서 표현하려는 세계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혼돈에 구멍이 뚫린다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 원초적 비분별의 상태로부터 주객 이분화에 따른 분별의 의식으로 전화됨을 가리키거니와 이러한 분별심은 인간에게 미와 추, 선과 악의 가치를 구분하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혼돈의 비분별 상태가 가치를 부정하는 몰가치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금강경(金剛經)에서 설했듯이 '집착없는 마음을 발하는 것'(無所住而生其心)이야 말로 혼돈의 진정한 의미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즉 남을 돕고 있다는 의식없는 도움 행위야말로 집착없는 마음이다. 즉 내가 지금 선을 행하고 있다는 의식이 나를 사로잡고 있는 한 내가 아무리 지금 선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오히려 나의 아만과 고집의 그럴듯한 포장에 불과하다는 금강경의 가르침은 혼돈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잘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작가의 작품에 대한 육명심교수의 다음과 같은 해석은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의 풀 사진이나 나무가지 사진들은 얼핏 보기에 그동안 많이 보아왔고, 그래서 사진이라면 익히 아는 종래의 조형적인 사진들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들과 그의 사진 사이에는 확실하게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제까지 미국의 유명한 사진작가 캐라한 (Calahan)과 그의 사진 유파들이 추구해 온 조형적인 초목의 사진들은 다분히 미(美)를 앞세우는 시각적 접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경우는 이 같은 사진의 질서와 구성의 추구하는 바와 는 사뭇 다르게 우주생성의 근원적인 기의 작용, 즉 기생운동(氣生運動)을 사진으로 포착하려 는 것입니다. -풀이나 나무들을 미시적이고 즉물적으로 접근해서 그 속에서 자연의 질서를 추출하려는 이제까지의 사진들은 그 대상을 어디까지나 미적으로 파악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똑같은 대상 속에서 추출되는 조형질서를 생명적으로 파악한 것입니다.
작품의 대상을 생명으로 보지 않는 한 (물론 여기에서의 생명은 동양철학의 유기체적, 전일적 생명관에서의 생명의 의미이다) 작가의 작품에 나타난 혼돈성, 편만성을 해석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작가의 작품이 화엄의 세계관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알다시피 화엄의 세계란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가 곧 하나' (一中一切, 多中一)인 유기적 세계이다. 그런데 이 유기적 세계란 단순히 물질세계의 구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의 마음 세계로서 중생의 생명에 대한 한량없는 자비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부처의 자비심 속에서 어느 한 생명인들 온 우주와 대등한 가치를 갖지 않겠는가. 다시 말하자면 부처의 한량없는 자비심 속에서, 즉 생명의 실상(實相) 세계에서 모든 생명의 가치는 평등한 것이다.
생명을 차별하는 분별심을 초월한 무한한 마음(心)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이 나타내고자 하는 작품 세계가 바로 동양적 사상과 그 미학을 토 대로 추구되고 있다는 사실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다.
선가(禪家)에서 회자되고 있는 '산은 산, 물은 물' (山是山, 水是水)의 화두(話頭)를 통해서도 작가의 작품세계가 지향하는 방향이 드러날 수 있다. 청원(靑原) 유신(惟信) 선사의 상당법어(上堂法語)로 유명한 이 화두는 생명의 세계에 대한 해석을 변증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첫 번 째,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는 사물을 분별하는 세속적 견지요. 두 번째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는 사물의 분별을 부정하고 평등성을 드러내는 초월적 경지이다. 그런데 유신 선사의 법어는 초월에서 끝나지 않는다. 세 번째 '산은 역시 산이고 물은 역시 물'이라는, 초월로부터 세속에로의 회귀가 종극점이다. 어째서 세속에로의 회귀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가?
살아 숨쉬는 생명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세속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화려한 장미꽃과 소박한 국화를 평등하게 보는 것이 어찌 장미와 국화의 고유한 모습을 떠나서 이루어지랴. 장미의 화려함에 취해서 상대적으로 국화의 소박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세속적 분별심의 소치라면, 비분별심이란 장미의 화려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장미는 장미대로 국화는 국화대로 그 아름다움을 훼손하지 않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하자면 분별과 초월 그리고 생명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음 모두가 마음의 세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 세계는 바로 이러한 비분별의 생명 가치, 존재 가치를 드러내려는 기획이며 그의 작품이 흐드러진 풀 한포기 나무 뿌리 하나 하나를 모두 소중하게 감싸 안고 어떤 분별도 거부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이라고 믿는다.